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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 박석무 편역

by 전익수

이 책은 2020년 초에 미국 LA에 사는 지인의 &Lab 갤러리를 방문했다가 한켠에 놓인 책장의 많은 책 중에서 눈에 들어와서 빌린 책 2권중의 하나입니다.

조선 후기에 활동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실학을 계승하고 집대성한 대학자 입니다. 정약용은 1801년의 천주교 교난인 신유사옥 때 전라남도 강진으로 귀양 보내졌습니다. 정약용은 유배기간(1801~1818) 동안에 오히려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經世遺表』·『牧民心書』·『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였습니다.

18년간의 긴 유배생활의 큰 고통을 격었지만 대학자로 후대에 이름을 남긴 것은 인생에서 "공짜는 없다."는 진리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적용되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합니다.

나는 위대학 실학자 정약용과 대표적인 저서의 제목은 고등학교 입시교육을 통해 익히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정작 그의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유배지에서 두 아들, 둘째 형,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 모음을 편역한 것 입니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폭넓은 조선사회의 개혁사상과 함께 유배지에서 고립된 처지의 인간적인 고뇌와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저자는 물론 두 아들도 더 이상 관직에 진출할 수 없는 처지가 된 폐족(廢族)이 경제적으로 살아 남아야 하는 방법도 나름 편지에 담아 보냈습니다. 이 편지에는 조선시대의 지식인인 양반이 사농공상(士農工商)을 바라보는 시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장사(상업,기업)에 대한 뿌리 깊은 부정적인 생각을 저자의 편지에서 확인하면서 조금은 씁쓰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엄격한 가부장제인 조선사회에서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에게 이런 것은 나쁘니 행하지 말라고 가르쳤으니 자식이 농사 이외에 달리 돈을 벌기 위한 방도를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하는 실학을 집대성한 위대한 대학자 조차도 상업활동을 이러한 시각으로 보는 마당에 조선시대 후기가 개항과 교역이라는 세계질서와 흐름에 뒤처진 결과 망국의 길로 들어 간 것은 역사의 필연으로 보입니다.

"의복과 음식의 근원이 되는 것은 오직 뽕나무와 삼(麻)을 심고 채소와 과일을 기르는 일이며, 부녀자가 방적을 부지런히 하는 것도 꽤 권할 만한 일이다. 그 나머지 돈놀이를 하거나 물건을 매매하거나 약장사를 하는 일은 매우 악착스러운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본전을 손해보고 본업을 망치게 된다. 아무쪼록 그런 일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제자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보면 그 당시도 양반집 금수저 아들 중에는 저자의 눈으로 보기에 너무도 한심한 놈들이 있었나 봅니다.

"부잣집 아이가 평생 한글자도 읽지 않고 오로지 교만한 자세로 유협(游俠)만을 일삼아 월장(月杖)과 성구(星毬)에 금안장 옥굴레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주야로 큰 거리를 배회하면서 휘젓고 다니는데, 이를 구경하는 자들이 담처럼 늘어서 있으니 딱하도다. 나는 저들과 함께 덧없는 이 세상에서 덧없이 살고 있다. 저들이 어떻게 덧없는 몸으로 덧없는 말을 타고 덧없는 길을 달리고 덧없는 재주를 잘하여 덧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덧없는 일을 보게 하는 것이 환(幻) 위에 환이 또 환이 되는 것임을 알겠는가? 이래서 밖에 나갔다가 번거로이 떠드는 것을 보면 서글픈 마음만 더할 뿐이다.(1813년 8월 4일)"

대학자의 사상과 철학의 작은 부분만을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통해서 접했습니다. 편지의 곳곳에서 읽을 수 있는 저자의 생각을 접하면서 한 시대의 훌륭한 어른의 사상을 좀 더 이해하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하여 얻은 소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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