‘상상된 상실’에 빠져 현재를 잃어버린 당신에게
글쓰기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은,
좋은 글을 써내지 못해서가 아니다.
가장 많이 받은 고민 중 하나는,
"뭘 써야할지 모르겠어요'다.
그들의 하나같이 말하는 점은 이거다. '매력적인 글'을 쓰기에
자신의 삶은 너무 평범하다는 것이다.
"저는 딱히 불행한 서사가 없어요.
부모님도 건강하시고, 직장도 안정적이고,
연애도 무난하게 하고 있어요. "
그러면서 동시에 죄책감을 느낀다.
사랑하는 이를 사별한 것도 아니고, 파산을 한 것도 아닌데,
마치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처럼 상실감을 호소해야한다는 것이 너무 배무른 소리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완벽히 틀렸다.
"무언가를 상실해서 우울한 것이 아니다. 우울하기 때문에 상실을 발명해 내는 것이다.“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이 한 번도 소유해 본 적 없는 '그것(완벽함)'의 상실을 연기(pretend)한다.
그래야 나의 이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설명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불행한 건, 원래 있어야 할 완벽한 행복이 없기 때문이야"라고 믿는 순간,
현재의 평범한 삶은 '무언가 잘못된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 수강생도 그랬다.
그들은 '완벽한 세상'을 꿈꿨다. 아무런 걱정도 없고, 모든 욕망이 충족되는 세상.
하지만 현실 원칙(Reality Principle)상 그런 세상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현실에서 찾는 건 언제나 불완전한 대체물뿐이다.
그럼에도 존재하지 않는 낙원을 기준으로 현재를 채점하고 있었기에,
늘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욕망의 대상이 충족되지 않아서 오는 이 상대적인 상실감은 실질적인 상실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지독하게 우리를 괴롭힌다.
잃어버린 물건은 찾으면 되지만, 애초에 없었던 물건은 찾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치유가 불가능한 고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수강생에게 펜을 쥐여주며 말했다.
"당신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게 아닙니다. 단지 상상력이 너무 뛰어난 겁니다.
가본 적 없는 낙원을 그리워할 만큼.“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완전한 충족, 완전한 천국은 현실에 없다.
그 불가능한 욕망을 '상실'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대신 그 결핍을 '글을 쓰는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텅 빈 자리를 채우려는 그 간절한 충동이 예술을 만들고 문학을 만든다.
당신이 느끼는 그 이유 없는 공허함은,
당신이 무언가를 잃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당신이 지금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그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작법 노트] 존재하지 않는 상실을 다루는 법
이유 없는 우울감이 글을 쓰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다. 막연한 공허함을 구체적인 문장으로 바꾸는 방법을 제안한다.
‘결핍’의 목록을 솔직하게 적어보라.
내가 지금 없어서 괴로운 것들(완벽한 커리어, 영화 같은 로맨스, 걱정 없는 노후)을 적어보라. 그리고 자문해라. "이걸 내가 한 번이라도 가져본 적이 있던가?" 가져본 적 없다면, 그것은 상실이 아니라 '욕망'이다. 욕망은 슬퍼할 일이 아니라, 성취하거나 혹은 포기해야 할 일이다. 감정의 이름을 정확히 붙이는 것만으로도 막연한 슬픔은 걷힌다.
상실의 시점을 ‘과거’가 아닌 ‘미래’로 보내라.
"옛날엔 좋았는데"라고 쓰지 마라. 상상된 상실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결핍이기 때문이다. "나는 미래의 어떤 모습을 바라는가"로 바꿔 써라. 시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글의 장르가 '신파'에서 '비전'으로 바뀐다.
주인공에게 ‘가짜 결핍’을 부여하라.
소설이나 에세이를 쓸 때, 주인공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착각'으로 설정해 보라. 자신이 완벽해야 한다고 믿는 강박, 사랑받아야만 가치 있다고 믿는 착각. 그 착각을 깨닫는 과정이 곧 성장의 서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