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첫날에는 무엇을 배울까?

물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안 쉬어지는 느낌이었다.

by 김선경

강습 첫날이 왔다. 수영장에 20분 전에 도착하여 수영장 데스크에 회원카드를 내밀었다. 나의 수영카드는 사물함 키 그리고 수건 두 장과 교환되었다. 여자 탈의실 쪽으로 들어가서 사물함 번호를 찾는다. 다들 옷을 벗고 있어서 나도 얼른 옷을 벗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자리를 찾아 신발을 넣고 옷을 벗으니 남들과 비슷해졌다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제 목욕바구니와 수영도구가 든 방수가방 그리고 수건을 들고 샤워실로 들어가야 했다. 여기까지는 내가 머릿속에 그려왔던 그림 그대로다. 샤워실에 들어가자 오른쪽에 목욕바구니가 많이 놓인 선반이 보였다. 나도 여기에 바구니를 내려놓고 필요한 샤워도구만 챙겨 샤워실로 들어갔다. 얼른 머리를 감고 몸을 씻었다. 수영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고 했으니 열심히 씻는 것처럼 행동했다. 다 씻었는데 머리를 묶을 고무줄이 사물함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수영하는 사람들은 머리끈을 샴푸통 입구에 몇 개 걸어놓더라. 꿀팁이다. 몸을 대충 닦고 샤워실에서 나와 사물함에서 머리끈을 찾아서 들어갔다.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이다. 수영복, 수영모자, 물안경까지 쓰고 수영장으로 입장.


수영장의 구조는 탈의실을 지나 샤워실 그다음이 수영장으로 연결된다. 이 상식적인 구조를 나는 왜 오기 전까지 떠올릴 수 없었던가? 그리고 어차피 나올 때 또 샤워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목욕 바구니와 사물함키는 샤워실 입구의 선반에 올려두면 되는 것이었다. 누가 가져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는 스타벅스에서 자리를 비울 때도 노트북은 그냥 두고 가도 되는 나라가 아니던가? 문제는 내가 너무 수업에 늦은 것 같았다. 수영장으로 입장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쭈뼛 거리며 수영장으로 내려가니 강사처럼 생긴 한 사람이 제일 끝라인을 가리키며 저쪽으로 가라고 손짓으로 알려주었다. 내가 등록한 수영장은 레일이 짧고 레일도 다섯 개뿐이어서 들어가면 아늑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 수영장은 아파트 상가의 지하에 있는데 상가 중간 계단으로 내려오면 아주 작은 중정이 있고 그 뒤 통창으로 수영장이 보인다. 지상에서는 전혀 보이지도 않고 수영장이 있는 건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딸의 친구 엄마를 따라 딸아이를 블록방에 데려다주는 날. 처음으로 상가 뒤편에 있는 중간계단으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내려오며 통창으로 비치는 수영장을 보았다. "어머, 여기에 수영장이 있네요!"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한 것 같았다. 정말 낭만이 있는 수영장처럼 보였다. 왠지 이런 곳에서라면 수영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오니 그 분위기가 그대로였다. 그 점이 만족스러웠다. 오전시간은 여성전용 강습시간이라 모두 여자회원들이었고 초급반 선생님은 젊은 남자선생님이었다. 물 밖에서 서서 혼자라도 준비운동을 해야 하는 건가, 준비운동을 해야 물속에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닌가, 이미 끝난 것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수영장 물을 가리키며 "들어오세요~!" 하신다. "네? 지금요? 여기로요? 여기는 사다리도 없는데요?" 하자 선생님이 내려와도 된다고 한다. '그래 죽기야 하겠어?' 하며 준비운동도 없이 미끄러지듯 수영장 속으로 들어갔다. 물은 내 가슴과 어깨의 중간정도의 깊이였다. 1.2m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물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미지근한 것보다는 조금 차가운 편에 가까운 온도였다. 체온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수영장 물은 이렇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수영은 할 줄 아세요? 배운 적 있으세요?" 물어보신다. 나는 "아니요. 한 번도 배운 적 없어요. 수영을 전혀 못해요."라고 대답하니 "아, 그럼 지금부터 호흡법을 연습할게요." 하신다. '헉 이렇게 바로 하는 건가?' 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입은 다물고 코로 숨을 후 내쉬면서 물속에서 3초를 세기. 처음엔 귀까지 담그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더니 5번 정도 하자 이제 머리를 모두 집어넣는다고 생각하고 들어가서 5초를 세고 나오란다. 나는 어금니를 악 물고 눈은 꽉 감은 채 물에 들어갔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어깨에 긴장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깨긴장과 어금니 꽉 그리고 눈 감기는 한 세트니까.


코로 숨을 쉬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횟수가 늘어날수록 숨이 가빠왔다. 자연스럽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사실 가슴 높이까지 올라오는 물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안 쉬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더니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 것인지 손이 저리면서 오징어처럼 손이 스스로 말리듯이 꼬이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벽을 잡고 머리를 물에 담갔다 올라왔다 해야 하는데 손이 자꾸만 멋대로 꼬이니 수영장 벽 모서리를 제대로 잡고 있을 수도 없었다. 선생님은 다른 회원들을 봐주러 멀리까지 가 있는 상태였다. 개인교습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며, 물 밖으로 나왔다. 수영장에 무릎까지만 담그고 걸터앉아서 잠시 쉬는데 물 밖으로 나오니 몇 초만에 추워졌다. 아이 참, 어쩔 수 없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선생님이 오시더니 이번엔 앉아서 발차기 연습을 해보자고 하신다. '그래 발차기는 괜찮을 거야 물에 들어가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물속으로 빠질 것처럼 앞으로 최대한 나오시라고 하시더니 발을 곧게 펴고 발등을 올리듯이 발가락을 쭉 펴고 높게 차라고 하신다. 배에 힘이 들어가고 허벅지도 아파왔다. '고관절이 아픈 건 정상인가. 물에 안 들어가도 고통스럽네. 왜 내가 수영을 한다고 했지?' 혼잣말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질문을 하신다. "그런데 수영은 왜 배우려고 하세요?" 드디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인가? 나는 준비해 두었던 말을 꺼냈다. "저는 물을 무서워하지만 물에 뜨고 싶고요. 어떤 식으로든 물에 떠서 앞으로 가는 게 목표예요. 그것뿐이에요." 이렇게 말하고 나니 후련했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그러면 물에 떠봅시다. 지금이라도 뜰 수 있어요." "네? 지금요?" 지난 41년간 물에 떠본 일이 없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나. "머리를 최대한 아래로 넣는다고 생각하고 숨을 참아보세요. 숨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참는 거예요. 숨을 참는 것은 물속에서 말고 물 밖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10초 정도 참아보세요. 머리를 물 안으로 넣으면 다리와 엉덩이가 서서히 물 위로 떠오를 거예요." 그래 머리를 물에 넣고 숨을 참아보자. 그런데 나는 머리를 물에 넣는 게 제일 무서운데. 힘들면 올라오면 돼. 시키는 대로 숨을 참고 고개를 푹 넣은 뒤 몸에 힘을 풀었더니 다리부터 엉덩이가 물 위로 떠올랐다. 어깨에 힘을 풀면 풀수록 더 둥실 떠올랐다. 둥실, 이 기분이 너무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10초가 넘게 숨을 참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지. 내가 물에 뜨는 일이 일어났다.


그 기분이 정말 좋아서 선생님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몇 번을 더 해보았다. 심지어 눈도 떴다. 물속에서 코로 숨을 내쉬는 것보다는 숨을 참는 것이 나에게는 더 쉬웠다. 어느 새부터인지 손도 저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까는 이 정도 깊이의 물에 있다는 것만 해도 숨이 안 쉬어지는 기분이었는데 이젠 괜찮았다. 한창 신기함에 들떠있는데 선생님은 그다음을 준비하고 계셨다. 키판(물에 뜨는 재질의 넓은 판)을 가지고 오시더니 발차기를 하면서 다른 회원님들을 따라 가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에이, 내가 어떻게? 그래, 가라면 걸으면서라도 가야지 어쩌겠나. 나는 키판 끝을 손으로 잡고 머리를 물 안으로 넣으면서 숨을 참고 몸을 띄울 때처럼 자세를 만들며 발차기를 했다. 어쩔 땐 숨을 참고 가고 어쩔 땐 숨을 내쉬며 갔다. 그런데 머리를 들어 숨을 들이쉬어야 할 타이밍에는 무조건 발을 바닥에 대고 설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숨이 너무 찼다. 마치 내 코가 정상적으로 뚫려있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진짜 감기로 코라도 막히면 수영은 못하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코로만 숨을 들이마시는 것은 너무 적은 양만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고개를 들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려고 하니 입도 벌어지고 자연스럽게 입안에 물이 들어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키판을 잡은 팔에 힘이 들어가면서 키판이 자꾸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기분이 너무 불안해서 한번 가고 멈추고 한번 가고 멈추고를 반복했다. 매번 숨을 들이마셔야 하는 타이밍에 발을 수영장 바닥에 붙여야만 했다.


같은 라인에서 수영을 하던 할머니가 인자한 얼굴로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건다. "나도 처음엔 물도 많이 먹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곧 자신만의 방법으로 호흡하게 될 거예요." 귤색과 갈색이 섞인 체크무늬 수영복을 입은 70대 할머니가 유유히 접영을 하며 앞으로 지나간다. 나도 얼른 키판을 앞으로 두고 그 뒤를 따라간다. 그래 나도 나름 물에 떠서 가는 거야. 나도 수영을 하고 있는 거라고. 저렇게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생각하며 발차기를 해본다. 벌써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되었나 보다. 다른 회원들이 수영을 하지 않고 앞쪽에 모여있었다. 나도 얼른 가서 합류했다. 선생님께서 끝인사를 하신다. 그리고 모두가 손을 잡고 동그랗게 서서 인사를 나누었다. 수영장의 끝인사법은 이런 거구나.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본지가 언제였던가? 끝인사를 나누며 물에 둥둥 떠 있자니 나의 오늘 첫 수영장 경험이 머릿속에서 정리된다. 나는 이제 물속에 머리를 넣을 수 있게 되었고, 물속에서 눈을 뜰 수 있게 되었으며, 내 몸도 물에 띄울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하루 만에 획득된 나의 물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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