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프랑스 친구 (하)

아이들을 맡기고 현지인과 술 한잔

by 김선경

드디어 팔롱을 만나기로 한 날. 그날의 일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오르세미술관, 비싼 식당에서 점심식사, 룩셈부르크 공원. 여행 중 이렇게 하루 일정이 빡빡한 날은 없었다. 사실 조금 무리가 될 것 같긴 했지만, 세 군데 정도야. 이 일정이 욕심이었다는 것은 하루가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괜찮은 비스트로를 예약했기에 아이들은 평소에 입지 않았던 옷과 신발을 신어야 했다. 아침부터 숙소에서 아이들은 옷이 불편하다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남편은 그 정도 가지고 호들갑이라고 화를 냈다. 목표한 시간보다 늦게 나와 입이 퉁퉁 부은 채, 넷은 아무 말 없이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는데, 버스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지 않았고, 30분을 넘게 기다리다 결국 택시를 잡아타고 오르세미술관에 갔다. 미술관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질질 끌고 돌다가 오전에 기운을 다 빼고, 예약해 둔 식당에서 가격에 비해 맛없는 음식을 먹었다.(이걸 먹으려고 아침부터 이렇게 옷을 빼입었나) 식당에서 나와 회전목마, 놀이터, 선물가게를 거쳐 마침내 룩셈부르크 공원에 도착해서는 돈을 내고 입장하는 본격적인 놀이터로 들어갔다.(또!) 정장바지에 굽 높은 신발에 가죽가방을 메고 아이들과 노는 엄마는 나뿐이었다. 거기서 회전목마 타고(또!!), 심지어 살아있는 조랑말 타기 체험까지 한 뒤,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중앙분수대에 도착. 큰 딸이 자갈밭에 넘어져 무릎이 피투성이가 되는 것으로 하루 일정이 강제 종료되었다. 우는 아이와 겨우 만원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하필 이런 날 팔롱을 만나야 한다니. 다 귀찮았다.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나가야지. 다크서클을 가리려면 화장을 수정해야 했지만 심하게 기름 범벅이 된 얼굴로 숙소에서 튕겨져 나왔다.


그런데 그때부터 뭔가 공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혼자? 파리를? 이렇게 홀가분하게? 이 기분은 뭐지? 갑자기 기운이 솟아났다. 숙소의 1층으로 내려와 건물 문을 닫고, 내정을 지나 거리와 접해있는 무거운 대문을 힘껏 밀었다. 팔롱은 그 문 옆에 서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꺄아~”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봤다. 나는 팔롱의 등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팔롱이 여기에 있다니 꿈같았다. 그는 프랑스어로 말하는 게 편한지 영어로 말하는 게 편한지 물어왔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영어!’라고 말하려는데, 팔롱이 “아니면 중국어가 편해?”라고 중국어로 물었다. 특유의 프랑스어 억양이 섞인 중국어를 들으니 진짜 17년 전의 기억이 생생해졌다. 그래, 맞아, 이 발음이었지. 그때 그 목소리다. 시간여행을 위한 퍼즐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우리는 어디를 갈지 정하지 않고 그저 발을 따라 걸으며 수다를 떨었다. 결국 걷던 길을 돌아서 다시 내려왔다. 어색한 근황토크가 이어지면서 일단 가볍게 뭐를 먹자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팔롱이 이따가 자기 여자친구랑 같이 저녁식사를 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니 너랑도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생전처음 만나는 네 여자친구랑 밥을 먹자고?’ 왜냐고 물었더니 여자친구가 한국에서 온 여자(사람) 친구랑 만나면 의심이나 오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다고 했다. 이런 이유도 웃겼다. 그래, 내가 애가 둘 있다고 말은 했지? 영어는 할 줄 알지? 모두 그렇다고 해서, 오케이 했다. 우리는 근처에 보이는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 오늘은 조금 자제해야 한다며 무알콜 맥주를 마시겠다고 했다. 나도 아직 저녁을 못 먹어서 빈 속에 술을 마시면 얼굴이 금방 빨개진다고 같은 것을 시켰다. 소시지 모둠을 함께 주문했다.


만나기 몇 시간 전 팔롱은 자기 얼굴이 늙어 보이니 놀라지 말라는 내용으로 문자를 했다. 나는 남편에게 얘는 이런 걸 신경 쓴다며 문자를 보여주었다.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이 귀여웠다. 그러고 보니 얼굴은 그대로였는데 흰머리가 많이 늘어나 있었다. 그는 아시안 피플은 젊은 상태로 오래 사는 것 같아 부럽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할아버지처럼 되었는데 너는 그대로다.” 그리고 과거에 나를 ‘나이나이奶奶(할머니)’라고 놀린 것을 사과했다. 이제 와서? 사실 나는 그때 그 별명이 전혀 상처가 되지 않았기에 괜찮았다. 스무 살에서 얼마나 빨리 스물여섯 살이 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주문한 1664 무알콜 맥주 두 병이 먼저 나왔다. 맥주를 긴 유리잔에 따라주면서 그는 나에게 뜬금없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얼른 휴대폰을 들어 동영상을 켜고 팔롱이 맥주를 따르는 모습을 찍으며 말했다.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너도 알잖아, 내가 외국어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거. 그런데 어느 하나 특별하게 잘하는 외국어가 없어. 다 고만고만해. 그래도 외국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재미를 알고 있으니까 외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 또 한국어는 모국어니까 내가 엄청 잘하거든. 그런데 내가 말을 잘하는 거랑 그 언어를 가르치는 기술이랑은 다르더라. 그래서 그걸 공부할 거야.”


장래희망에 대해서라면 항상 자신이 있기 때문에 준비한 것처럼 말할 수 있었다. 내심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해주기를 기다리는데 평소에는 이런 질문을 받기 어렵다. 팔롱이 이런 질문을 다 해주다니 반가웠다. 장래희망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하면서 나는 중국어학연수 때 담임선생님을 떠올렸다.


그 당시 겨우 중국어 기초반을 벗어난 우리는 '단어의 나열'에서 '문장을 더듬더듬 구사하는 수준'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 학생들을 상대로 담임선생님은 무려 중국어로 중국어를 가르치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는 중국어로 설명하는 수업내용을 모두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친절했을 뿐만 아니라 진지했고, 끝까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 누구의 말도 웃어넘기거나 무시하지 않았고, 그 학생이 이해가 될 때까지 예시를 들어서 수업을 진행했다. 아이들의 질문이 수업을 이끌고 풀어내는 좋은 도구가 되었다. 담임선생님의 특별함은 다른 수업을 들으면서 더 잘 알게 되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진행하는 문법수업을 제외한 듣기, 회화, 독해 과목 선생님들의 설명은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법시간에 중국어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다른 시간에 자신감을 잃었다. 팔롱은 담임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한껏 자신감을 얻은 날, 시내에 나갔다가 스트리트 중국어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단다. 당황했던 당시의 자기 표정을 연기하는 그를 보며 배가 아프게 웃었다. 내가 ‘그 선생님이 나의 롤모델이야.’라고 했을 때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분은 정말 좋은 선생님이라는데 동의했다. 이게 가능하다니, 중국어학연수 때 담임선생님을 함께 기억할 수 있다니, 그런 사람이 있어서 나에겐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팔롱이 용정차밭에 같이 갔던 일도 기억할까 궁금했다. 혹시 기억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물어봤다가 기억을 못 하면 그 좋았던 추억의 증인이 사라지는 것이니 망설여졌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팔롱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림처럼 예뻤던 징검다리가 있는 연못에 들어갔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용정차밭의 기억이 좋아서 그 후에 중국에 놀러 오신 자기 어머니도 모시고 갔었단다. 우리가 지냈던 기숙사에 어머니와 함께 묵었다고도 했다. 우리가 살았던 외국인학생 기숙사는 숙박비를 내면 호텔처럼 쓸 수 있었다.


“다시 항주에 놀러 가면 나도 그 기숙사에 묵고 싶어.”내가 말했다.

“그런데 이제 거기는 학생이 아닌 사람이 숙소로 이용할 수 없게 되었어.”라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팔롱이 말했다. 아쉬웠다. 그런데 팔롱은 활기찬 눈빛으로 바꿔 끼고 나한테 귀띔했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서 엄마와 함께 묵었다니까.”

“그게 가능한 일이야?”

“응, 말을 잘하면 돼.”

“아, 거기가 중국이어서 그런 게 통하나 봐. 유럽에서는 그런 거 안 되잖아. 한국에서도 그런 건 안돼.”

“아니야, 유럽도 가능해. 중요한 건 말할 때의 표정이야.”

“어떻게 하는 건데?”

“절대 화를 내지 말고, 짜증도 내지 말고, 계속 웃으면서 부탁하면 돼.”

머리카락의 대부분은 회색이었지만 아기처럼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팔롱을 보고 있자니 불가능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정도로 웃으면 들어줘야지. 아무렴, 나 같아도 그럴 거다. ‘팔롱아, 웃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너니까 되는 거야.’


팔롱은 한국에도 두 번 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한 번은 동남아를 가는데 잠깐 경유를 해야 해서 서울에 짧게 들른 것이었고, 다음으로는 한국의 ‘대전’에 가봤다고 했다. 나는 잘못 들었나 했다. “대전? 대전에는 왜?” “어떤 여자 때문이었지.” 정말 그 다운 답변에 의자가 휘청거리게 웃었다. 파리 야외 테라스 의자는 왜 그리 가벼운 건지. 나는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갈 뻔했다.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한국의 대전에 오다니. 사랑에 죽고 사는 전형적인 프랑스인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누구를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팔롱도 옛이야기를 하면서 추억에 젖는 듯했다. 지금은 경매회사의 CEO가 되고 싶어 하는 전도유망한 프랑스인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단다. 나는 어떻게 네가 그런 대단한 사람과 사귀는 거냐고 농담을 던졌다. 그랬더니 자신의 차분한 성격과 평화로운 마음, 그리고 유머에 아마 그녀가 반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수줍어했다. 차마 중국어학연수 때의 M과의 일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못했다. 창피해할 것 같기도 했고, 혹시나 그 이야기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봐 망설여졌다. 실은 나의 짧은 영어로 그 상황을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파리의 밤하늘은 네이비색의 빛나는 전등을 켜 놓은 듯했다. 시계를 보니 3시간이 지나갔다. 7시에 만났으니 벌써 10시. 이미 저녁 먹을 시간도 지나서 여자친구를 만날 수는 없었다. 놀라웠던 것은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았다는 것과 긴 시간 동안 우리가 둘 다 번역기의 도움 한번 없이 쉬지 않고 떠들었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길게 외국인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 아마 우리 둘의 영어 실력이 비슷했거나 그 친구가 나의 영어 수준을 맞추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오해와 잘못된 해석으로 된 대화였을까. 그 모든 가능성을 뚫고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은 기적이었다. 파리에 온 이후로 이렇게 배 아프게 웃은 적은 처음인 것 같았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없었다.)


헤어질 때쯤 팔롱은 나랑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놓고 계속 신경이 쓰였다고 했다. 긴장이 되었다고 했던 것 같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어?”라고 물었는데 “진짜 나도 잘 모르겠어.”라고 말한다. 과거를 마주 보는 것이 두려웠을까? 아니면 자신을 어떻게 볼까 하는 마음에 부담을 가졌을까? 할 얘기가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을까? 그런데 나를 막상 만나니 너무 좋았다고 했다. 나는 단지 내가 너무 피곤할까 봐 만나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이 친구는 그런 부담을 가지고 나를 만나러 나와 준 것이구나 생각하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의 한없는 밝음 뒤에 조심스러움, 주저함, 섬세함 같은 것이 보였다. 그것이 그에게는 타인을 향한 배려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예전엔 팔롱의 이런 모습에 대해 잘 모르고 친했었다. 17년 만에 파리에서 만나 비로소 이유를 알았다. 내가 이 친구를 좋아했었던 이유를.


17년 전 시간을 기억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 이 친구가 이렇게 건강한 것,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해준 것, 파리에서 우연히 이렇게 만날 수 있었던 것,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 모든 것이 꿈같았다. 누군가에게 나도 이런 사람일 수 있을까? 내 인생에 이런 선물이 숨겨져 있었다니, 삶은 살아 볼 만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벅찼다. 파리로 오기 전에 내가 팔롱을 만날 줄 미리 알았다면 이렇게 놀랍도록 기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인생이 하나의 줄이라면 파리에서 나는 팔롱을 만나 뜻밖의 아주 예쁜 매듭을 짓고 넘어가는 기분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친구를 만났다.

“여행 중에 제일 좋았던 곳이 어디였어?” 친구가 물었다.

“파리.”

“거기에서 뭐가 좋았는데?”

“파리에서 나를 만났어. 글쎄, 거기에 17년 전의 내가 있더라고.”

“그게 뭔 소리야?” 하면서 친구는 의자를 당겨 앉는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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