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사랑이란, 공간과 시간을 가슴으로 헤아리는 일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by 수취인불멍

O에게


지금 여긴 서울의 저녁 7시야. 네가 있는 곳은 곳 있음 아침이겠지.

일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려다 뭔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야겠단 마음에 앉았어.

잘 자고 있을 널 생각하면 뭔가 기분이 좋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쩌면 옆에 없는,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닌 나로 인해 네가 더 외롭진 않을까.


그래서, 결심했어.

네가 거기서 지내는 동안 편지를 써 보려고 해.

내가 그렇게 부지런 하진 못해서 매일은 아니고, 시간과 마음이 허락할 때마다.

내 작업실 책상 한쪽에 쌓이는 원고 뭉치처럼, 우리 사이의 시간도 글의 형태로 차곡차곡 쌓아 두는 거야.

이 편지는 그중 첫 번째고, 그래서 조금은 서툴고 조금은 들뜬 저녁이야.


웃기지 않아?

사람들한테는 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구조 잡고, 장면을 나누고, 기승전결을 만들어 주면서 살았는데, 정작 내 사랑 이야기는 늘 대사처럼, 메신저창에서 툭 던지는 말들로만 흘려보냈다는 게.

무대 위 인물에게는 멋진 독백을 써 주면서,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때그때 떠오르는 대로만 던져왔던 것 같아서,


이번만큼은 조금 다르게 해 보고 싶었어.


이 편지들은 네게 바로 보내지 않을 거야.

네가 있는 도시로 날아가는 이메일도 아니고, 시차를 계산해서 맞춰 보내는 메시지도 아니고,

그냥 내 노트북 안에만 조용히 쌓이는 백 개의 장면 같은 거지.

언젠가 네가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공항이든 카페든 어디선가 마주 앉게 되면,

그때 이 편지를 전부 뽑아 보여주고 싶어.

우리가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살아내던 날들이 어떤 표정이었는지,

나 혼자서라도 기록해 보고 싶은 거야.


물론 나도 알아. 어떤 마음을 글로 남긴다고 해서 사랑이 더 단단해지는 건 아니고,

편지가 많아진다고 해서 이 시간이 덜 힘들어지는 것도 아니겠지.

너를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벅차서 시작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이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도 쓸 거야.

그렇다고 해서 너를 나를 살려야 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건 아니고,

그냥 이 글들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가 같은 방향으로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서로 조금은 더 또렷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네가 있는 새벽과 내가 있는 밤은 늘 어긋나 있어서, 우리는 자주 서로의 하루를 통째로 놓쳐 버리곤 할 거야.

그래서 이 편지들은 느린 우체통 같은거라 생각해줘.

그날그날 바로 공유하지 못한 마음들이, 며칠 뒤에야 번역되어 나타나는 것처럼.

그래도 언젠가 네가 이 모든 편지를 한 번에 읽게 된다면,

우리가 동시에 보지 못했던 순간들까지 천천히 따라가 볼 수 있겠지.


최소한 한 가지는 분명해.

네가 멀리 있다는 이유만으로 없어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믿어 보고 싶다는 것.


그래서 이 첫 편지는 이렇게 끝내고 싶어.

나는 오늘도 내 대본을 쓰고 있지만,

그 모든 대사들 사이,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이름이 떠올리면 이 서울의 밤이 조금 덜 외로워진다는 걸,

네가 언젠가 이 글을 읽으며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집 근처 조용한 카페에서 C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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