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짜침과 수망로스팅 반이 개설되지 않았던 이유
이번 달에는 토요일마다 4시간씩 로스팅과 핸드드립을 배우고 있다.
이번 수업의 구성원은 느낌이 또 다르다.
커핑을 다닌다는 미각이 남다른 분도 있고, 무산소 발효커피를 찾아 마시러 다닌다는 특히 리치피치를 좋아한다는 분도 있다. 지난 바리스타 수업과는 완전 다른 분위기다. 선생님도 전에 배웠던 의욕 뿜뿜한 선생님이라 제대로 배우겠다 싶다.
지난 주에는 둘씩 짝을 지어 기계로스팅을 처음 해보았다. 팀마다 온도나 시간 등의 세팅값을 정해 원두를 볶았다. 우리 조는 30초 간격으로 온도를 체크해가며 크랙 소리가 나는지 귀 기울여 들어보았고, 최종으로 볶은 원두를 냉각시킨 후 볶은 콩을 씹어 먹어도 보았다. 우리가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분쇄해 뜨거운 물을 붓고 시간 흐름에 따라 커피의 맛과 향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관찰하며 커핑도 해보았다. 재미있는 경험이다. 그런데 내가 신청한 수업은 '수망로스팅+핸드드립' 과정. 수망은 도대체 언제 하는거지?
"선생님, 수망은 안해요? 저 그거 배우고 싶어서 신청했는데.."
"여러분, 수망 꼭 배우고 싶으세요? 그래도 한번은 할 거예요"라 하시며 적당히 넘어가는 눈치였다.
난 분명 '수망로스팅+핸드드립' 과정을 신청한 거란 말이다. 브루잉은 알려주신다 하는데, 왜 수망로스팅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를 안하실까?
난 오늘에야 그 이유를 확실히 알았다.
드디어 오늘은 수망 하는 날. 기대한 날이다.
선생님이 가정용 수망로스터를 우리에게 나누어주셨다. 새 거였다.
저울로 계량한 생두에서 결점두를 제거한 후 수망에 넣고 가스불 위에서 흔들며 볶기 시작했다. 균일하게 색을 내기 위해서는 쉼없이 흔들어줘야 한다. 시간이 가면서 커피콩의 색이 점점 노랑에서 갈색으로 변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원래 볶을 때는 중약불에 볶아야 해요. 그런데 우린 처음이니까 강불에 볶아보시면서 색깔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세요. 처음 볶은 원두는 안 먹어볼거예요."
가스불에 원두가 직접 닿다보니 커피껍질인 체프가 타서 여기저기 날리고 연기가 피어 오르기 시작한다.
아, 계속 흔들어대다보니 연기가 점점 심해진다.
좁은 교실 속 심지어 손바닥 만한 창문 하나 밖에 없는데, 7명이 연기를 뿜어대고 있으니 교실에 연기가 점점 자욱해진다.
선생님 왈, "여러분, 제가 왜 왠만하면 수망 로스팅 집에서 하지 말라는지 아시겠죠? 엄마 등짝 스매싱 맞아요. 연기도 너무 많이 나고, 체프 날린 거 어떻게 치울 거예요?"
그래도 우린 즐겁다. 내 눈앞에서 원두의 변화를 생생하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체프가 날리고 콩이 익으며 딱딱!하고 크랙 소리가 난다. 오일도 나기 시작했다.
연기가 자욱한 교실에서 우린 콜록거리며 연신 콩을 흔들어댔다.
연기가 모락모락.
"선생님, 불났어요? 연기가 왜 이렇게 심해요? 학원에 연기가 꽉 찼어요!"라며 밖에서 어떤 여자분이 다급히 교실문을 열어 제낀다.
선생님은 "괜찮아요. 원래 이래요"라 하신다.
(뭐지??)
우린 머리부터 발끝까지 연기에 쩔었고, 더 이상 숨쉬기도 힘들겠다 싶을 때쯤 둘러 보니 선생님은 교실에 없었다. 잠시 복도로 나왔는데, 그 와중에도 교실에서 열심히 콩을 볶는 분도 계셨다. 열정 수강생....
'건물에 화재가 발생했으니 모두 건물 밖으로 대피하라'는 방송이 복도에서 들린다. 화재경보기가 작동했는지,이 건물에 방송 나오는 거 처음 봤다.
연기를 빼기 위해 에어컨 송풍을 틀어놓고 잠시 밖에 있다 들어왔다. 잠시 시간이 지난 뒤 연기가 조금 가셨다.
그 즈음....허,,
교실로 들어오시는 119 소방대원 세 분.
그분들도 황당해 하신다.
(나도 황당하다. 이 세츄에이션. 푸하하하하하 ㅋㅋㅋㅋㅋㅋㅋㅋ!!)
소방대원이 의자 좀 빌려달라며 의자에 올라가 화재경보기 작동을 멈추었다.
(내 평생 화재출동으로 119를 만난 경험은 처음이다.)
아, 올해 1년치 웃음은 오늘 다 웃은 것 같다.
한 5분쯤 지났나?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여러분, 원래 이래요. 7명이 연기내다보니 연기가 심했네요. 전에도 한번 119 온 적 있어요. 안그래도 오늘 아침에 부원장님이랑 장난 삼아 오늘 수업하다 119 오는 거 아니냐고 했었는데, 말이 씨가 되었네요"
(난 주책 맞게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이 황당한 상황이 너무 웃기다.)
수강생 한분이 "선생님, 저한테 로또 맞으라고 얘기해주세요. 말이 씨가 된다고 하시니"라고 한다.
모든 사태가 정리되고 수업 마칠 때 쯤 된 선생님의 의미 심장한 멘트.
"아, 짜치네요.. 오늘의 쪽팔림은 제가 다 안고 갈게요. 제가 이래서 수망로스팅 과목 없애자 했었는데..."
수망로스팅 반이 계속 개설되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어쩌면 이 학원의 수망로스팅 마지막 반의 학생이 될 지도 모르겠다.
힘들고 지쳐 웃음이 필요할 때 기억할 오늘이 생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