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그게 뭐라고 (하)

왜 프랑스인들은 영어를 쓰면 싫어할까?

by 김선경

잔뜩 긴장한 채 키오스크 앞에 섰다. 사실 나는 키오스크 울렁증이 있다. 뒤에 누가 서 있기라도 하면 진짜 바보짓을 하기로 유명하다. 허둥지둥 거리며 메뉴를 못 찾다가 혼자 얼굴이 빨개지고, 땀을 흘린다. 신용카드 넣는 곳도 못 찾아서 딸이 찾아준다. 생각한 메뉴를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메뉴를 주문한 다음에 ‘이것도 맛있어’. 이러면서 먹는다. 그리고 집에 와서 잠자기 전에 이불킥을 한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키오스크라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림이다. 내 뒤에 누가 줄을 서기 전에 얼른 주문해야 할 텐데. 키오스크 첫 화면 제일 아래에 보니 언어 Language도 프랑스어 Francais와 영어 English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굳이 프랑스어 Francais를 선택했다. 6개월 동안 아이스크림집 프랑스어를 열심히 공부했던 나에 대한 마지막 예의였다. 다음으로는 컵과 콘 중에 하나를 고르란다. 둘째 딸은 컵으로 먹는 게 편하겠지만 컵으로 먹으면 장미모양을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둘 다 콘으로 한다. 옆에 있는 큰 딸에게 묻는다.


“사이즈는 뭘로 할래? 먹고 싶은 맛이 뭐야?” 뒤에 다른 사람이 줄을 섰다. 마음이 괜히 쪼그라든다.

“나는 딸기랑 라즈베리랑 초코.”

“위에 마카롱 올릴 거야?”

“응”


여기까지 오케이. 번호표가 나왔다. 그런데 뿅뿅이가 초코를 망고로 바꾸고 싶단다. “꼭 바꿔야겠니?” “응.” 땀이 난다. 나는 침착하게 주문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여기는 프랑스니까 천천히 기다려주겠지? 우리나라보다 빨리빨리 서두르는 민족은 없으니까' 마음을 가다듬고 화면의 그림을 똑바로 눌러 아이스크림을 새로 다시 주문했다. 악, 번호표가 두 개 생겼다. 한 개의 번호표는 취소를 해야 하니 미리 말해야 한다. 내가 주문한 대로 미리 만들어 버리면 어쩌지, 아이스크림 네 개를 사야 하는 건가. 그냥 다시 주문하지 말걸 그랬나. 어느 타이밍에 들어가서 말해야 하나 그것이 문제로다. “언니, 제가 그거 잘못 주문 넣은 거예요. 취소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게 주문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앞의 사람들이 아이스크림 받아가는 순서를 살펴본다. 직원이 번호를 부르고(관광객이 많아서 프랑스어로 숫자를 부르고 안 나오면 영어로 불러준다), 번호표를 들고 사람이 나오면, 주문을 확인하고 나서 돈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 내 번호를 부르면 그거 안 하겠다고 말하면 되겠구나. ‘취소하다’가 프랑스어로 뭐였더라? 얼른 CHAT GPT를 켜서 물어본다. ‘아뉼레 annuler’구나.


내 번호가 불렸다. 나는 앞으로 나가서 “빠흐동Pardon(죄송합니다), 세 몽 뉴메호 C‘est mon numero(그게 제 번호인데요), 제 꼬멍데 빠흐 에훼흐J’ai commande par erreur(주문을 잘못했어요), 쥬 배 레 자뉼레Je vais les annuler(그거 취소할게요).”라고 말했다. 내가 그토록 준비한 단어들 컵, 콘, 스쿱, 여러 가지 맛 이름, 숟가락, 스프링클, 초코시럽, 생크림 이런 단어들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화상프랑스어 수업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 수업은 정작 다른 곳에서 도움이 되었다. 프랑스는 음식이 나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다음 코스가 나올 때의 텀도 길다. 내 생각엔 분명 아이들이 음식점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소란을 피울 것 같았다. (여행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식당에서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님께 ‘식당에서 빨리 먹고 나가야 하는데 이럴 때는 뭐라고 요청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었더니 말을 하지 못하고 계셨다. 내 질문이 조금 불분명했나? 해서 다시 ‘음식들을 조금 빨리 갖다 주시면 안 될까요? 아이들이 기다리는 것을 힘들어해서요.’ 이런 내용으로 말하고 싶다고 하니, 선생님의 당황한 기색이 모니터 너머까지 느껴졌다. 조용하고 차분하신 프랑스인 선생님은 그런 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프랑스어 수업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호한 모습이었다) 프랑스 식당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웨이터에게 재촉하는 것처럼 들리고 예의 없는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소소한 문화에 관한 팁을 얻는 것이 좋았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손님을 왕으로 대하지 않는다. 손님들은 서비스가 필요해서 자기네 가게에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게의 주인이나 종업원들은 왕처럼 행동한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우리나라의 서비스 정신과는 반대다. 그렇다고 우리가 굽신거리면서 레스토랑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왜 이렇게 불친절하지?’ 또는 ‘왜 화를 내지?’라고 억울해하거나 인종차별을 겪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프랑스인들은 기본적으로 웃음을 흘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를 한 번에 바꿔줄 마법의 키가 있으니, 바로 프랑스어다. 당연하다는 듯 영어로 말하지 않고 프랑스어로 이야기하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눈빛도 서비스다. 프랑스인들의 미간에 자리 잡고 있던 인상이 사라지는 것을 실제로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웃겨서라도 잘해준다.


열심히 연습해 간 문장들을 실제로 써먹었던 일은 별로 없었으나 프랑스어가 내 입에서 약간 맴돌 수 있는 상태로 프랑스에 간 것은 다행이었다. 요즘은 CHAT GPT가 있어서 휴대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이야기를 그 나라 말로 바꿔서 말할 수 있다. 다만 이 CHAT GPT를 써서 말하는데도 어느 정도는 그 언어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휴대폰을 들고 화면에 나온 번역된 말을 보여주어야 한다. AI라는 신문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미리 한국에서 많이 써보고 가야 한다. 예를 들어 ‘파리의 아이스크림집에서 주문할 때 쓸 수 있는 상황별 대화 예시를 알려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주문할 때 필요한 대화 스크립트 부탁해.’ 이런 식으로 요청해서 필요한 대화를 메모해 가면 좋다. 아, 그래. 아이스크림 집은 그만하자. 치즈가게나 와인가게라고 바꿔서 연습해 보시길.


그렇다면 왜 프랑스인들은 영어를 쓰면 싫어할까? 나도 이것이 궁금해서 프랑스인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역시 프랑스인답게? 싫어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영어로 말하면 영어로 대답을 해줘야 하는데 영어 발음에 자신이 없어서 긴장을 해서 그럴 거라는 답을 주었다. 영어 발음에 자신감이 없어서 그렇다니 한국인과 비슷하다. 그런데 내가 프랑스를 다녀본 결과 프랑스인들은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고 영어로 먼저 말을 거는 경우가 30%는 되었던 것 같다. 50%는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로 말을 건다. 그리고 20%는 조심스럽게 영어가 편한지 프랑스어가 편한지 물어본다. 우리나라에 놀러 온 외국인들이 더듬더듬 한국어로 길을 물어오는 경우와 너무나도 당연하게 영어로 길을 묻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우리도 한국말을 하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느끼고 한번 더 미소 지으며 길을 안내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프랑스어를 공부해 가자.


외국어로 말할 수 있다는 것. 다른 나라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느낌이다. 내 옆에 그 나라말을 못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솔직히 내 어깨가 2mm 정도 올라가며 일종의 우월감 같은 것을 느낀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순수하게 그 나라의 막을 걷어내고 안으로 들어가 말하는 사람 옆에 앉는 느낌이 든다. 내가 나름대로 소화하고 연습한 발음이 내 목소리를 거쳐 그 나라 사람의 귀까지 도달해 의미가 통하는 것은 굉장한 기분이다. 이런 기분은 아마도 유창하게 외국어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듬더듬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그 느낌을 실제로 체험해 보자. 할 수 있다.


아이스크림은 성공적으로 나왔다. 스쿱의 수를 많이 하고 크게 만들면 예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젤라또는 금방 녹고, 특히 여름엔 더 빨리 녹는다. 제일 작은 사이즈의 콘으로 주문하자. 퐁피두 센터 앞에서 녹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허겁지겁 먹느라 혀가 바빴다.




왕초보 여행 프랑스어 공부하기


1. Duolingo로 학습하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무료 언어 학습 앱이다. 발음연습과 그림 퀴즈를 풀면서 프랑스어 단어와 표현을 익힐 수 있다.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경우 발음과 철자를 익히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진도가 많이 느리고 필요 없는 내용이 계속 반복된다는 느낌에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2. Chat GPT 활용하기

프랑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상상해 가며 프랑스어로 대화를 만들어보고 외워본다. 매우 자발적인 학습방법이기 때문에 초보자는 힘들 수도 있지만 가장 확실히 내가 알고 싶은 표현을 짚어서 알려주기 때문에 학습효과가 가장 좋다.

1) 인사, 기본 표현

2) 식당, 카페에서 주문하기

3) 교통카드 사기, 길 묻기

4) 쇼핑할 때 쓰는 말

5) 숙소나 호텔에서 써야 할 말


3. 프랑스어를 배울 수 있는 유튜브 채널 보기 <Easy French>

실제 파리 거리 인터뷰를 하며 현지의 분위기나 프랑스인들의 진짜 발음을 들을 수 있다. Easy French 채널 페이지에 들어가서 재생목록 중 French for beginners (A1)부터 보면 된다. 아무리 초급자를 위한 영상이라도 처음 들으면 무슨 이야기인지 당연히 알 수 없다. 음악을 듣듯이 이 채널을 틀어놓고 집안일을 해보자. 나는 파리의 골목길이나 프랑스 집안 풍경, 여행지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이 채널을 즐겨본다. 파리에 간다면 이런 분위기겠구나 생각해 보면서 프랑스어를 들어보자,.


4. 여행 프랑스어 책 상황별 회화 암기 50-100 문장 목표

40대인 나는 영상보다는 책으로 배우는 것이 더 쉽고 빠르다. 나와 비슷한 또래라면 이런 책이 더 친숙할 것이라 생각한다. 책의 앞 뒤를 살펴가며 내가 필요한 부분을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루에 2-3 문장 혹은 2-3 단어만 외운다는 목표로 여행 갈 때까지 50 문장을 외워가겠다 이런 식의 목표를 세워보자. 그런데 이 책을 파리까지 가져갈 필요는 없다. 아무리 작아도 들고 다니기엔 무겁다. 한국에서 요리조리 꼼꼼히 살펴보고 가서는 휴대폰 속 Chat GPT를 이용하자.


5. 프랑스인과 직접 대화해 보기 - 당근 영어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나는 <당근 영어>라는 화상 원어민 회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했다. 이름은 당근 ‘영어’지만 다른 외국어도 화상으로 원어민과 공부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처음 보는 프랑스인과 빠르고 딱딱한 프랑스어를 맞닥뜨리기 전에 프랑스어 강사와 부드럽고도 느린 프랑스어로 대화해 보길 권한다. 정말 깜짝 놀랄 만큼의 프랑스어 실력 향상을 이룰 것이다. 나는 하루에 10분씩 대화를 했는데 10분 대화하기 전 30-40분씩 예상 대화를 공책에 적어놓는 식으로 예습을 했다. 하고 싶은 말이나 주제로 내가 이야기를 이끌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프랑스인과 이야기가 통하고 내 말을 알아듣고 심지어 내가 예상한 쪽으로 선생님이 이야기를 받아준다면 그렇게 뿌듯하고 보람차다. 얼른 파리에 가고 싶어진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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