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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스텔라 Sep 18. 2018

#7 첫 번째 버킷리스트

엄마 산소에 가고 싶어요.

이정순 씨(가명, 지적장애 3급)는 52세로 다중인격 장애가 있다. 질문을 하면 가끔 할아버지 목소리로 대답하거나 혼자 중얼거리기도 한다.

넷째 여동생 말로는 유년시절 사회적 분위기 탓에 언니를 밖에 못 나가게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때부터 남자와 여자, 아이 어른을 가리지 않고 역할놀이를 하면서 다양한 목소리로 말하는 습관이 굳어졌다고 한다.


정순 씨는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중퇴했다. 22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30대 중반까지 여러 친척 집을 오가며 살았다. 이모가 돌아가시고 친척 집 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자 15년 전쯤 친척 수녀님의 소개로 애지람에 왔다.


정순 씨는 애지람에서 맏언니 뻘이다. 동생들 운동화가 지저분하다며 빨아주기도 하는 ‘깔끔이’다. 평소 깨끗한 것을 좋아해서인지 직접 손빨래를 하고 주변 청소도 자주 한다.


애지람에서는 강릉 시내에 일반주택을 얻어 자립홈을 만들었다. 지역사회 내 소규모 가정집에 살면서 보통의 삶을 살고 자립 생활에 필요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다. 자립홈이 두 개가 되면서 여성 장애인 모두 두 달씩 자립생활을 경험했다. 그리고 요청에 따라 주택에서 생활할 분을 모셨는데, 그중에는 자기만의 방을 정리하며 깨끗이 살고 싶다고 했던 정순 씨가 있었다.


주택으로 이사하던 날, 두 평 남짓한 거실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셨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엄마 산소에 가고 싶어유.”

뜻밖의 대답이었다.

“갑자기 왜 가고 싶어진 거예요?”

“십 년 전에 가보고 아직 못 가봤슈.”


정순 씨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했다. 여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한 마디도 없었지만, 마음속에는 항시 그리움이 가득했었나 보다. 정순 씨의 속마음을 알고 나니 어릴 적 고향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정순 씨는 고향에서 살았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옛날에는 집 옆에 샘터도 있었는데 엄마랑 같이 살았어요.”

“어머니 산소가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꽃동네에 있는데 여동생이 알 거예요.”

“네, 산소에 갈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다음날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 산소 위치를 물어보았다.

“엄마 산소가 꽃동네에 있는지 언니가 모를 줄 알았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여동생은 의아해 하며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언니와 함께 산소에 가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위치를 알려줬다. 산소는 정순 씨 고향인 충북 음성에 있었다. 산소에 가져갈 음식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정순 씨와 의논했다.


“어머니는 생전에 어떤 음식을 좋아하셨어요?”

정순 씨는 하늘을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뭇국, 생선조림, 고깃국도 좋아했고 도라지도 좋아했고 사과, 배, 복숭아도 좋아하셨어유.”

“술은 안 드셨어요?”

“막걸리를 조금 마셨어유.”


정순 씨에게 집 앞 슈퍼에서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음식을 직접 사 올 수 있는지 여쭤봤다.

“나 돈 있슈.”

정순 씨는 미소 띤 얼굴로 지갑에서 만 원권 지폐를 꺼내 보였다.


깔끔하게 입고 가야 한다며 새 옷도 산다고 했다. 옷 가게에서 여러 옷을 들춰보며 신중하게 골랐다. 평소 입던 옷과는 달리 꽃 그림이 가득 수 놓인 옷을 골라 입었다.

“딱이네!”

거울 앞에 서서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활짝 웃었다.

“정순 씨 잘 어울리세요.”

잔디 꽃처럼 정순 씨는 수수하고 청초했다.


고향에 가는 날 아침 일찍부터 정순 씨는 가져갈 물건을 챙겼다. 차를 타고 가다가 휴게소에 들러 식사를 하는데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엄마를 만난다며 기대에 차 있었다.


충북 음성 꽃동네에 도착했다. 날씨도 맑고 정순 씨 기분도 좋아 보였다. 안내를 위해 윤 베드로 수녀님이 우리를 반겨주셨다. 준비해 간 음식을 스스로 산소에 놓을 수 있도록 도왔다. 정순 씨가 두 손을 모으고 절을 올렸다. 수녀님이 어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하라고 하자 산소를 바라봤다.


“엄마, 나왔어.”

“나는 잘 살고 있어, 나 이제 돈도 벌어.”

“오빠네 집 다시 지어야 할 거 같아, 오빠 잘 살게 해주세요…….”


정순 씨가 혼자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뒤돌아서 수녀님을 꼭 안으며 인사했다.

“고마워요, 엄마 잘 지켜줘서.”


정순 씨는 수녀님이 어머님을 지켜 준다고 믿고 있었다. 산소를 지키는 일이 어머니를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도, 그런 수녀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정순 씨에게는 낯선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감사 인사로 드러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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