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잡기 게임 앞에서 멈추다

파리의 놀이공원 Jardin d'acclimatation에서 오리 잡기

by 김선경

“엄마, 우리 이거 할래!”

“뭐, 저걸?”


아이들은 빛바랜 플라스틱 오리가 둥둥 떠 있는 나무수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앗, 파리에도 오리 잡기 게임이 있다니. 한국과 다른 점은 줄이 없다는 것. 한국에서는 오리 잡기 게임 앞에 줄이 항상 길게 늘어서 있는데 여긴 그렇지 않다. 오늘은 파리의 놀이동산(Jardin d‘acclimatation)에서 하루 종일 놀기로 한 날이다. 비가 엄청 내리다 개여서 그런가 평일이어서 그런가 놀이동산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우리는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횟수권을 구입해 두었다. 줄이 길면 시간 상 많은 기구를 못 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산이었다. 어쨌든 아이 한 명당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5개였다. 그런데 오리 잡기 게임도 놀이기구처럼 1회 차감이 된단다. 놀이기구를 타는 것이 아니라 이 게임을 하는데 1회를 쓴다는 것이 아까웠다. 놀이동산에 들어오자마자 이걸 하겠다니, 계속하자고 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었다. 한국에서 오리 잡기 게임을 하면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상품이 나올 때까지 “엄마,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하자, 응?”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애원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횟수권을 다 써버리면 안 되는데, 자유이용권을 살걸 그랬나.


놀이동산에는 대부분 오리 잡기 게임이 있다. 아주 넓은 수조에 물을 받아두고 플라스틱 오리를 몇 백개 띄워놓는다. 아이들이 뜰채로 오리를 건져 올린다. 세 마리를 신중히 잡아서 판 위에 올려놓으면 게임코너의 직원은 한 마리씩 뒤집어 바닥에 쓰여 있는 숫자를 보여준다. 세 숫자의 합이 8이 넘으면 상품으로 오리인형을 받아갈 수 있다. 그 오리가 얼마나 크고 멋지고 보송보송한지. 어른인 내가 생각해도 아이들이 탐낼만하다.

오리 바닥에는 ‘1’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는 경우가 많고, ‘2’도 있지만 ‘3’은 거의 없기 때문에 세 마리를 건진다고 해도 그 합이 8을 넘기는 어렵다. 그런데 또 8을 넘는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어서 오리 잡기를 하려고 줄을 서 있으면 실제로 커다란 오리인형을 받아가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주로 8점 아래의 점수를 받아 오리모양 머리핀이나 작은 플라스틱 오리를 받아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 가족은 한 번도 오리인형을 받아본 적이 없다. 운이 좋지 않았다.


파리의 오리 잡기 코너 직원은 우리 아이들이 다가가자, 오리를 낚아 올릴 막대기와 커다란 나무 박스를 주었다. 나무 박스 자체를 오랜만에 보는 것이기도 했지만 크기가 커서 놀랐다. 여기는 뜰채로 오리를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오리 머리 위에 동그란 링이 있고 긴 막대기 끝에 달린 갈고리에 링을 걸어 낚는 방식이다. 네 살 둘째에게는 조금 어려워 보였다. ‘이 오리 잡기는 어떻게 하는 거지? 기회가 몇 번인 거야?’ 아무 설명도 없이 막대기와 나무 상자만 주고 간 직원의 뒷모습을 보고 남편이 나에게 “네가 가서 한번 물어봐 봐. 상품이 뭔지, 몇 번 낚을 수 있는지, 어떤 방법으로 하는 건지.” 어려운 질문이었다. 프랑스어를 돌리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 어떻게 하면 간단하게 물어볼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이미 오리 잡기를 시작했다. 남편도 둘째를 도왔다. 열심히 낚아서 나무 상자 안으로 오리를 쏙쏙 넣고 있었다. 나도 직원에게 질문하기 전에 이미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프랑스아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 아이들은 자신들의 상자에 오리가 10마리 정도 채워지면 “쎄 피니! C‘est fini!”(끝났어요! 다 했어요!)라고 외쳤다. 그러면 직원이 와서 정확히 10마리를 낚았는지 아이들과 함께 세어본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에게 어떤 명함 같은 종이를 건네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종이를 받아 들고 신이 나서 뒤에 있는 기념품샵으로 겅중겅중 뛰어들어간다. 뭐지? 모르겠네...


그러고 있는 와중 우리 아이들은 상자가 넘칠 정도로 오리를 잡아놓고 있었다. 이미 열 마리 이상을 잡으며 놀고 있었던 것이다. ‘앗 어쩌지?’ 하는 순간, 직원이 우리 아이들을 보았다.


“우아~ 너희들 오리를 정말 많이 잡았구나! 진짜 잘했다. 이미 10마리도 넘었네.”

저렇게 프랑스어로 말하는 것 같았다. 사실 확실하지 않다. 어른이 되니 눈치코치로 외국어도 대충 해석이 된다.

“엉, 두, 투아, 꺄트르, 쌩... Un, deux, trois, quatre, cinq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천천히 오리의 개수를 센 다음 아이들에게 종이쪽지를 건네준다.

“옹 페 꾸아 아벡 쓰 빠삐에? On fais quoi avec ce papier?(이 종이로 뭘 하면 되죠?)”라고 나는 물어보았다. 아주 간단하고도 적절한 질문이었다. 직원은 이 종이를 가지고 기념품샵 카운터에 가면 선물을 골라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물을 골라갈 수 있다고? 내가 말을 잘 알아들은 건가?


아이들과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기념품샵에 종이를 들고 들어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자주 해본 것처럼 연기하면서 종이 두 장을 내밀었다. 내가 한 말은 "봉주르! Bonjour!(안녕하세요)" 한 마디였다. 기념품가게 직원은 바구니를 가지고 왔다. 거기엔 스티커, 판박이 스티커, 탱탱볼, 미니공룡피규어 등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여기에서 마음에 드는 것으로 상품을 골라가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그 작은 장난감을 고르는데도 엄청 신중했다. 첫째는 끈적이 손바닥 둘째는 스마일 스티커를 골랐는데 아주 만족해했다. 이 과정을 겪고 나니 프랑스의 오리 잡기 게임의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었다.


파리의 오리 잡기 게임은 오리를 잡아 올리는 과정 자체가 재미의 요소다. 오리를 열 마리 이상 잡아 나무 상자에 넣으면 된다. (첫째는 20마리도 넘게 잡았다고 했다) 열 마리를 잡았으면 직원에게 오리의 마리 수를확인받고, 보상으로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기념품샵에서 골라간다.

왜 상품이 이 정도밖에 안 되냐고 아이들이 불만을 표시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애초에 여기 오리 잡기와 한국오리 잡기는 비교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점수에 따라 다른 선물을 주는 것이었다면 아쉬워했을 수도 있겠지만 게임의 시스템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그럴 이유가 없었다. 파리의 오리 잡기는 사실 한국의 오리 잡기 게임과 겉모습은 얼핏 비슷했으나 전혀 다른 놀이였다. 나의 우려와는 달리 이 게임으로 횟수권을 모두 소진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 오리 잡기 게임을 할 때마다 왠지 기분이 안 좋았더랬다. 한국의 오리 잡기 게임은 도박의 성격이 짙다. 오리로 어린아이들의 관심을 유도해서 일단 게임 코너 앞으로 오게 한 뒤, 상품으로 받아갈 수 있는 멋진 인형을 보여준다. 이 두 가지로 아이들은 이미 흥분한다. "오리를 잡으면 저 오리인형을 받아갈 수 있대! 엄마, 아빠 나 이거하고 싶어!" 여기저기에서 생일축하 폭죽처럼 소리가 터져 나온다. 게임을 시작하면 유아와 어린이가 갈라진다. 유아는 오리를 세 번만 잡을 수 있다는 것에 안타까워한다. '저렇게 오리가 많은데 왜 세 마리밖에 못 잡게 하지?' 하는 원망의 눈빛을 쏜다. 그러니 유아를 데리고 있다면 이 게임에서 빠져나오기 쉽다. 세 번밖에 낚지 못하게 하니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를 데리고 있다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어린이는 오리인형을 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상품으로 인형을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에 상품 받기에 실패하면 몇 번을 더 하다고 조르다가, 이미 몇 번을 더 한 엄마 아빠에게 "너, 마지막이라고 했지!"라는 소리를 들으며 울며 자리를 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오리 잡기 게임을 떠올리면 ‘사행심(射倖心)’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사전을 찾아보니 사행심이란 ‘요행을 바라는 마음, 운명이나 우연한 행운에 의존해서 큰 이익을 얻으려는 마음’이라고 적혀있다. 복권이나 도박에 빠질 때 나타나는 심리상태다. 사행심은 ‘운이 좋으면 될 거야.’라는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강화해서 노력이 아닌 우연을 믿게 한다. 이렇게 운으로 얻게 되는 성공을 바라게 되면 꾸준한 노력이나 학습, 성실함 같은 건강한 가치관을 갖는 것이 힘들어진다. 결국 장기적인 성장으로 얻는 만족감을 누리기가 어렵다. 이는 도박중독에도 적용되는 심리상태란다. 오리잡기 게임이 '도박중독'과 연결되어 있었다니. 이래서 내가 기분이 안 좋았던 것인가?


관련 책을 더 찾아보니, 사행심은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하여 도파민을 나오게 한단다. 보상회로는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보상으로 좋은 감정을 얻게 되어 ‘또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신경 시스템이다. 학습을 할 때에도 공부를 잘하면 부모님께 칭찬을 받는다거나, 꾸준히 돈을 모아 목돈을 만들었을 때도 보상회로가 작동하여 앞으로도 그런 행동을 계속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예 말고, 도박을 하는 사람이 자신이 땄을 때의 기억으로 희망에 부풀어(쾌감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어)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계속 베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눈치챈 독자도 있겠지만 보상회로가 작동할 때 나오는 도파민에는 좋은 도파민과 나쁜 도파민이 있다. 좋은 도파민은 만족감이 늦게 오는 고진감래형 도파민으로 오랜 시간 노력해서 얻은 만족스러운 결과가 이에 해당한다. 나쁜 도파민은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도 바로 만족을 공급을 받는 도파민으로 대표적으로 마약이 그렇다. 마약으로 사람들이 쉽게 도파민을 얻으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이 노력하지 않고 도파민을 얻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면 마약을 얻는 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게 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다.


한국의 오리게임으로 돌아가보자. 게임을 하던 어떤 가족의 아빠가 오리인형을 타 가게 되면 뒤에 줄을 서 있던 아이들은 오리 인형을 받아간 가족을 부러워한다.

"우아~ 쟤들은 좋겠다. 오리 인형을 정말 받아갔어!"

“저 아빠는 8점이 넘었나 봐. 대단하다. 아빠, 아빠도 좀 잘해봐~!”

뭐를 잘해야 하는 것일까? 아이들은 그 가족이 단순히 운이 좋았다기보다 저 가족의 아빠는 오리를 잘 낚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능력과 운이 헷갈린다. 앞서 공부한 것을 여기에 적용시켜 보면 '능력'은 노력해서 얻은 성과인 '좋은 도파민'의 짝이고, '운'은 아무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나쁜 도파민'과 짝이다. 그렇다면 능력과 운이 헷갈릴 수 있겠다. 능력과 운은 우리 뇌 안에서 보상회로라는 같은 길을 이용하며 같은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뿜어져 나오는 결과이니 말이다.


그런데 또 나쁜 도파민이 절대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란다. (어쩌라는 것인가) 적당히 조절한다면 이로울 수도 있다고. 가끔 이런 놀이를 재미로 하는 것은 괜찮고, 간단히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인정한다) 그리고 요즘엔 스마트폰이나 게임 온라인 도박 같은 즉각 보상을 주는 것들이 많이 생겨나 이런 나쁜 도파민을 완전히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도파민의 성격을 구분해서 잘 다루고 관리하면서 우리의 뇌건강을 돌봐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충동적이 되며 감정조절이 어려워진다. 같은 도파민이라도 성격을 나누어 신경 써서 관리해주어야 한다. 예전엔 이렇게 노력 없이 보상을 얻는 일들이 흔하지 않았기에 일부러 관리할 필요가 없었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나쁜 도파민과 함께 지혜롭게 살 궁리를 해야만 한다. 40대가 되니 소화에 신경을 쓰며 식사를 해야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파리에 가서 오리 잡기를 해보지 않았으면 왜 아이들과 놀이동산에서 오리 잡기 게임을 하기 싫었는지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의 삶은 바쁘게 돌아가고, 아이들과 놀이공원에 가는 것은 일 년에 한두 번이며, 아이들이라면 오리 잡기 게임을 모두 좋아하고, 놀이공원에서 아이들도 함께 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으므로 그냥 별생각 없이 즐겼다. 그런데 항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제야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이유를 알았다. 어린이가 즐길 수 있는 놀이동산에 있는 오리 잡기 게임에는 사행심을 조장하는 요소가 들어있고, 그것은 도파민을 나오게 한다. 도파민은 좋은 도파민이 있는가 하면 안 좋은 도파민도 있는데 이 오리 잡기 게임은 안 좋은 도파민이 나오게 하는 게임이다. 오리 잡기 게임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금 시대에는 안 좋은 도파민을 나오게 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다가 첫째에게 물어본다.

“뿅뿅아, 파리 놀이동산에서 오리 잡기가 재미있었어, 한국에서 한 오리 잡기가 재미있었어?”

첫째는 뭐 그런 것을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당연히 우리나라 오리 잡기가 재미있지.”라고 말한다.

“왜?”

“긴장감이 있잖아.”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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