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by 뭉크

한국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직계가족의 기본 증명서들을 발급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멀리 살고 연락을 끊고 살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자식이나 부모의 삶을 엿볼수 있다. 그네가 언제 결혼을 했는지 이혼을 했는지 아니면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어제 저녁 인터넷을 통해 나의 아버지의 기록을 조회해보았다. 만으로 40세가 되어 기념으로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인증서 암호를 입력하니 한번의 클릭으로 35년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아버지라는 사람의 증명서들을 마치 내 것처럼 먼 미국에서 열람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초만에 엿보게 된 아버지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벌써 마침표가 찍혀 있었다. "사망"이라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는 5살쯤에 아버지와 헤어졌고 그 뒤로 어머니와 둘이 살았다. 헤어지기 전의 몇 개월 동안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가출해서 떠돌이 생활을 하셨다.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은 주로 그래서 그 당시의 이미지들이다. 모르는 아줌마와 함께 야구장에 갔던 기억도 있고, 어떤 여인숙에서 본 은색 주전자도 기억이 난다. 수원역 앞의 풍경과 큰 천으로 구슬들을 닦던 어떤 성인 게임장 주인의 모습도 떠오른다. 아버지는 텅빈 게임장에서 핀볼같은 게임을 했고 나에게 얼마인가 용돈을 주었다. 문방구에 가서 실패 탱크를 사온 나는 게임 기계 위에서 그 탱크를 굴리며 놀았다. 그런 생활을 하시다가 돈이 떨어져 더이상 나를 데리고 다닐수 없게 된 아버지는 어머니께 연락을 했다고 한다. 부탁을 받은 이모는 밀린 여관비로 붙잡혀있는 아버지를 찾으러 와 나만 데리고 갔다. 이모의 말에 따르면 나는 울면서 아버지 다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드라마보다가 일시적인 감정으로 찾아본 것이고 큰 기대를 했던것도 아니었는데 "사망"이라는 스탬프를 보니 마치 모르고 허공을 딛어버린 기분이었다. 어떤 바보가 잃어버린 돈을 찾으려고 모든 주머지를 뒤지다가 마지막 주머니는 실망할까봐 뒤져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게 나인것 같았다. 어쩌면 내 삶의 해답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고이고이 아껴놨는데 막상 찾아보니 벌써 없어져 버렸다. 그것도 3년 전에. 내 연의 끈이 잘 묶여있나 당겨보았더니 그 끝은 이미 끊어져있었다.


다양한 행정서류들을 통해 그 삶을 조금은 더 엿보았다. 나는 아버지의 친 아들이라 모든 증명서를 너무 쉽게 볼수 있었다. 사망 신고서에서 어디서 언제 사망했는지 알수 있었다. 인천의 한 주소였다. 네이버 지도로 검색해보니 병원이었다. 그래 객사를 하신 건 아니구나 싶었다. 신고한 사람은 배우자였다. 이름은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한 20년 전쯤에 어머니와 함께 동사무소에서 내 호적등본을 발급받았을때 봤던 이름이었다. 혼인 증명서도 열람해보았다.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때 재혼을 하셨다. 그래도 그 배우자와 죽을때까지 사셔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배우자의 나이가 아버지보다 5살 정도 많았다. 연상을 좋아하는 타입이셨나. 왜 그렇게 일찍 돌아가셨을까. 영화에서처럼 배우자가 아버지를 죽이고 사고로 위장한건 아니겠지.


부모 자식같은 인연은 너무나도 특별한 관계일 것 같은데도 우주는 이를 조금도 특별 대접해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사망일에는 아무 일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난 특별한 꿈을 꾸지도 않았고 갑자기 길을 가다가 특별한 일을 겪지도 않았다. 나는 그 분이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고 언제나처럼 언제쯤 찾아볼까 하는 생각을 한번씩 하면서 지냈다. 예전에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도 그랬다. 한국에 혼자 남아 기숙사 생활을 하던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적어도 1년은 넘어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혈연이든 인연이든 별게 아니다. 전화번호를 잃어버리고 이사가버리면 우리는 서로간의 존재자체도 인지 하기 어렵다.


우리의 삶이 내 삶의 첫 5년동안 끈끈이 겹쳐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렇게 아버지와 나의 인연이 끝났다는 사실은 정말 허탈하다. 망연자실한 지금의 마음을 기록해두고 싶어 이 글을 썼다. 애초에 없었던 것을 잃어버린 것같은 기분이다. 산다는 건 정말 이상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아저씨"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