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무늬 기둥 사이에서 놀기

Palais Royal 알고 즐기기

by 김선경

‘더 이상 옷을 안 사도 되겠다.’라고 생각하는 기간이 있다. 그런가 하면 나는 대체 작년에 뭘 입고 다녔던 거지?라는 의문이 강력하게 드는 때가 있다. 앞의 경우는 계절의 중간에서 후반으로 갈 때이고, 입을 옷이 없다고 생각하는 때는 환절기다. 매번 그렇다. 쇼핑을 하기 전에 패션 트렌드를 읽어보자고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검색창에 26ss trend라고 치고 기웃거린다. 그 뒤로는 알로리즘의 신이 나를 인도한다. 알고리즘이 나의 의도를 알고 여러 가지 광고를 보여주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는 유일한 순간이다. 내가 최근에 잘 들어가지 않았던 온라인 옷 쇼핑몰도 보여준다. ‘맞아, 이 쇼핑몰이 있었지.’ 나와 같은 취향의 사람이 많은 것인지 그 온라인 옷가게는 10년이 넘도록 승승장구하고 있다. 잘 나가는 온라인 쇼핑몰답게 모델은 신상을 입고 유럽에 가서 화보를 찍는다. 유럽 중에서도 주로 프랑스 파리로 간다. 나도 가본 적 있는 곳에서 찍은 사진이 보이면 ‘파리에 가서 찍었구나. 여긴 뤽상부르 공원이네.’ 이렇게 혼잣말을 하게 된다. 이 옷 쇼핑몰에서 또 자주 가는 파리의 장소는 ‘팔레 루와얄’이다.


팔레 루와얄(Palais Royal)은 이름만 들어서는 어딘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 사진을 보면, ‘아, 여기! 많이 봤어.’라는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고풍스러운 건물의 안뜰에 생뚱맞게도 몇 백개의 원기둥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있는 곳. 원기둥은 흰색과 검은색의 강렬한 세로 줄무늬로 되어있다. 체스판과 전혀 비슷하지 않지만 원기둥의 일정한 간격과 줄무늬 그리고 색깔 때문에 거대한 체스판처럼 보인다. 원기둥의 높낮이는 모두 제각각이라 낮은 원기둥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기도 하고 조금 높은 원기둥에는 아이들이 올라가 뛰어내리기도 한다. 거인의 체스판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소인국의 사람들 같다.


이곳은 엄밀히 말하면 ‘팔레 루와얄’이라는 이름을 가진 건물의 중정에, <레 두 플라토 les deux plateaux>(1986)라는 예술작품이 설치된 것이다. 260개의 원기둥과 바닥의 줄무늬 선이 바로 그 작품이다. 오래전 미학과 대학원 수업을 들을 때 이 작품이 교재에 나온 적이 있다. 현대미술 수업시간 교수님께서 “이 작품은 왜 여기에 있는 거야?”라고 한 마디 툭 던지셨다. 너무 유명하고 알려진 작품이라 나는 나 말고 다른 모든 학생들이 이 작품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부분의 발제를 담당한 친구도 이 작품에 대해서 교수님이 질문을 할 것인지 전혀 예상을 못했던 것 같다.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교수님의 질문에 아무도 말을 못 하고 있는 고요한 순간이 몇 분 지나갔다. 그때가 아주 생생히 기억난다. 나는 그때 자책을 했다. 교수님은 내가 학부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것도 알고 계시고, 심지어 나는 파리에서 잠깐 살았던 적도 있고, 이 수업에서는 내가 최고령 학번인데 나는 왜 이것을 모르는가. 사실 내가 모른다는 것에 대해 화가 나기도 했지만 교수님께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내가 이 작품에 대해 그 이후로 알아봤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새로운 것을 아는 것에 대한 욕구보다 인정욕구가 더 큰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범생이병에 걸린 학생들의 특징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그 수업은 이미 끝났고, 다른 인정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갈 페이지에 있는 작품에 더 집중했다. 이번 파리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이 작품에 대해 알아보고 가야겠다는 생각보다 여기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 정도였다. 이런 거대한 설치작품은 직접 그곳에 서서 보지 않으면 느낌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공간에 가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것이 궁금했다. 루브르 박물관 바로 옆이라고 하던데 나는 그 근처를 수도 없이 걸어 다녔건만 줄무늬 원기둥 광장을 본 적이 없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곳을 꼭 가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내가 아는 곳만 확인하듯이 돌아다니지 말고 한 번도 안 가본 곳에도 가보는 것이 소소한 나만의 버킷리스트였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나오자마자 구글앱을 켰다. 오페라 쪽으로 길을 건너라고 한다. 알았어.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왼쪽으로 걸으면 된단다. 걸어가는 도중 두리번거리며 살펴봐도 그 어디에도 스트라이프 원기둥은 보이지 않는다. 구글지도를 의심한다. ‘이 근처에 그런 곳이 정말 있긴 한 거야?’ 그래도 지도가 안내해 주는 대로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작은 입구가 보인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수 백개의 스트라이프 원기둥이 우리 가족을 맞이한다. 정말 한 발자국 차이인데 그 발을 들여놓고 안 들여놓고의 차이가 다른 세상을 넘나드는 기분이 들게 했다. 숨어있는 것처럼 건물에 둘러싸인 이곳은 쿠르 도뇌르‘Cour d‘Honneur’라고 불리는 팔레 루와얄의 작은 중정(中庭)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새로운 장면이 펼쳐지는 극적인 효과를 노린 듯, 이 정원은 갑자기 펼쳐진다. 작은 입구만 보면 이런 공간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다. 그러니 내가 한 번도 못 와본 것이겠지. 아이들은 이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폴짝폴짝 뛰기 시작한다. 그렇게까지 신이 날까 싶을 정도로.


높낮이가 제각각인 원기둥이 질서 있게 늘어서 있고, 바닥에도 검정과 흰색이 교차하는 선이 있다. 이 장소가 엉뚱하게 보이는 이유는 스트라이프 원기둥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이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동동 뜨는 조합이라고 해야 할까. 팔레 루와얄은 아주 고풍스럽다. 팔레 루와얄은 지금으로부터 350여 년 전인 1630년대 리슐리외라는 추기경이 자신의 저택으로 지은 건물이다. 원래의 이름은 ‘팔레 카르디날(Palais Cardinal)’이었는데 나중에 왕실에 기증되어 지금의 이름인 ‘팔레 루아얄’이 되었다. 이 건물의 중정은 처음엔 전형적인 고전주의 건축 양식이었다고 한다. 중앙에 자갈이 깔린 넓은 평면에 그 주변을 기둥이 둘러싼 아케이드(아치형 지붕이 있는 덮개 통로)가 감싸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18세기말에는 기마행렬 공간으로 쓰이다가 1970년대에는 주차장이자 관리시설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이런 멋진 공간을 주차장으로 쓸 생각을 하다니 놀라운 발상이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너무 흔하면 이럴 수 있는 건가?


그러다 1980년대 초, 문화부 장관이었던 잭 랑(Jack Lang)이 역사적인 공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자라는 구상아래 주차장을 팔레 루아얄 중정 아래인 지하로 내리고, 지상을 예술작품이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공간에 작품을 설치할 작가로 선정된 사람은 다니엘 뷔랑(Daniel Buren)이었다. 뷔랑이라는 작가는 현대미술작가인데 그의 분야는 회화나 조각이 아니라 개념미술이었다. 그의 시그니쳐는 흰색과 검은색 세로 줄무늬 패턴인데, 이 무늬는 자신의 작품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장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찍어낸 개성 없는 무늬이기 때문에 사용한 것이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특별하지 않은 무늬를 채택하여 오히려 관람객이 자신의 작품에 주목하기보다는 작품이 놓인 장소를 인식하게 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 이 작가의 작품 콘셉트이다.


그의 작품이 팔레 루와얄의 중정 자리에 설치될 것이 결정된 뒤 무수한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뷔랑의 작품이 고전적인 궁전 분위기를 망친다고 생각했으며, 작품이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반감이 심했다. 미적가치가 없는 줄무늬 기둥들을 세워놓은 것이 무슨 작품이냐며 철거요구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기사들이 이어졌다고 하니 당시 작품의 설치는 엄청난 사회적 이슈가 되었나 보다. 지금은 그때의 논란이 사라지고 파리의 대표적인 공공미술작품으로 당당하게 평가받고있으며 관광객들이 들르기를 원하는 장소가 되었다.


기왕 이렇게 조사한 것, 더 자세하게 작품에 대해 알아보자. 10년 전의 수업시간을 소환하여 가상 수업 느낌으로.

“그래, 알겠어. 왜 거기에 설치하기로 했는지는 알겠고, 제목이 <두 개의 고원>이라고? 제목은 왜 이렇게 붙인 거야?”

“아, 교수님. 이게 프랑스어로는 <Les Deux Plateaux>라고 하는데요. 우리나라 말로 두 개의 고원이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작품의 의미와 연관 지어 생각해 봤을 때 <두 개의 층>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립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뷔렝이 작품 아래에 숨겨져 있는 지하층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 아래에 뭐가 있는데?”

“네, 이 작품 아래에는 프랑스 문화부 건물의 환기구가 있다고 합니다. 작품은 이 환기구를 숨기도록 설계가 된 것이고요. 제목인 ‘두 개의 층’은 원기둥이 놓인 지상층과 환기구가 있는 지하층을 뜻하는 것이래요.”

“그렇군. 그러면 원기둥은 왜 높이를 다 다르게 한 거야?”

“원기둥의 높이가 지하층의 높이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해요. 지하와 지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요. 260개의 기둥은 사실 모두 같은 높이인데, 지하층의 깊이가 깊으면 그만큼 지하로 내려가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지상에서 보이는 원기둥의 높이가 낮은 것이고요. 반대로 원기둥의 높이가 높으면 지하의 층고가 낮아서 지하로 얼마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지상으로 많이 올라와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답니다. 다시 말해서, 지하에 숨겨진 원기둥의 높이와 지상에 드러난 원기둥의 높이를 합치면 모든 원기둥의 높이가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음, 그렇군. 그러면 <두 개의 층>이라는 제목도 작품과 어울리는 것 같네.”

이렇게 수업시간에 대답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 답을 이렇게 세월이 지난 지금에야 글로 쓰고 있다.


이제야 생각난다. 미술이론 수업의 주제는 장소특정적 미술이었다. 장소특정적 미술은 어디에 있어도 작품의 가치가 유지 보존되는 고전작품과는 달리 그 장소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작품을 말한다. 다니엘 뷔랑의 작품도 팔레 루와얄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조각작품이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처럼 그 작품이 어느 나라에 있건 (최고로) 신비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지니는 것과는 달리, 다니엘 뷔랑의 <두 개의 고원>을 어딘가에 옮겨서 전시한다는 것은 그 작품 고유의 가치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과 같다. 어디에서나 가치를 지니는 고전작품을 보는 것도 파리여행을 즐기는 한 방법이겠지만, 파리, 이 장소에서만 가치를 지니는 이런 작품과 어울려 볼 것을 추천한다.


직접 팔레 루와얄에 가서 원기둥 사이에 서니 나도 괜히 신이 났다. 패션 잡지에 ‘스트라이프 무늬는 경쾌함을 준다’고 쓰여 있는 것을 자주 봤는데 그것이 이런 의미였구나 싶었다. 이 공간은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 좋은 놀이터다. 놀이터도 아닌 곳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놀 수 있을 것인가 싶었으나 아이들은 여기에서 30분도 넘게 놀았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높은기둥에 올라가 뛰어내리고 낮은 높이의 기둥 위에서는 점프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오니 이런 놀이를 하는데 창피함이 없어서 좋다. 내가 노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랑 잘 놀아주는 엄마로 보일 테니까. 아이들이 원기둥에서 뛰어내리는 사진보다 내가 원기둥에서 높이 점프하고 있는 사진이 휴대폰에 훨씬 많았다는 것은 비밀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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