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려도 괜찮은 가방

여행에 한국맛 챙겨가기

by 김선경

외국여행 가는 짐을 꾸리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피곤하다. 무엇을 챙겨야 할지, 어떻게 하면 가볍게 준비할 수 있을지, 다른 사람들에겐 필수품이 아니지만 우리 가족에게 필수품은 무엇인지. 종이에 필요한 물건들을 적는다. 외출 중에도 머릿속에 목록이 계속 추가되기 때문에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었다가 집에 와서 냉장고 앞에 붙여둔 종이에 옮겨 적는다. 그 목록이 하도 방대하여 이미 적어둔 물품을 또 적기도 한다. 컴퓨터 속 혹은 휴대폰 속의 엑셀파일에 적어도 되겠지만 나는 전기를 거치지 않는 기록도구가 가장 빠르고 안전하고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이런 방법으로 하고 있다. 꼼꼼하지 않은 나의 성격을 알고 있으므로 만전을 기하기 위해 비장하게 목록을 작성한다. ‘더 필요한 것이 있을까? 내가 빠트린 것이 없나? 너무 무거워지지 않을까?’ 계속 자기 의심을 하다 보면 괜히 화가 나서 엉뚱하게 남편에게로 화살이 가기도 한다. 왜 나 혼자 이렇게 챙겨야 할 짐을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다 남편에게 이런 문제를 토로하면 뭐가 그렇게 문제냐면서 “너무 무거울 것 같으면 빼면 되지”라고 간단히 말한다. 그리고 내가 써 놓은 목록을 보며 많은 것이 사실은 필요 없는 것이라며, 이것도 빼라, 저것도 빼라고 한다. 그 순간 아, 차라리 내가 조용히 짐을 꾸리는 것이 낫겠다. 이러다가는 내가 가져가고 싶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파리에 못 가져가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불평 없이 조용히 짐을 싸기 시작했다. 제발 내가 꾸리는 짐에 신경을 꺼주길 바라면서. (이것이 남편의 큰 그림인가?)


대한항공 국제선 기준 기내반입 수하물은 1인당 10kg이고, 부치는 짐은 23kg까지이다. 우리 가족은 4명이니까 33kgx4명=132kg까지 가지고 갈 수 있다. 132kg이라니. 너무 좋다. 그런데 사실 그 숫자는 의미가 없다. 아이들과 함께 그 무거운 짐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착하자마자 한 숙소에서만 계속 머문다면 모를까. 한 숙소에 머문다고 할지라도 숙소에 엘리베이터가 있는지를 확인해봐야 한다. 유럽의 숙소는 호텔이 아닌 이상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가 많고, 고장도 잘 난다. 그리고 지상층인 1층은 로비 층이라 방이 없다. 2층만 되어도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층고가 높아서 가방을 들고 걸어 올라가는 것이 힘들다. 게다가 계단은 어지럽게 빙글빙글 도는 달팽이형 계단이다.


머릿속으로 우리 가족이 이동하는 그림을 그려본다. 아이들 둘을 데리고 움직이니 한 명은 유모차를 밀어야 하고, 나머지 한 명이 모든 짐을 책임져야 한다. 남편 어깨에 큰 배낭 하나, 내 어깨에 중간크기 배낭 하나, 그리고 첫째 어깨에 작은 배낭 하나를 얹는다. 이렇게 하면 한 사람만 떠안게 되는 짐의 무게를 조금 덜 수 있다. 그다음으로 어떤 형태의 가방을 챙겨야 할까? 공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가장 큰 가방이라면 이민가방이 있다. 여기에 짐을 싸면 가방 하나만 끌고 가면 되니까 간편하다. 또 이민가방 정도가 되어야 내가 가져가려는 짐들이 모두 들어갈 것 같았다. 그런데 이민가방은 짐을 쌓으며 넣는 구조라 아래에 있는 짐을 꺼내려면 위의 짐을 모두 밖으로 내놓아야 한다. 대부분의 숙소에는 물건을 정리해 놓을 수 있는 비어있는 서랍이나 선반이 부족하다. 짐을 모두 꺼내면 놓아둘 곳이 없다. 이민가방은 안 되겠다. 탈락.


남은 것은 슈트케이스다. 이 가방은 나름 짐을 넣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고, 한눈에 물건을 찾기도 쉬워 서랍이나 옷장 같은 역할을 한다. 이민가방 대신 나는 모든 짐을 슈트케이스에 넣어 가져가기로 결정했다. 기왕 슈트케이스로 가져가는 거 모든 가방을 기내용으로 준비해서 비행기 좌석 위 캐비닛에 넣어가고 싶었다. 수하물로 부치면 최악의 경우 가방이 없어질 염려가 있다. (물론 이런 경험은 한 번도 없다) 또 비행기에서 내려서 가방이 컨베이어 벨트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무수한 짐들 사이에서 우리 가방을 찾아내는 것도 피곤하다. 나는 그 시간이 아까워서 짐을 부치고 싶지 않았다. 예전에 짐이 늦게 나와서 1시간을 컨베이너 벨트 앞에 서 있었던 기억이 있다. 비행기에서부터 내려서 들고 걸어 나오면 얼마나 가뿐한가. 이런 이유로 나는 기내에 들고 탈 수 있을 정도의 가방에 모든 짐을 꾸려보자고 결심했다.


그러나 가방을 기내용으로 모두 꾸리자는 생각도 곧 좌절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로 기내용 가방은 규격이 참 작다. 네 명의 짐을 작은 캐리어에 나누어 담으면 적어도 네 개가 필요할 것 같은데 그 캐리어를 남편 혼자 다 끌 수 없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기내 액체류 반입 규정 때문이었다. 여행에 가져가야 할 액체류인 화장품들과 식재료가 있는데, 규정상 기내에는 소량의 액체만 가지고 탈 수 있다. 1인당 1L이고 이것도 마개가 열려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도 한다. 검색대에서 용량이 초과되거나 마개가 열려있는 액체가 있으면 출국장으로 입장할 때 버리고 들어가야 한다.


이런 규정은 예전에는 없었는데 2006년 영국에서 테러범들이 항공기 폭탄 테러를 시도한 이후에 생겼다. 당시 테러범들은 액체폭발물을 여러 병에 나누어 담아 비행기 안에서 조합해 폭발시키려 했다고 한다. 다행히 출국직전에 테러범들이 검거되어 대규모 테러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거의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는 액체를 비행기 안에 가지고 탈 수 없는 것이다. 2026년도 기준으로 액체류 반입 규정을 요약하면 액체는 100ml 이하의 용기에 담아야 하며, 그 용기들을 1리터 이하 투명 지퍼백 안에 모두 담아야 한다. 크림이나 젤, 치약, 음료 모두 이 규정을 따라야 한다. 이전엔 얼마나 편하게 짐을 쌌을까.


챙겨가야 할 샴푸, 린스, 치약, 그리고 참기름이나 간장도 현지의 아시아마트에서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을 하다 보면 그것을 찾아서 쇼핑하러 다닐 시간이 부족하다. 집에서 쓰던 화장품들을 챙겨간다는 것은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챙겨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액체류를 넉넉하게 가지고 가려면 위탁수하물로 보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캐리어는 부쳐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집에는 이민 가방보다는 작지만 조금 큰 슈트케이스가 있었다. 거기에 액체류를 담고 남는 자리에 혹시나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중요도가 떨어지는 짐들을 넣어가기로 했다.


잃어버려도 괜찮은 짐들이 뭘까? 주로 식량이었다. 남편이 가져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그 모든 것이 이 가방 안에 비밀리에 들어갔다. 이 가방은 식량트럭 겸 간이주방이 될 것이었다. 햇반, 김, 멸치볶음, 깻잎장아찌, 라면, 후리가케, 간장, 양념고추장, 쌈장, 참기름, 식용유, 소금, 설탕, 동결건조 인스턴트 국, 고구마 말랭이, 마이쭈 등을 챙겼다. 아침과 저녁을 집에서 해결하고 점심과 간식을 밖에서 먹자는 것이 우리 가족의 계획이었다. 파리는 외식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예산을 크게 벗어날 것이 뻔했다. 이 식량트럭에서는 햇반이 문제였다. 둘째 딸은 밥순이라 특히나 아침엔 무조건 밥을 먹어야 하기에 햇반은 필수였다. 파리만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파리 이후에 2주를 독일에서 보낼 계획이었기에 3주 치 햇반을 사려고 마트에 갔다. 가서 직접 들어보니 부피도 엄청났지만 무게가 정말 무거웠다. 그 자리에 내려놓고 집에 와서 계산기를 두드려보았다. 햇반 하나가 210g 정도인데 네 가족이 한 끼에 3개를 먹는다고 하면 하루에 6-7개. 하루치 햇반이 1.5kg 정도 된다. 3주면 무려 31kg이다. 햇반을 이틀 치만 사가고 현지 한인마트에 가서 살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우리가 머물 숙소에 전자레인지가 있을지 없을지, 또는 햇반이 들어갈 정도의 포트가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소중한 밥의 존재를 맡긴다는 것이 아무래도 꺼려졌다. 결국 작은 전기밥솥을 샀다. 밥솥은 놀랍게도 1.2kg이었다.


접히는 휴대용 포트도 살까 하다가 포트를 소독할 수 있는 텀블러 세정제 몇 알을 함께 챙겼다. 그리고 조리도구는 주로 다이소의 캠핑코너의 도움을 받았다. 가벼운 젓가락과 수저, 아이용 수저세트, 휴대용 칼가위 (이것이 붙어있는 물건이 있었다) 캠핑용 국자와 얇은 이케아 도마, 플라스틱 컵 등도 넣었다. 그 밖에 돗자리, 우산, 우비 등 없어져도 크게 상관없을 것들도 수하물용 가방에 담았다.


내가 여행이 끝나고 6개월이 지나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수하물 가방 속 내용물을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어떤 사건 때문이다. 파리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식량트럭을 제일 먼저 열어젖혔다. 아무래도 안에 넣어온 음식들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터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전엔 맡아보지 못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뭐지? 음식들을 꺼내 숙소의 싱크대에 하나하나 올려놓으며 살펴봤다. 마지막으로 밥솥을 들어 올렸다. 앗, 내가 간장을 덜어서 양념통에 담아왔는데, 마개가 역시 부실했나 보다. 돌려서 닫는 뚜껑도 아니고, 케첩통처럼 살짝 입구만 막아두는 뚜껑이 달린 통에 간장을 넣어오다니 그때 그런 결정을 한 내가 신기했다. 게다가 부피를 절약한다고 간장통을 밥솥 안에 넣어서 왔다. 혹시나 남편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자는 것도 내가 그렇게 담아 온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밥솥의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던 것인지, 기압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간장은 처절히 흘러 슈트케이스 전체에 자신의 존재를 피력하고 있었다. 진한 갈색 얼룩이 번져나가 아이보리색 우양산과 돗자리 그리고 아이들 우비에 특히 많이 묻어 있었다. 간장 자국이 확실히 있는 물건들만 일단 욕실로 가지고 들어갔다. 샤워기로 아무리 씻어내도 간장냄새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14시간 비행기 타고 와서 당장 쓰러지고 싶은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간장테러 라니.


간장냄새가 나는 우산을 버릴까? 이걸 들고나갈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우리가 외국인이라 눈치가 보이는데 이상한 냄새까지 나면 안 좋을 텐데. 별의별 생각이 다 났지만, 힘들게 챙겨 온 짐을 버리기는 싫었다. 남편은 버리자고 하는데 내가 우겨서 들고나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가족이 파리를 여행하는 6일 동안 파리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왔고 여행 초반에 비가 억수로 내리는 바람에 다행히 밖으로 가지고 나간 소지품에서는 간장냄새가 말끔히 사라졌다. 자연의 힘은 위대하다. 다만 우리 숙소에 계속 누워있던 커다란 슈트케이스와 돗자리에만 그 냄새가 남았다. 하루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면 간장냄새가 우리를 짜게 맞이했다.


후각은 추억을 단숨에 불러오는 대단한 감각인데, 프랑스를 지나 독일에서도 두 가지 향을 더 추가했다. 이번에도 내가 숨겨서 챙겨 온 쌈장이 문제였다. 외국에서도 채소는 섭취해줘야 하니까 ‘채소엔 쌈장이지.’라는 생각으로 휴대용 양념쌈장을 챙겼다. 남편이 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할까 봐, 그걸 내가 매고 가는 배낭 속에 몰래 넣어두었다. 파리에서 배낭에 있던 물건을 다 꺼내 쓰지 않고 필요한 것만 빼서 쓰다가 그 위에 뺐던 짐을 다시 욱여넣고 다음 나라인 독일로 이동한 것이 문제였다. 내 배낭의 크기가 적당한지 남편은 그 가방을 메고 매일 연수를 받으러 다녔는데, 어느 날은 다녀오더니 가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배낭 안의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거기엔 ‘갖은양념을 더해 고소한’ 순창 양념 쌈장이 있었다. 남편은 너무 놀랬는지 커다란 쥐를 만난 것처럼 쌈장을 들어 던졌다. 다른 짐들에 눌려 쌈장의 옆구리가 터져 있었다. 배낭 바닥은 온통 쌈장으로 범벅이었다. 샐러드나 오이와 함께 있어야 할 쌈장이 왜 배낭에. 아까웠다. “아... 그거 내가 싸 온 거야. 그 배낭에 넣어두었는지 몰랐네. 나는 식량 가방에 없길래 안 가져온 줄 알았어. 미안해.” 서둘러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배낭 속을 겉으로 나오도록 뒤집어 열심히 물티슈로 닦았다. 쌈장 냄새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남편은 그날 이후로 그 배낭을 가지고 다니지 못했다. 그래도 그것이 없으면 우리 가족의 짐을 담아 옮길 가방이 부족했기에 도시를 이동할 때 어쩔 수 없이 나는 은은한 쌈장향기를 맡으며 배낭을 멨다.


그래도 제일 강력했던 식재료는 식초다. 시큼하고 쿰쿰한 약간 발냄새 같기도 한 식초 냄새. 식초도 챙겨갔냐고? 설마... 식초는 외국사람들도 자주 사용하는 재료이기 때문에 가져가지 않았다. 그리고 식초가 터졌을 경우에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므로 무서웠다. 사건은 호텔의 조식뷔페에서 일어났다. 프렌치프라이가 나온 것을 보고 신이 난 남편은 자신의 접시에 양껏 감자튀김을 덜고 그 옆에 있던 펌프형 케첩을 신나게 눌렀다. ‘찌익.’ 청바지에 케첩이 쫙 달라붙었다. 펌프 구멍에 케첩덩어리가 말라 붙어있었나 보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케첩이 튀어버렸다. 남편은 짐을 줄이겠다고 바지를 딱 세 벌 가지고 왔는데, 청바지는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바지였다. 그는 인터넷으로 케첩 묻은 옷 세탁법을 검색하더니 그날 저녁 식초를 사 왔다. 케첩이 묻은 곳에 식초를 부으면 지워진다나. 남편은 식초를 케첩 묻은 청바지에 들이부었다. 그리고 그걸 건조기에 말리면 안 된다고 욕실 수건걸이에 걸어두었다. 그다음 이야기부터는 안 써도 될 것 같다.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는 그 숙소에 머무는 4일 동안 내내 화장실을 쓸 때마다, 아니다. 숙소 문을 열 때마다 시큼한 식초 내를 맡아야 했다. 우리는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청소해 주러 들어오시는 분들은 무슨 죄인가 싶었다. 결국 그 청바지는 그 난리를 치고도 다음 숙소로 함께 이동하지 못했다. 간장 냄새는 사라졌으니 쌈장과 식초로 1:1 스코어가 되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를 탓하지 않고 웃으며 쌈장이 심했네, 식초가 심했네 여행 끝까지 냄새일화를 들먹였다.


20대 30대에 외국여행을 다닐 때는 간장이 웬 말인가, 나는 다들 들고 간다는 튜브 양념고추장도 안 챙겨갔다. 아직 어려 여러 맛을 모르는 아이의 끼니를 챙기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식재료를 들고 갔다는 것은 솔직히 변명이고 한국 반찬과 밥을 즐긴 것은 나였다. 즐겼다 정도가 아니라 한 끼라도 밥과 반찬으로 눌러줘야 속이 정리되었다. 파리의 아시아마트에서 산 쌀을 전기밥솥에 안쳐 밥을 짓고, 그동안 포트에 물을 끓여 동결건조 국에 부어둔다. 멸치볶음, 깻잎 장아찌를 꺼내 접시에 올린다. 거기다 햄이나 계란프라이만 곁들여도 한국에서 아침 먹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고, 든든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저녁에 숙소에 돌아와서도 컵라면 하나 끓여서 밥과 함께 먹으면 하루를 잘 보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무겁다면 현지에 버리고 와도 좋으니 최소한의 한식을 위한 식량을 챙겨서 가보자. 간장, 쌈장, 식초 냄새가 함께 한 여행이었지만 나의 식량트럭에 조금의 후회도 없다. 아직도 간장 냄새를 맡으면 파리의 숙소가 생각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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