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품은 랜덤입니다.
손목시계를 좋아한다. 스무 살에 떠난 배낭여행지 이탈리아 베네치아. 그곳에서 나의 눈을 한 번에 사로잡은 것도 역시 시계였다. 본체 유리판 가장자리에 꽃모양의 유리가 세공된 디자인의 손목시계였다. 베네치아 역 앞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언니들과 골목골목 예쁜 가게를 기웃거리다 그 시계를 발견했다. 아기자기한 물건을 구경하거나 멋진 가게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우리는 한국에 기념품으로 사갈 것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이 시계를 발견하고는 네 명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가죽줄 색깔도 노랑, 파랑, 진분홍, 연두, 빨강, 보라 등으로 화려했다. 외할머니의 화려한 몸빼바지 색깔이 떠올랐다. 한국 돈으로 2만 원 정도 했던 것 같다. 고심해서 모두들 한 개씩 골랐다. 나는 연두색 줄의 시계를 샀다. 가격이 저렴해서 그런지 따로 케이스는 없었다. 도톰한 흰색 비닐봉지에 시계를 넣어주었다. 나는 시계를 받자마자 봉지에서 꺼내 바로 손목에 둘렀다. 언니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 얘 너 지금 그거 바로 차려고?"
"네, 왜요?"
"아니, 그거 기념품 아니야?"
"맞는데요."
"잘 들고 가서 한국에서 차야지."
"예쁘니까요. 헤헤... 그리고 또 언제 잃어버릴지 몰라요."
그랬다. 베네치아로 오기 직전 나는 파리에서 백팩을 소매치기당한 전력이 있었다. 한 달 반 일정의 중반이었다. 그 안에는 내가 여행 내내 쓰던 가죽 다이어리, 아빠가 나 태어난 기념으로 샀던 수동 카메라, (심지어) 여권, (유일한) 신용카드가 들어있었다. 다른 부수적인 분실물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파리 민박집에서 만나 같이 여행하던 언니오빠들은 이제 어떡하냐고 걱정했지만 정작 나는 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신용카드는 비상용으로 들고 온 것이었고, 현금이 조금 남아있으니 그것으로 아끼며 다니면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대사관에 가서 모레 파리를 떠난다고 이야기했더니 다음 날 바로 여권을 대신할 여행증명서를 발급해 주어 어렵지 않게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오히려 돈이 없으니 가뿐했다. 그러나 나는 약간 빌어먹으며(?) 다녀야 했다. 한국사람들이 보이면 반갑다고 만세를 부르며 뛰어가지는 않았지만 우연히라도 말을 섞게 되면 친절하고 재미있고 웃기는 막내가 되려고 노력했다. 스무 살이었기에 혼자 다니는 나이로는 가장 어릴 수밖에 없는 나에게 언니 오빠들은 기꺼이 밥이나 간식을 사 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베네치아에서도 나는 언니들이 사주는 젤라또를 먹으며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그날 저녁, 일행 중 한 언니가 엄마의 전화를 받더니 얼굴색이 안 좋아졌다.
"언니, 무슨 일 있어요?" 언니는 물어본 나에게 대답하지 않고, 같이 다니던 언니 친구에게 급하게 이야기한다.
"야, 내 그 바지 있잖아. 카키색 반바지."
"어, 그거, 니가 무겁다고 파리 민박집에 버리고 온 거?"
"그래, 그 바지!!! 우리 엄마가 그 바지 안 쪽에다가 비상금을 넣어놨었대~"
"어? 바지 안 쪽 주머니에 넣어두셨으면 니가 알았겠지."
"아니, 엄마가 나 놀래켜 주려고 비밀 주머니를 만들어서 꼬매놨대."
"뭐?"
"150유로 넣어놓았다고, 그거 뜯어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지금 말해줬어."
나는 그 돈이 버려졌다는데 놀라지 않았다. (나는 더 많은 것을 파리에 두고 왔으니까?) 배낭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 날까지 나는 8시간씩 던킨도너츠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고, 과외도 두 개씩 뛰었다. 이 일터에서 저 일터로 옮겨갈 때 누가 이동하는 동안만이라도 차를 태워주면 정말 좋겠다고 지글지글 끓는 아스팔트 위에서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며 생각했다. 그래도 일을 하는 동안에는 친구들을 만나 돈을 쓰지 못하니 돈을 두 배로 버는 느낌이라 그건 좋았다. 내가 배낭여행 비용에서 부모님께 지원받은 것은 유럽 왕복 비행기표였는데, 당시 수중에 돈이 전혀 없었던 부모님은 그 마저도 지인에게 빌려서 마련한 것이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니 언니네 부모님이 비상금을 150유로나 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심지어 그 돈은 비상금에 비상금 격인 서프라이즈 비상금이라는 것, 게다가 엄마가 바지에 비밀 주머니를 따로 달아서 꿰맬 시간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비상금 주머니를 만들어 달아야겠다는 엄마의 발상, 그 발상을 만들어 낸 여유와 사랑. 그런 것이 놀라웠다.
그날 저녁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언니네 엄마를 생각하다 그 가족을 생각했다. 손목시계를 사자마자 착용하는 나와 손목시계를 찰 미래를 기다리는 언니. 그게 단순히 성격의 차이가 아닐지도 몰랐다. 어릴 때부터 가난했던 우리 집에서 나는 좋은 것을 누리는 때가 별로 없었다. 있다면 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곧 빼앗기거나 원래 내 것이 아니었는데 잠깐 빌린 것이거나 그마저도 아니면 잃어버렸다. 그래서 좋은 것이 생기면 누릴 수 있을 때 최대한 누리자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언니는? 지금 잠시의 기쁨을 보류하고 나중의 기쁨을 찾는 사람이다. 미래를 계획하고 그 계획대로 삶을 이뤄온 사람들(언니네 가족)과 계획을 하긴 했지만 그 계획이 좋지 않았거나 운이 없어서 계속 무너지는 경험을 했던 사람들(우리 가족)의 차이일까? 자신의 먼 미래를 내다보고 차곡차곡 준비해서 뻗어나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나처럼 손목시계를 바로 차기보다는 아껴두고 한국에 가서 열어보는 것일까? 무엇이 더 나은지 모르겠지만 언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그 다름의 원인이 가족의 분위기와 역사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하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언니들과 예쁘게 단장을 하고 숙소를 나서는데 언니들 손목에 어제 산 시계가 둘러져 있다. "어, 언니들 시계 했네요?" "으... 응... 한번 해봤어." 언니들도 어제 나만큼 생각이 많았나 보다.
그 시계는 베네치아에서 계속 내 손목 위에 있었다. 한 사람이 지나다니기에도 좁은 베네치아의 골목, 얇은 도우에 넘치도록 올라간 풀들이 인상적이었던 피자, 하루에 3번씩 먹던 젤라또, 검은색 물 위로 미끄러지듯 지나다니던 곤돌라. 이 모든 것들이 시계와 함께 내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시계를 착용했다. 베네치아에서는 조금 화려하긴 하지만 나에게 어울렸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오니 그 시계는 물과 기름처럼 겉돌았다. 한국에서 입는 옷에는 그 시계가 너무 과했다. 그래도 나는 꿋꿋이 연두색 가죽줄에 화려한 유리세공이 된 베네치아 시계를 차고 다녔다. 왜냐하면 손목을 슬쩍 내려다볼 때마다 시계 주변으로 베네치아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기 때문이다. 시계가 마치 빔프로젝터가 된 것 같았다. 이 시계야 말로 정말 잘 산템이었다. 이런 것이 여행의 기념품이구나 싶었다. 이런 느낌을 가지려고 사람들은 여행에서 기념품을 사 오는구나 생각했다.
그 시계는 놀랍게도 음악을 함께 들려준다. 빔프로젝터로 베네치아 곳곳의 장면을 보여주면서 노래도 배경으로 깔아주는 신통방통한 시계다. 내 귀에만 들리는 음악은 토이의 <좋은 사람>이라는 노래다. 2001년 토이 5집 앨범 <Fermata>의 타이틀 곡이었던 <좋은 사람>은 뮤직비디오를 무려 베네치아에서 촬영했고, 음반의 재킷사진도 유희열이 곤돌라를 타고 있는 장면이다. 나는 그 해 여름, 휴대용 CD플레이어로 내내 이 음악을 들으며 여행했다. 그래서 지금도 <좋은 사람>을 들으면 2001년 유럽 배낭여행의 기억이 와르르 쏟아진다. 그렇게 스무 살 첫 여행을 통해 나는 기념품의 정의를 세웠던 것 같다.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기념품은 내가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나를 그 여행으로 풍덩 빠트리는 어떤 것이다. 어떤 물건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 향기, 음식, 사람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 앞에서 파는 우편엽서나 마그네틱도 기념품이 될 수 있겠지만 왠지 처음부터 기념품으로 만들어진 그런 상품들은 한국으로 돌아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물론 이런 상품들 중에서도 독특한 사연으로 진짜 기념품이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그로부터 2년 뒤 떠난 두 번째 배낭여행에서는 주제가를 준비해 가기로 했다. 성시경 CD를 가져가서 여행 내내 주구 장창 듣다 오면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여행했을 때 기분이 기억나겠지. 이 노래가 제2의 <좋은 사람>이 될지도 몰라. 준비하는 김에 향기도 기념품으로 미리 골라볼까. 친구에게 은은한 라벤더 향이 도는 바디클렌져를 선물 받았다. 여행 갈 때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사주겠다는 고마운 친구에게 내가 사달라고 해서 받은 것이었다. '여행 내내 이 향으로 샤워를 하면 한국에 와서도 이 향을 맡을 때마다 여행지의 추억이 떠오를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념품을 만들고자 했던 나의 노력은 둘 다 실패했다. 나도 그것들이 왜 기념품이 될 수 없었는지 왜 빔프로젝터가 되지 못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라벤더향은 바디클렌져 향으로는 너무 흔했고, 성시경의 음악은 여행지의 느낌과 동떨어졌기 때문이었을까. 미묘한 기념품의 세계였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여행 전 기념품을 미리 준비하는데 공을 들이지 않았다. 두 번째 여행을 통해 나는 나의 의도만으로는 기념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에도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기념품다운 기념품을 만나기 힘들었다. 해외 현지에서 산 물건이라고 기념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기념품으로 만들겠다고 한국에서 준비를 해 가도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만 여행을 자주 다니며 기념품이 될 만한 것이 운명적으로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신혼여행으로 싱가포르에 갔다. 여름날씨라 샌들만 가져갔는데 계속 걸으니 발이 조금 아팠다. 점심 식사 후 산책하다 편집숍에 들렀다. 가게 바닥에 놓인 납작하고 넓은 왕골 바구니에 여러 사이즈의 벤시몽 운동화가 몇 켤레 들어있었다. 마침 나의 발에 맞는 신발이 있어서 신데렐라가 된 기분으로 "오, 이건 사라는 계시인가?" 하며 구입했다. 그 이후로 싱가포르에서는 그 신발만 신고 다녔다. 밑창이 얇고 전체는 흰색 캔버스 천이었고, 솔기에 하늘색 테두리를 둘러져있었다. 끈으로 묶는 운동화였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가져간 모든 옷들이 그 신발과 어울렸다. 원피스도, 바지도, 반바지도. 이 느낌은 뭐지? 기념품의 느낌인가? 역시나 였다. 벤시몽 신발은 좋은 기념품이 되었다. 그 신발을 신고 걸을 때마다 내딛는 바닥이 싱가포르의 깨끗한 길 위가 되었고, 그 옆으로는 야자나무가 펼쳐졌다. 신발은 싱가포르의 소리와 공기, 냄새, 기분을 끌고 왔다. 신발을 아껴서 신었다. 그 운동화는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은 모델이었지만 지금은 구할 수 있다. 전혀 특별하지 않은 상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특별하다. 그것은 싱가포르 프로젝터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기념품은 현지에서 사서, 그곳에서 사용하다가 온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구입한 즉시 대차게(?) 사용하는 나의 성격도 기념품을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 같다. 현재를 충실히 누리게 해 주신 부모님께 갑자기 감사를 드려본다. 여행지에 간 이방인인 나와 그곳의 물건. 그 둘이 당장에 어울릴 수 있다면 기념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데 그것도 기념품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생각해보면 여행 중 꼭 필요해서 산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 시간이 지나 봐야 그곳의 여행 기념품이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여행 후에 어떤 물건이 나를 과거의 여행지로 확 잡아끄는 경험을 하는 순간, 폭죽이 터지고 '기념품 선정식'의 팡파레가 울린다. 실로 축하받을 만한 순간이다. 기념품이 만들어지지 않는 여행도 많으니까. 기념품이 만들어지는 여행은 특별하다.
한국에서 가져간 휴대용 치약을 다 써서 파리에서 치약을 샀다. 그리고 쓰던 치약이 많이 남아 한국에 가져오게 되었다. 특별한 치약이 아니었다. 치약을 사는 김에 비누도 샀다. 엄청 좋은 고급 비누가 아니라 우리나라 돈으로 3,000원 정도 하는 비누 몇 개였다. 돌아다녀보니 파리 사람들의 향 취향이 우리랑은 조금 달랐다. 화장실에 비치된 손세정제를 쓰면서 느꼈다. 약간 동남아시아풍의 달달한 꽃향기가 많았다. 나는 일부러 향을 상상하기 어려운 처음보는 꽃과 열매가 그려져 있는 비누를 3개 정도 골라왔다.
한국에 돌아와 치약을 사용할 때마다 튜브에 적힌 프랑스어가 보이고 내 입안에도 파리에서 느꼈던 치약향이 퍼지며 여행이 끝났는데도 여행 중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매일 하루에 세 번씩 그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양치질을 했다. 그때 번뜩 생각이 들었다. 아, 이번 여행 기념품은 치약이구나! 비누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매일 거품을 내어 몸을 씻을 때마다 프랑스로 여행을 간 기분이 든다. 치약이나 비누나 향이 엄청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용할 때마다 그곳으로 나의 마음을 데려다주었다. 양치를 하고 비누를 문지를 때마다 파리에서 아침을 시작하는 샤워실의 들뜬 분위기가 된다. 우리 집 화장실 문을 열면 파리의 숙소일 것 같다. 현관문을 열고 뱅글뱅글 나무 계단을 내려가, 파리의 하늘 아래에서 유모차를 밀고 하루를 시작하겠지.
욕실에서 뛰어나와 남편의 어깨를 끌어안고 울었다. “흐엉엉~!” “왜 그래?” “파리에서 사 온 치약을 다 썼어~!” (물론 장난으로 우는 거다) 남편도 서운해했다. “그러면 유럽 치약이 하나도 안 남은 거야? 다음엔 더 많이 사 오자.” (언제?라고 묻고 싶다) 납작해진 치약을 주무르며, 브랜드를 살펴본다. 그런데 이거 우리나라에서도 파는 것 같다. 심지어 이 치약은 미국브랜드의 제품이었다. 이름은 colgate. 올리브영에 있다.
여행을 가면 쇼핑하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지요. 한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특이한 것, 또는 한국에도 수입되지만 현지에서 사면 특히 저렴한 것, 여행을 추억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지인들에게 선물하면 좋아할 만한 것, 그런 것이 무엇일까 궁리합니다. 이런 여러 항목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을 찾아내기도 힘든데,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현실적인 조건도 붙습니다. 여행 전부터 머리가 아파오지요. 파리 가이드 북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프랑스여행에서 추천하는 기념품으로는 화장품, 향수, 옷, 치즈, 마카롱, 와인, 마그넷, 열쇠고리 등등이 있네요. 그런데 어느 하나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관광객'을 위한 상품은 터무니없이 비쌉니다. '유아용품'이라는 말이 붙으면 물건 가격이 두 세배 뛰는 것처럼요. 아무것도 안 사갈 수는 없는데 고민입니다.
파리에 온 관광객들은 무난하게 약국 화장품을 사갑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저렴하고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으며 구입하면서 바로 면세 처리도 해주기 때문에 편리하지요. 누구나 바를 수 있는 품질 좋은 입술 보호제와 핸드크림이 묶여있는 세트 제품이 가장 인기예요. 그런데 사실 그 제품들은 한국에서도 모두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손이 멋쩍으니 우리는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저도 약국 화장품 선물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요, 준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쓸 일이 요원했어요. 핸드크림은 이미 쓰고 있는 제품이 집에도 한 개, 휴대용으로도 한 개가 있으며 내 취향이 반영된 질감과 향을 가진 제품만 쓰기에도 왠지 모르게 핸드크림은 집에 너무 많아요.
그렇다면 한국으로 들고 오기 조금 더 까다롭고 부담스럽지만 한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식품’은 기념품으로 어떨까요? 제가 여행 기념품으로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들고 온 식품이 두 가지 있었는데요. 하나는 와인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초콜릿이었어요. 와인은 마셔본 적이 없지만 프랑스에 갔다 왔다고 하면 다들 와인을 원하는 것 같았고(나만의 생각이었나), 술을 좋아하시는 아빠나 학교 교수님께도 와인을 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았어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는 제가 와인을 마셔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잘 고를 리가 만무했죠. 가격대를 맞춰서 대형마트에서 ‘추천’하는 표시가 있는 와인을 고민 없이 자신 있게 사 왔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프랑스에서 사 온 초콜릿을 한국에서 먹어보고 깨달았습니다. ‘어? 이 맛이 아닌데, 분명 거기서는 훨씬 더 맛있었는데?’ 충격이었죠. 프랑스에서는 정말 맛있었던 초콜릿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왜 맛이 없을까? 처음엔 한국에 맛있는 것들이 더 많아서 그런 걸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파리에도 맛있는 음식이 엄청 많았거든요. 그 초콜릿이 맛있었던 이유는 그곳 음식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물의 맛, 공기의 맛 이런 것이 들어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와인도 그랬을 것 같아요. 아빠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마워하시고 맛있었다고 해주셨지만 제가 한국의 좋은 술을 사다 드렸을 때는 그런 반응이 아니었어요. 진짜 맛있다고 하시며 아껴드시고 갑자기 친구들을 초대하시며 나름 술판을 벌이시기까지 하셨으니까요. 제가 직접 먹어보고 맛있다고 생각한 초콜릿도 그럴진대 마셔보지도 않은 와인을 어울리지도 않는 한국음식과 같이 드셨던 아빠는 아마 ‘프랑스 와인이라고 해도 엄청 맛있지는 않구나.’ 생각하셨을 거예요.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사가야 그나마 실패확률이 줄고, 그것도 직접 한국에서 테스트했던 경험까지 있으면 금상첨화겠지요. 또는 반대로 한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프랑스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그곳에서 사 오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런데 저렴하다고 하더라도 비행기 값과 보관비용 그리고 짐의 무게가 늘어나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굳이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는 것을 프랑스까지 가서 사올 필요가 있을까요? 쇼핑할 시간에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대작을 눈에 담는 경험을 하는 게 남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글의 제목을 보고 파리의 기념품을 추천하는 글로 생각했다면 실망하셨을 것 같아요. 저는 지인들에게 선물로 줄 파리를 상징하는 기념품이 아니라 나를 위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념품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올리브영에도 파는 미국 콜게이트 치약을 누가 파리 기념품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저에게는 이번 파리여행의 기념품이 그 치약 입니다. 심지어 여행 후에야 알게 되었지요. 기념품이 나온 여행이라 저는 이번 여행이 특별합니다. 다음 여행에서도 기념품이 나올까요? 랜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