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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 보이는

이호준

by 전익수

이 책의 저자는 스스로를 천천히 걸으면서 찍는 사진작가라고 소개한다. 도시의 삶이 너무 괴로운 젊은 시절을 어느날 문득 카메라를 들기로 마음먹고 사진찍기로 극복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책(사진 에세이집)에 실린 사진을 "천천히 걷다가 벼락같은 장면을 만난다."라는 멋진 문장으로 설명한다. 사진은 한 순간에 카메라 앵글에 잡힌 장면인데 작가는 사진을 계획하거나 연출해서 찍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어느 유명인의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는 말을 빌어 작가는 일상에서 만나는 풍경에서 어느 순간 벼락같이 다가오는 새로움을 사진으로 남겼다.

나는 작가의 사진에서 얼른 세수하고 스킨로션을 가볍게 바른 얼굴을 보는 느낌을 받는다. 의도적인 색보정과 뽀샵으로 진하게 화장한 도시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긴장하지 않고, 힘들여 분석하지 않으며, 편하게 볼 수 있는 사진 에세이집이다.

이 책은 작년말 조촐한 고등학교 선후배 송년모임때 선배로 부터 선물받은 책이다. 나는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책은 사서 읽어야 집중이 잘되고 내용이 어려워도 끝까지 붙들고 씨름하게 된다. 그래서 그냥 주어지는 책은 숙제를 받은 기분이라 잘 안 읽게 된다. 그렇지만 편한 느낌의 사진과 짧은 단상을 에세이로 엮은 이 책은 숙제라는 부담이 안든다. 그렇다고 내용이 가벼운 책은 아니다. 사진마다 주어진 작가의 짧은 에세이는 사진과 함께 삶의 깊이를 전해 주기에 한 권의 책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진한 감동은 같은 이 책을 읽고 4일전에 올린 선배의 짧은 인스타 피드에서 왔다. 한참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 보면서 순간 벼락같이 다가온 과거를 맞이하는 내용이었다. 애틋한 마음이 짧은 글에 진하게 녹아 있었다. 삶이 팍팍한 시절에는 엄청난 자전거 라이딩에 몸을 감당시키는 선배는 이 책의 작가가 말한 '벼락같은 만남'의 순간을 글로 남겼다. 그 글을 내가 이해한 느낌으로 줄여서 옮겨 보았다.

「 겨울 강변을 자전거로 달리다가 줄지어선 나무들 사이로 보일듯 안보일듯 명멸하는 석양을 보면서, 안타까움, 그리움, 초조한 감정을 절감하면서, 벼락같이 과거와 조우했다. 절망을 노래로 만들던 40년전의 골방과, 30년전의 방황과, 또 20년전의 추억을 만났다.

자전거를 타고 과거에서 달려서 현재로 흘러왔고 또 미래로 달려간다. 오늘은 자전거로 시공간을 넘어가는 시간여행을 경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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