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렇게 난 퇴사라는 걸 했다.

by 웨스티버

2019년 난 12년 다니던 직장을 관두었다.


생각해보면 난 우연찮게 이 일을 하게 되었다.

새로 생긴 팀이라서 인력이 부족했고, 정규 TO가 부족해 잠시 일을 도와줄 수 없겠냐는 제안을 받아 박사과정 중에 이런 종류의 연구도 배워볼 겸 시작하게 되었다.


연구직의 특성상 책상에 엉덩이 붙이고 1년 계획대로 조용히 공부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래도 우리팀의 업무는 연구를 하기 위한 자료를 외부에 위탁하여 수집하고 그 자료로 연구를 수행하기 때문에, 위탁업체 관리나 회의를 위해 외부출장이 있는 편이라 비교적 활동적인 편이었다.


중간에 정규 TO가 생겼고 다행이 가지고 있던 논문 실적이 있어 공채에 합격했고, 이후 학위를 따고 나서 박사급 공채에 합격했다.

뭐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몇년 뒤 책임자가 되고 나서였다.


말단부터 업무를 차근차근 배워오긴 했지만, 단 한번도 책임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너무 큰 예산을 다루는 일은 그만큼 주목도 많이 받을 뿐만 아니라, 직장 내 시어머니들이 많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 일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많이 요구되었고, 난 이 일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다들 비슷한 전공에 비슷한 일들을 하는데 반해 난 혼자 다른 전공에, 물론 일은 전공과 전혀 관계없었다.

내가 책임자가 되기 전에는 회사 동료들과의 어울림도, 일의 바쁨도 모두 좋았는데,

책임자가 되고 나서는 너무 큰 덩치의 예산으로 행정의 무게에 짓눌리고 그저 망할 '책임감' 따위 하나로만 지탱하고 있었다.

그저 본전만 하자라는 생각으로, 전임자가 하던 만큼 문제 없이 끌고가는 데는 나름 선방했다.


그러나 내가 이 일은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큰 예산이 수반되다보니, 애초 이 전임자들때 사업이 설계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고질적 문제가 내심 마음에 걸려왔다.

그걸 해결하려면 더 많은 예산투입과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한데, 이 조직은 그런 모험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현상유지만 하는 것이다.

이 찜찜함을 계속 가져가는 것도 문제고, 확 바꾸자니 그것도 문제였다.

소심한 나도 보수적으로 일단 전자의 스탠스를 취했다.


조직의 수장이 바뀌었는데, 우리팀 업무에 협조적이지 않았다.

마침 늘상 그렇든 또 감사가 시작되었고, 늘상 있는 감사에 우리팀은 또 막대한 예산만큼 감사의 요구자료도 막대했다. 뭐 그 돈 내가 몰래 먹는 것도 아니고, 요구하는 족족 답변서를 성실히 써서 제출했다. 소심해서 늘 규정대로 했기에 문제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몰려오는 회의감.

남들은 다들 자기 연구하면서 다니는데, 나는 왜 똑같은 월급 받으면서 전임자들이 싸놓은 똥을 치우고 있는가?

이 재미도 없고 스트레스인 일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팀 교체를 요구했다. 그런데 내가 나가면 이 골칫덩이 팀에 올 사람이 없어 팀도 못 바꿔준다는 답변을 받았다. 좌절..


감사 시즌,,, 그 시기에 난 우리팀 과제와 함께 내가 원하지도 않는 연구과제를 해야 했는데, 늘상 회사에 새벽 5시면 출근했고, 10시쯤 퇴근했다. 일이 많아서라기보다 불안함이 극에 달해 잠을 못자서가 맞다.

불안감과 예민함으로 2년 간 신경정신과를 몰래 다니고 있었고 그 무렵 조직과 맞지 않는 윗선의 요구가 있었고 그 요구는 우리팀의 방향과도 맞지 않았다. 버티는 것도 지쳐가고 있었다. 점점 늪으로 빠져 숨도 못 쉴 정도가 되고 하루 종일 약기운에 졸리기만 했다. 나중에 퇴사할때쯤 동료에게 들었다. 그 무렵 나는 “좀비” 같았다고. 감정의 기복이 없다보니 난 좀비 그 자체였다.


이 때쯤 이 일을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남들에게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이라 자부심도 무시 못한다. 그런데 잠시 잠깐이라도 안하고 싶었다. 그런데 방법이 없었다. 무려 12년을 오직 이곳에서만 일해와서 이직이란 건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단기로 쉴 수 있는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질병휴가는 있어도 그 외의 사유로 휴직도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범불안장애 진단서를 들이밀고 쉰다고 할 수도 없었다.


대학교때 헤어졌던 남자친구를 다시 만난지 2-3년쯤 되었는데 이런 어려움을 얘기해본 적은 없었다. 나보다 5살이나 많은 그지만, 우린 서로 너무 달라 내 사생활을 그에게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진 않는 편이었다.

그치만 그때 나에겐 위로가 필요했나보다. 큰 맘 먹고 내가 비참하지 않도록 애써 돌려 힘들다고 몇번을 말했으나 관심도 주지 않는다.

타지에 내려가 5년을 살다보니 그때는 너무 외롭고 더 서운했던거다. 그렇게 한두달 뒤에 터놓고 울며 말했다.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다”. 그냥 또 하소연이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그럼 관둬. 힘든데 왜 다니냐.”

한번도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디. 직장동료들에게서도 상상할수 없는 대답이다.

그렇게 힘들면 관둬라. 눈만 낮추면 굶어죽지 않는다. 너가 직장을 안관둬봐서 그렇지, 그렇게 힘들면 관두고 다른 일 해라. 먹여 살릴 가족도 없는 혼자인데 뭘 그렇게 겁내냐.


충격이다. 관둔다고?

이 직장은 정말 최고의 직장이고 정년까지 다닐수 있어 단 한번도 관둔다는 생각을 해본적 없다. 오죽하면 아는 사람도 없는 지방에 내려와서 대출로 아파트를 샀을까.

관두면? 이직? 그럼 국책연구단지로? 그건 계속 연구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오히려 여기보다 더 빡센 외국박사들과의 경쟁에 놓인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난 연구직에 관심이 없었다. 뭐랄까, 좀 그만하고 싶었다. 이렇다할 연구성과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난 특별히 관심있는 연구분야가 없었다고 보면 맞을 거다.

전공이 응용학문이다보니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지만, 내 전공과 이 직장에서 연구한 분야는 직접적 관련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 직장에서 내가 연구한 분야의 연구직을 지원하기에는 스펙도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런 걸 계속 연구하는 게 싫었다. 아예 다른 걸 하면 모를까.

난 그냥 이런 연구만 하다 죽어야 하는 건가. 이것밖에 안해봐서 이것만 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순간 앞이 캄캄하고 숨이 막혀왔다.

나는 손가락질 받기 쉬운 그야말로 아무런 기술도 없는 고학력 노처녀였다. 이런 내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새로운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무런 경력도 없는데?

이런 생각까지 이른 결과, 난 두개의 선택지를 갖고 있었다. 하나는 힘들어도 참고 버티며 이 직장에 계속 다니는 것, 나머지 하나는 퇴사하고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난 머릿속에 이 두 가지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만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선택지를 고르는 시간이 빨리 왔다.

우리집은 9층이다.

어느 날 일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거실에 들어서 밖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떨어져야겠다는 아주 강한 충동을 느꼈다. 땅이 나를 잡아 끄는 느낌이었다!!!

술을 마시거나 엄청 우울했던 것도 아닌데 어떤 힘 내지는 이끌림 같은 것이었다. 아주 강한 끌어당김.


너무 당황하고 무서워 집을 나왔다. 세 시간 정도는 밖에 있었던 것 같다. 집에 올라가면 아까 힘이 다시 나를 땅으로 잡아 끌까봐 두려웠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이런가? 자살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도 충동적으로 자살할 수 있는가? 정말 신기한 경험이다. 죽고 싶지 않은데 충동적으로 뛰어내릴 수도 있나.. 이 사건을 겪은 후로 내가 멀쩡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이쯤에서 멈추고 나를 돌보기로 했다.

이를 계기로 아주 깔끔하게 퇴사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때가 한해의 중반쯤을 지나고 있던 때다.

팀업무의 가장 큰 덩어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새로운 팀장이 오면 그대로 진행하면 될 것이고,

그때 내게 맡겨진 과제는 아직 손을 대고 있지 않았으므로 깔끔하게 털고 나갈 수 있었다.


미래의 계획은 없었다.

몸과 마음을 정상화시키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적어도 난 이쪽 생태계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마음 먹었다.

인생 2차전, 뭔가 새로운 걸 해보리라 마음 먹었다.

그게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열악한 일이라도,

난 혼자고 혼자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마음 먹었다.


결심 후 바로 사직서를 제출하였고

2주쯤 뒤 우리팀과 파트너업체와의 회의를 마지막으로 2019.7.10, 그날 난 퇴사를 하였다.

한 3년 쯤 쉬었다가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다.

퇴직금으로 남은 아파트 대출을 모두 해결하고 그때부터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기 전 방학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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