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그게 뭐라고 (상)

프랑스어로 아이스크림 주문하는 엄마

by 김선경

고백한다. 나는 불문과를 나왔다. 불문과를 나온 사람이니 프랑스어를 하겠지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왜인지 그건 불문과를 졸업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전공 불문(不問). 이 단어가 학과 이름과 너무 찰떡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불문과 사람일 것이다.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가 있음 주의- 기가 막히게 잘하는 학생들도 있음) 프랑스어를 아예 모르지는 않겠지만 문자 해독하듯 독해만 되어도 불문과는 졸업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나마 겨우 독해가 가능했던 프랑스어 수준은 대학졸업과 동시에 빠르게 사라진다. 한국에서 프랑스어를 실제로 써먹으려면 통역을 할 정도의 수준이라야 한다.


다행인 것이 구직시장이 아니고서야 자신의 전공이 무엇이었는지 밝힐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20대에 배낭여행을 할 때는 전공을 묻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아무래도 직업이 대학생인지라 여행에서 만나는 또래도 대학생이 많았기에 그랬던 것 같다. 마치 너는 형제가 있냐고 묻는 것처럼 “너는 전공이 뭐야?”라고 물었다.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두 가지로 준비되어 있었다. 외국인이 물어보면, “아임 메이저링 인 코리안 랭귀지 앤 리터레쳐. I‘m majoring in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나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어)” 이렇게 말해야 전공관련한 그다음 질문이 이어지지 않는다. 불문과라고 말하면 "그럼 너는 프랑스어를 잘하겠네. 얘가 프랑스인이야. 같이 이야기해 봐." 이런 식의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한국인이 물어보면 답이 조금 길어진다. “저는 불어불문학과예요. 프랑스 문학작품을 한국어로 공부했죠. 하하하하. 불문과라고 불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꼭 부연설명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가족들과 프랑스를 가는 것은 처음이다. 가족 중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나는 불문과를 졸업하고 파리에서 6개월간 인턴을 하며 지낸 적도 있다. 그때 프랑스어를 연마했더라면 실력이 많이 나아졌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후회를 하기엔 너무 20년 전이다. 그래도 프랑스 여행을 가니, 곤란하지 않을 정도로 프랑스어를 녹여놔야 하지 않을까 스멀스멀 연기가 피어오르듯 프랑스어를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꿈틀댔다. 프랑스어가 내 머릿속에 남아있기는 할까. 일단 시작해 보자. 그리고 기왕 시작한 거 ‘아이들 앞에서 프랑스어를 멋지게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자!’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여행까지 남은 기간은 6개월. 생각했던 음식이 냉동실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프랑스어가 있나 확인한다. 예전에 분명히 얼려놓은 것 같은데...


여행 중 프랑스어로 말해야 할 문장을 생각해 보자. 날이 더울 테니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겠지? 그리고 파리엔 맛있는 젤라토 집이 많으니까. “안녕하세요! 아이스크림 4개 주세요. 두 개는 컵으로 주시고요. 두 개는 콘으로요. 컵은 두 스쿱으로 할 건데요. 바닐라와 초코를 담아주시고, 두 번째 컵에는 코코아와 커피맛을 주시고요. 콘에는 세 스쿱인데 딸기맛과 초코 그리고 피스타치오요. 또 다른 콘에는...” 뭐지? 아이스크림집에 가서 이렇게까지 길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아이스크림 4개 주세요.’ 까지는 어떻게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컵이 프랑스어로 뭐지? 콘은? 숟가락도 달라고 말해야 하는데, 거기다 네 명의 아이스크림을 주문해야 하니 문장이 길어진다. 아무래도 프랑스어 공부를 조금 해야겠다.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프랑스어 문법부터 둘러보자.


나는 프랑스어 문법 온라인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내 평생 이렇게 최선을 다해 프랑스어를 공부한 것은 처음이었다. 하루에 두 시간씩 교재를 보고 복습을 하고 영상을 보고 배운 문법으로 실제 여행에서 쓸 만한 문장을 작문했다.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공부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파리여행 계획이 있는 부모라면 이 기회를 적극 활용하기를 권한다. ‘엄마가 당당하게 외국어를 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좋은 자극이 될 거야.’라는 이 동기부여가 은근히 강하다. 그러고 보니 첫째 뿅뿅이가 ‘엄마는 물에도 안 뜨지?’라는 한마디에 40년 만에 수영을 배우게 된 나다. 이쯤 되면 아이가 부모를 키우는 게 맞다.


나이가 들면서 엉덩이 힘도 생겼는지 조금 끈기 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프랑스어 문법을 이렇게 전체적으로 공부한 것은 고등학교 이후 처음인 것 같았다. 한국어 문법을 막상 공부하면 어렵고 신기한 것처럼 그런 느낌이었다. ‘아, 프랑스어가 이런 구조였구나, 내가 여태 틀리게 말하고 있었구나, 이런 문법은 알아도 못 써먹을 것 같다.’ 등등 조바심이 났지만 수업료가 아까워서 지루한 문법 수업을 끝까지 들었다. 내가 구매한 시원스쿨 온라인 수업은 영상을 평생 소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만 들을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 장치가 나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면 끝까지 듣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지루해서 죽을 뻔했다. 얼른 실제 여행에서 쓸 말을 연습하고 싶었다.


하루는 친구에게 이번 여름 프랑스로 떠난다는 계획을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화상프랑스어 수업을 추천했다. 친구도 지금 그 방법으로 프랑스어 공부를 하고 있단다. (얘는 당장 프랑스로 떠나지도 않는데 왜 공부하고 있었던 거지?) 나는 친구의 프랑스인 선생님을 소개받아 일주일에 두 번, 하루에 10분씩 프랑스어 수업을 받았다. 학원을 찾아갈 필요도 없고, 10분 동안만 이야기하면 되니까 지루하거나 힘들지도 않을 것 같았다. 또 궁금한 내용을 콕 집어서 물어볼 수 있고, 나만 듣는 수업이니 창피할 것도 없고, 질문하는데 눈치를 볼 일도 없었다. 이래서 비싸도 1:1 수업을 하는 건가 보다. 10분당 13,000원 꼴이었다.


화상프랑스어 수업은 ZOOM 프로그램을 통해 프랑스에 살고 있는 선생님과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시차 때문에 수업은 밤 10시였다. 아이를 재우며 함께 잠들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떨쳐버리고, 방에서 나와 할 말을 미리 적어둔 노트를 컴퓨터 앞에 펼쳤다. 그런데 10분이란 시간이 그렇게 짧았나 싶을 정도로 수업시간은 선생님과 인사만 하고 끝나는 기분이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동사를 기억해 내려 허둥대다 보면,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찾다 보면, 몇 마디 못하고 수업은 끝나 버렸다. 미리 적어놓은 문장은 수업 내용과 들어맞는 경우가 한 번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었다. 왜 이렇게 이야기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까. 아무래도 내 머릿속 프랑스어를 단기간에 소환하는 것은 무리일까.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절망스러웠지만 수강료를 지불했기 때문에 꾸역꾸역 수업에 임했다.


선생님께서는 교재를 정하지 말고 여행에 필요한 어휘와 상황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자고 하셨다. 오! 좋았어. 나는 “아이스크림가게에서 주문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라고 외쳤다. 선생님은 프랑스 아이스크림 가게 링크를 보내주셨고, 선생님이 아이스크림가게의 직원이고 내가 손님으로 와서 아이스크림을 사는 상황으로 대화를 나누어보자고 했다. 나는 (돈을 날릴 수는 없었기에) 선생님과 수업하기 전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생각해서 챗 GPT에게 물어보고 외우려고 노력했다. 바닐라맛, 딸기맛, 두 스쿱을 달라, 콘으로 달라, 컵으로 달라, 수저는 2개를 달라, 혹시 냅킨을 줄 수 있느냐, 초코시럽이나 스프링클을 뿌려줄 수 있나, 생크림은 안 올리겠다. 아휴, 준비하다 보니 아이스크림 집에 가지 말까, 하나만 시켜서 나눠먹을까, 슈퍼에 가서 사 먹을까, 가슴에 돌을 얹어 놓은 것처럼 답답하고 눈물이 났다. 아이스크림 주문 이게 뭐라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이스크림 집 보다 프랑스어를 많이 쓸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내가 프랑스어를 가장 길게 할 수 있는 곳은 여기야. 여기만 잡으면 된다.’ 힘을 내자. 나는 선생님과 열심히 아이스크림 가게에서의 주문을 연습했다. 10분으로 아이스크림집을 마스터하기는 벅찼기 때문에 무려 3회의 수업을 들여서 아이스크림집 대화를 완성했다. 제일 중요한 단어는 세 개였다. 컵이라는 뜻의 ‘꾸쁘 Coupe', 콘은 ‘꼬흐네 Cornet’, 어떤 맛으로 할 거냐 물어볼 때의 맛은 ‘빠흐퓜Parfum’이었다. 빠흐퓜은 향수 아니었나? 예상외의 단어에 긴장하고 집중했다. 선생님과의 수업으로 정리된 버전을 여러분께 과감하게 공개한다.


첫째, 시키려는 아이스크림 수와 형태를 말한다.

1) Je voudrais 4 glaces 2 boules, 2 (en) cornets et 2 (en) coupes.

쥬 부드레 꺄트르 글라스 두 불, 두 꼬르네 에 두 꾸쁘

아이스크림 2스쿱짜리 4개 주세요. 2개는 콘으로 주시고요. 2개는 컵으로 주세요.


둘째, 콘과 컵에 들어갈 맛을 한 덩어리처럼 연결해서 말한다.

2) Pour les deux cornets, une vanille-fraise, une vanille-chocolat. Pour les deux coupes, une fraise-melon, une fraise-chocolat. (맛과 맛을 연결하는 -은 et로 발음)

뿌흐 레 두 꼬르네, 윈 바니 에 프레즈, 윈 바니 에 쇼꼴라. 뿌흐 레 두 꾸쁘, 윈 프래즈 에 멜롱, 윈 프레즈 에 쇼콜라

두 개의 콘에는 바닐라-딸기, 바닐라-초코로 주시고요. 두 개의 컵에는 딸기-멜론, 딸기-초코요.


3) Vous pourriez ajouter 4 cuillere, s‘il vous plait?

부 뿌히에 아주테 꺄트르 뀌이에, 씰 부 쁠래?

숟가락 4개도 주실 수 있으세요? 부탁드립니다.


드디어 파리. 시테섬의 아이스크림 성지를 가는 그날이 왔다. 시테섬에는 유명한 아이스크림 집이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아모리노(Amorino)이고 또 하나는 베르티옹(Berthillon)이다. 베르티옹이 더 맛있다는 누리꾼들의 평이 있지만 아모리노에서는 아이스크림 모양을 장미꽃 모양으로 만들어준다. 기왕 먹는 거 꽃모양 아이스크림을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어서 아모리노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가는 날 아침부터 비가 쏟아지더니, 점심이 되어서야 겨우 그쳤고, 우리는 오전 내내 덜덜 떨다가 이미 시테섬을 건너 마레지구로 넘어갔다. 아이스크림집은 자연스럽게 포기했다. 오후가 되자 날이 더워져서 잠바도 벗고 마레지구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가게들을 구경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퐁피두 센터에 도착했다. 모든 파이프관이 밖으로 나와 있는 건물. 언제 봐도 신기하다. 그러나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에스컬레이터 운영이 중지되었다는 이야기에 들어가 볼 필요가 없겠다 판단한 우리는 퐁피두 센터 앞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서려 했다. 그때 정면에 아모리노 아이스크림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이 온 것인가? 내가 6개월 동안 갈고 닦았던 프랑스어를 쓸 순간이. 프랑스어 머리에 시동을 걸고 (부르릉) 목을 푼다. (아아) 손에 약간의 땀이 맺힌다. 날이 더우니 아이스크림 가게가 엄청 붐빈다. 안이 좁고 복잡한 것 같아서 남편과 둘째는 밖에 있으라고 했다. 남편이 두 개만 사 오란다. '다행이군. 두 개는 주문하기 쉽지. 할 말이 반으로 줄어들잖아. 하핫' 첫째와 나만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오른쪽에 아이스크림 쇼케이스 냉장고가 있었다. 금색으로 장식된 쇼케이스가 고급스러워 보인다. 작은 규모의 가게였다. 아이스크림 쇼케이스 앞에는 줄을 설 수 있도록 구불구불 벨트 차단봉이 설치되어 있었다. 저기에 서서 주문해야 하나 생각하며 두리번거리는데,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대신 왼쪽 구석에 사람들이 스무 명 정도 모여 있었다. 그곳으로 다가갔더니 거기에 글쎄 ‘키오스크’가 있었다. 키오스크라니, 키오스크라니... 아악, 내 프랑스어. 6개월 어떡할 거야. 왜? 왜죠? 왜 키오스크가 있는 거죠? 여기 프랑스 아니에요? 아직도 큰 열쇠로 문 열고 들어가는 나라가 이런 선진문물 빨리 도입하는 거 이상하지 않아요? 공허한 외침이었다.


다음 주에 (하) 편이 이어집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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