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주행한 왈칵 드라마
오랜만에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어느때부터인가 유튜브의 영화/드라마 요약에 중독되어 제대로 본 드라마가 최근 1~2년은 없었으니 참으로 간만이다. 얼마전부터 영화나 드라마보고 좀 삐쟈서 울고 싶었는데 "나의 아저씨" 덕분에 잘 울었다. 드라마 보다가 잠깐 설거지 하면서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나서 혼자 드라마 한장면 찍었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그렇듯 "나의 아저씨"는 판타지를 그린다. 그리고 모든 판타지 이야기가 그렇듯 그 속의 세상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아이유가 연기한 이지안이다.
몇년전 이 드라마가 처음으로 나왔을때 봤던 신문의 헤드라인 기사가 떠오른다. "나의 아저씨"라는 제목부터 이선균과 아이유의 캐스팅까지 너무 중년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담은 드라마가 아니겠는가라는 약간 "덮어놓고 까는" 기사였는데, 나도 덮어놓고 속으로 조금 동조했다. 하지만 막상 보고나니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선균이 연기하는 박동훈이 아니다. 박동훈은 판타지의 등장인물들이 그렇듯 엄청나게 평면적이다. 너무나도 선량하며 매일 술먹고 심심하면 폭력적으로 변하지만 책임감있는 상사이자 남편이며 어른이다. 이런 끝없는 모순점들이 바로 박동훈의 존재 차제가 바로 이지안의 판타지라는 것을 알려준다. 우러러볼수있는 어른. 아무 대가없이 나에게 잘해주며 마음은 한점의 티도 없이 깨끗하다.
도청이라는 장치는 너무 절묘하다. 그 어떤 어른도 믿지 못하는 이지안은 도청을 통해 아저씨의 외적인 모습뿐 아니라 사적인 삶과 속마음까지 엿들을수 있다. 그리고 그 한점 어긋남 없는 아저씨의 완벽한 삶에 마음을 연다.
이지안처럼 극도로 불우하진 않았지만 고등학교때부터 홀로 떨어져서 살아야 했던 나는 이 소녀의 캐릭터에 공감했다. 이 드라마는 환타지인게 나는 박동훈같은 아저씨도 만나지 못했고 후계조기축구회같은 따뜻한 사람들도 보지 못했다. 낯선 서울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이유없이 잘해준 사람은 없었고 내 마음엔 내가 숨쉴수 있는 공간에 대한 불안과 욕심만 가득했다. 20대 때는 이성들이 잘해주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언제나 연애 관계라는 목적이 있다. 연애 관계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모두가 갑자기 얼굴을 바꿔 떠났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모두 사랑받고만 싶어하고 사랑해줄 여유는 없었다. 다들 연애에 목을 맸지만 사실은 우리가 필요했던건 "이유없이 잘해주는 어른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도와주고, 보호해주고, 공감해주는. 좀 실패해도 괜찮아. 다 잘 살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이제 이지안의 나이가 아닌 박동훈의 나이에 가까워진 나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 판타지인지를 알아가고 있다. 40대의 두 아이의 아빠이자 누군가에겐 상사가 되었는데 나에겐 타인에게 이유없이 잘해줄 여유라곤 없다. 삶은 30대나 40대에 끝나는게 아니라 더 엉킨 상태로 나아간다. 나의 시간은 가족에, 책임에 그리고 무엇보다 내 욕심에 매여있다.
누군가에게 이유없이 잘해줘보고 싶다. 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 사람을 내 목적에 사용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래서 이지안은 아니더라도 예전의 나같은 마음의 사람이 있다면 그 속에 날서있는 불안들을 1%라도 펼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속의 날선 불안들도 같이 무뎌지지 않을까? "나의 아저씨"는 나같은 아저씨에게 그런 희망을 떠올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