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은 걸어서 올라가도 된다.

by 김선경

“어머니, 콩콩이가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힘들어해요. 바깥 놀이터를 나가려고 반 친구들과 계단을 내려갈 때 콩콩이는 자주 넘어져요. 그리고 한 칸씩 내려가기 때문에 속도가 느려서 친구들과 같이 내려가지 못하고, 보조선생님이 따로 콩콩이를 데리고 내려가야 해요.”


둘째 딸 콩콩이는 만 4세가 지났는데 아직 계단 오르내리기가 능숙하지 않다. 발을 교차해서 계단 오르기를 성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1학기 어린이집 상담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는 콩콩이의 대소근육발달에 대해 언급하시며 집에서도 계단 오르내리기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생각해 보니 콩콩이는 계단을 올라가는 것은 어느 정도 되는데 내려오는 것을 힘들어했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니 계단을 오를 때와 내려갈 때 쓰는 근육이 다르다고 한다. 아무것도 잡지 않고 발을 교차하며 계단을 오르는 것이 35개월 정도에 가능하다면 내려올 때 쓰는 다리 근육의 조절이 더 어려운 편이라 능숙하게 계단을 내려오게 되려면 42개월 정도 되어야 가능하단다. 첫째를 키웠지만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아파트에 사는 우리 가족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니 평소에는 계단을 거의 쓰지 않는다. 다른 어느 곳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다. 이제부터라도 계단 내려오기 연습을 시키기로 했다. 일단 아파트 계단을 이용했다. 이 집에 이사 와서 4년이 지났건만 한 번도 걸어 내려가본 적이 없는 계단이다. 그 계단을 등원길에 이용하기로 한다. 5층 정도면 등원 시간을 15분만 앞당기면 된다. 그렇게 아침에 계단 내려가기 집중 훈련을 두 달, 드디어 콩콩이는 양발을 번갈아 딛으며 어정쩡하게나마 계단을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어른의 손을 잡고 걸어내려 가야 하며 앞서 누가 오거나 낯선 사람이 옆으로 같이 걸으면 불안해져서 다시 한 칸씩 내려온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부부는 파리 에펠탑 엘리베이터 탑승권 예매에 실패한다.


파리여행을 가보지 않은 사람도 파리하면 떠올리는 것이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궁전이다. 그중 에펠탑은 프랑스 자체를 상징할 정도로 강력한 곳이다. 그래서 그런가 성수기 에펠탑 예약 경쟁은 치열했다. 에펠탑을 계단으로 올라가는 티켓은 쉽게 예매할 수 있지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올라가는 티켓은 전 세계 여행사에서 선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예매가능티켓의 수가 적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구하기 힘들었다. 취소표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파리로 출발하기 전날까지 수시로 확인했으나 실패했다. 차선책으로 우리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티켓을 일단 구매해 두었다. 파리까지 갔는데 에펠탑에 안 가볼 수는 없지. 내 생각엔 아이들이 박물관보다 에펠탑에 직접 올라가 파리의 전경을 보고, 에펠탑 바로 아래에서 에펠탑이 실제로 얼마나 큰 지 느껴보는 것을 더 재미있게 생각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의 의견은 달랐다. 에펠탑은 나중에 다시 와서 올라갈 수도 있으니 에펠탑은 포기하자고 했다. (언제 여길 다시 올 겁니까?) 4세 아이가 에펠탑을 계단으로 오르는 것은 무리가 될 것이라고 중간에 내려오게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나는 그렇게 된다면 첫째랑 나만 걸어 올라갔다 올 테니 둘째를 데리고 에펠탑 아래에서 우리를 기다리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사실 남편은 계단 때문이 아니라 에펠탑 근처의 소매치기를 걱정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파리의 소매치기는 유명하다. 2024년 유럽의 소매치기 지수 순위를 보면 1위는 이탈리아 2위가 프랑스인데, 프랑스에서도 파리의 에펠탑 주변에서 가장 소매치기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고 보고 되었다. 소매치기범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2015년 5월 에펠탑 직원들은 소매치기범들 때문에 집단 파업을 하기에 이른다. 에펠탑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있는 사람들, 혹은 올라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소매치기 사건에 피해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파리 경찰은 에펠탑 인근과 관광지에서 활동하던 소매치기 조직을 검거했는데 루마니아 국적자들이 주축이었고 한 명이 하루에 약 4,000유로까지 벌었다고 한다. 4,000유로면 한화로 약 670만 원이다. 이들을 검거하여 벌금을 내게 하고 자국으로 돌려보내도 국경을 넘기가 수월한 유럽이기에 쉽게 다시 프랑스로 들어올 수 있으니 완전히 이런 범죄를 처벌로 줄이기는 어렵다고 한다. 남편은 아이들도 데리고 있어서 우리가 정신도 없을 텐데 소매치기들이 우글거린다는 에펠탑에 그 위험을 무릅쓰고 가야 하나를 물었던 것이다. 만약 휴대폰이라도 도난당하면 나머지 여행은 상상할 수 없이 망가지게 될 것이다. 게다가 계획에서 벗어나는 일조차 꺼려하는 남편 성격에 소매치기를 당한다면 그의 정신상태가 온전치 못할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일이 생각과는 달리 틀어졌을 때 대처는 내가 어찌어찌한다 하더라도 남편의 멘탈이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과 분노의 에너지를 감당하기가 더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라가 보고 싶었다. ‘핸드폰에 스트랩을 달아 가방과 연결해 두고 그 핸드폰을 가방 안에 잘 넣고 그 가방을 겉옷 안에 넣어 메고 가자. 그래도 불안하거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면 올라가지 말고 바로 그곳을 빠져나오자.’라고 남편을 설득했다. 나는 속으로 ‘에펠탑은 내가 열 번도 더 넘게 올라가 봤으니까 분위기가 어떤 지 알지.’라고 말하며 안심하고 있었다. 실제로 나는 20년 전이지만 에펠탑에 많이 올라가 봤다. 내 기억에 2005년 즈음에는 에펠탑을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는 티켓이 엄청 저렴하거나 줄도 서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에펠탑 주변에 갈 일이 있으면 에펠탑을 그냥 마트에 가거나 시장에 들르듯이 계단으로 부담 없이 올라갔다. 계단으로 슬슬 올라가서 파리 전경을 한번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탁 트인 전망에 가슴이 시원해졌다.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밤이면 밤대로 날이 화창하면 화창한대로 좋았다. 그런데 2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에펠탑 아래가 범죄의 소굴이 되어버린 걸까? 가서 직접 분위기를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결국 내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드디어 에펠탑을 오르기로 한 날. 떨리는 마음으로 에펠탑 쪽으로 걸었다. 그런데 에펠탑이 투명한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예전엔 에펠탑이 탁 트인 광장 한복판에 있어서 어디로든 활보가 가능했는데 말이다. 그러면 입구가 있다는 것인가? 정말 유리벽을 따라 크게 돌아가니 입구가 있었다. 유리벽을 통과하는 줄이었다. 우리나라의 1호선 지하철 개찰구처럼 한 명씩만 통과할 수 있는 쇠봉을 밀면서 들어가는 통로였고, 여기에서 1차로 가방검사와 몸검사를 한다. 이런 상태라면 소매치기들이 마구 들어올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언제 이런 유리벽이 생긴 건지 찾아보니 2018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북쪽과 남쪽엔 유리벽이, 동쪽과 서쪽엔 메탈 펜스가 세워졌다. 그러니까 에펠탑 사방이 울타리로 막힌 것이다. 유리벽의 높이는 약 3미터로 사람들이 뛰어넘을 수는 없다. 왠지 안심이 되었다. 왠지 예감이 좋다. 왠지 에펠탑에 가족 모두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번째 유리벽을 통과하니 그다음은 보안검색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계단 티켓을 가지고 있으므로 계단으로 올라가는 줄에 섰다. 유모차를 가지고 올라가야 하나?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유모차를 보관하는 공터가 따로 있었다. 유모차를 얼른 갖다 두고 티켓을 검사받았다. 티켓을 검사해 주는 프랑스 청년이 “한국분이세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한국사람 이세요?’ 도 아니고 ‘한국인 이세요?’ 도 아니고 ‘한국분’이냐고 묻다니, 우리 가족은 모두 놀랐지만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멋쩍게 웃고만 말았다. 그 줄을 따라 계단 입구 쪽으로 올라가 마지막으로 가방 속 보안 검색을 받았다. 올라갈 거냐 말 거냐 상의할 틈도 없이 자연스럽게 우리는 계단으로 에펠탑을 오르는 입구를 통과했다. 그리고 이 정도로 보안검색을 하면 에펠탑에 올라가서는 정말 소매치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문제는 둘째 콩콩이가 무서워하지 않고 에펠탑 1층까지 무사히 올라갈 것인가, 첫째 뿅뿅이가 짜증을 내지 않고, 또 이상한 이유를 대지 않고 잘 올라갈 것인가가 문제였다. 예전 내 기억엔 에펠탑 계단과 계단 사이가 뚫려있어서 올라가는데 자꾸 에펠탑 아래 바닥이 보여 어질 했던 기억이 있었다. 괜찮을까 걱정하며 올라가는데 나의 기억의 오류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보수공사를 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계단사이가 보이지 않도록 메꿔져 있는 게 아닌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 안도의 한숨은 나를 위한 한숨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신이 나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서운 것도 역시 나 혼자였다. 1층까지만 올라가는 것이니 괜찮겠지 하면서도 자꾸 계단 옆 난간으로 아래가 보였다. 아찔했다. 계단 사이가 막혀있어도 무서운 것은 무서운 것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고소공포증이 생겼나. 혹시 둘째가 계단 오르는 속도가 늦어지면 걸어 올라오는 뒷사람들의 통행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내 앞에 둘째 콩콩이를 세웠다. 그런데 콩콩이는 에펠탑 1층까지 쉬지 않고 단번에 올라갔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도 않았다. 무서운 마음을 다잡으며 올라가야 하는 내가 문제였다. 계단이 이렇게 많았나 다리가 떨려왔다. 그런데 둘째는 “엄마, 조금만 더 힘내. 할 수 있어!”라면서 나를 거의 끌고 올라갔다. 눈물이 났다. 무서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감동했기 때문이다. 믿어달라.


아파트 20층 정도 높이(57m)인 에펠탑 1층에 올라서니 전경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이스크림과 슬러시 팝콘을 파는 매대였다. 예전에는 이렇게 영화관 같은 스낵코너가 없었는데, 에펠탑 한가운데에 축제가 열린 것 같았다. 노란, 초록 철제의자까지 깔아놓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역시나 스낵코너 쪽으로 뛰어갔다. 에펠탑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이라니. 나는 여러 번 와봤지만 에펠탑에서 군것질을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예전에도 레스토랑은 있었으나 이렇게 야외에 자리가 펼쳐져 있지는 않았다. 나를 위한 에스프레소와 케이크, 아이들을 위한 슬러시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사서 자리를 잡았다. 비어있는 의자를 찾기가 어려워 나와 둘째는 바닥에 앉고 첫째만 의자에 앉았다. 파리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에펠탑에서 여유 있게 즐기는 간식타임이었다. 아이들은 슬러시와 아이스크림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간이 잠깐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높은 곳에서 맞는 시원한 바람은 원래 이렇게 청량한 것인가. 에펠탑의 철제구조물 속에서 하늘과 구름에 둘러싸여 에스프레소를 마시니, 잠깐 그냥 나로 돌아왔다. 이 기분을 엄마들은 알 것이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가만히 고요한 순간. 몇 분 되지 않았겠지만 아이들도 말을 걸지 않았던 그 시간이 나에게는 피로회복제 정도가 아니라, 다른 차원에 잠깐 다녀오는 것 같은 기분을 갖게 했다. 몸의 피로도 가시고 정신도 또렷해지는 딱 '나 자신'으로 리셋이 되는 느낌이었다. 파리여행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물으면 그래서 나는 '에펠탑에 갔을 때 좋았어.'라는 전형적인 답을 하고야 만다. 이건 에펠탑이 좋았다는 것이 아니면서도 에펠탑이 좋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앉아있을 수는 없으니, 에펠탑 제일 바깥으로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남편과 첫째는 걸어서 2층에 올라갔다 왔다. 기념주화 자판기에서 에펠탑 기념주화 만들기도 해 보고, 사람들로 붐비지도 않아서 셀카봉으로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여유롭게 걸으며 파리의 동서남북 풍경을 높은 곳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올라오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했다. 걸어 내려오는 계단에서도 콩콩이는 무난하게 한 번에 잘 내려왔다. 계단 내려오기 훈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진짜 눈물 나는 에펠탑 등정이다. 그리고 에펠탑에서 내려와 찍었던 사진들을 보니 나는 가방을 다 열고 다녔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소매치기는 당하지 않았다. 에펠탑 너무 걱정하지 말고 가도 된다. 최소한의 조심은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걸어 올라가는 것도 충분히 괜찮다. 네 살도 걸어 올라가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간식을 쥐어주고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머금은 채 멍 때리는 시간을 꼭 갖도록 하자.







수요일 연재
이전 12화잃어버려도 괜찮은 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