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 선생님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침묵이 위로와 힘이 되는

by 웨스티버

오랜만에 예전 드럼 선생님한테 카톡이 왔다.

전주에 있을 때 3년 정도 배운 선생님인데, 예뻤고(내 기억으로는 수지 닮았다) 성격도 너무 좋은 선생님이었다.

서울에 있을 때도 2-3년 정도 문화센터에서 드럼을 배울 때가 있었는데, 1:1 수업이 아니다보니 뭔가 배우고 발전한다는 느낌보다는 시끄럽게 음악을 들으며 '두드리러' 갔던 기억이 크다.

은근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었던지,

전주에 내려갔을 때도 드럼을 배울 곳을 찾아보았고,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배울 만한 곳이 있었다.

드럼 선생님은 회사 사람들 외에 새롭게 알게 된 유일한 사람이었다.

선생님의 연배는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나보다 7-8살 쯤 어렸지 않았나 싶다. 딸부잣집에 막내딸이고 언니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는 정도는 기억한다.

레슨을 갈 때마다 정기적으로 보게 되는 분이다 보니, 회사 일 외에 다른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얘기가 잘 통하는 분이어서 난 참 선생님이 좋았다. (선생님은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출장 때문에 레슨 일정을 바꿔야 하면 전주를 벗어나 어디론가 돌아다니는 걸 부러워하셨고,

여행 다녀오면서 조그만 기념품이라도 사다드리면, 그걸 또 여자 혼자 외국에 나갈 수 있는 용기가 부럽다 하셨다. 뭐랄까 선생님한테 난 약간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나보다.

드럼 레슨이 전주 생활의 유일한 탈출구이자 다른 시간과 공간에 나를 잠시 담갔다 오는 시간이었다.

내가 한창 퇴사를 고민할 때도, 퇴사 이후에도 드럼 레슨만은 계속했었다. 실력은 없어도 그저 그 시간이 좋아서.

그 해 내가 선생님께 연말 파자마 파티를 하자고 집에 초대를 했다. 수강생한테 이런 초대 처음 받아본다 하셨다.

우리집에 그 전주의 맛난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선물이라며 코끼리 인형도 들고 오셨더랬다.

그렇게 연말 파자마 파티 사진 한장을 남겼고, 난 그 다음 달로 전주를 떠났다.


이후 선생님과 안부를 묻는 카톡 정도 했고, 언젠가 선생님 밴드가 유투브 라이브 공연한다기에 그걸 시청했다.

결혼한다는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으나 가지는 못했고,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선생님은 예쁜 공주님을 낳으셨다.


오늘은 책을 읽다 문득 예전 추억이 떠올랐다며 카톡을 쏘셨고, 이제는 대구에 살고 계시다 했다.

4년간의 시간 동안 선생님에게 많은 변화가 느껴져, 변화가 거의 없는 내 생활과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답장으로 내가 살아보고 싶은 삶을 살고 있다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은 그 용기를 닮고 싶다 했다.

대단치도 않은 비루한 삶이지만, 응원군 한 명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해졌다.

연말인데 왠지 후끈한 이 느낌 뭘까.

중년 아줌마가 된 나를 보고 놀라겠지만, 아이가 엄마와 떨어질 수 있을 때 쯤 엄마방학으로 만나기로 했다.


선생님 말처럼,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침묵이 위로와 힘이 되는

전주에서 건진

귀중한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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