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기사가 되어 회전목마 타기

파리에서만 할 수 있는 놀이

by 김선경

아이와 함께 살다 보면 부모의 오감엔 아이필터가 저절로 끼워진다. 눈에 보이는 것도 달라지고, 모든 행동과 말이 변한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이들과 가볼 만한 곳을 찾다 보니 파리에는 회전목마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전엔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정보였다. 게다가 관광명소마다 회전목마가 있단다. 왠지 마음이 놓인다. 여차하면 회전목마를 태우면 되니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번 파리에서 우리 아이들은 네 가지 종류의 회전목마를 탔다. 네 가지 종류를 각각 몇 회 탔는지는 묻지 않기로 하자. (아이들은 절대 1회로 만족하지 못한다) 그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룩셈부르크 공원 Jardin du Luxembourg에 있는 회전목마였다. 아이들은 예상치도 못했던 회전목마를 보자마자 강력한 자기장이 작동한 것처럼 앞으로 뛰어갔다. “엄마, 이거 탈래. 이거 타고 싶어. 타면 안 돼?” 첫째가 조르기 기법을 구사하기 시작한다. 이 공원으로 오는 길에 이미 회전목마를 타고 왔으니 안 태워줄 것 같아서 그러는 것이다. 반사적으로 나는 “1일 1회전 목마 하자. 1일 2회전 목마는 조금 심하지 않니?”라고 말했다. 첫째는 이런 회전목마가 있는 줄 알았다면 오는 길에 있었던 시시한 회전목마를 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듯 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까 탔잖아, 또 타는 건 너무 심하지 않아?”


그런데 이 회전목마는 조금 특이했다. 말 위에 타고 있는 아이들이 30cm 정도 되는 나무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막대기에 고리 같은 것이 끼워져 있었다. 아이들마다 고리의 개수가 모두 달랐다. ‘저건 뭐지?’ 이끌리듯 가까이 다가가 막대기로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았다. 줄을 서 있던 아이들이 말에 올라타면 직원이 나무 막대기를 나누어준다. 그리고 기구가 회전하기 시작하면 직원은 매표소 쪽에 매달린 펀치볼 모양의 장치 앞에 선다. 그리고 숙련된 달인의 손놀림으로 장치에 고리를 하나씩 넣는다. 고리는 지름이 5cm 정도 되는 동그란 쇠 링이다. 쇠 링이 장치아래로 내려온다. 목마가 회전하면서 펀치볼 장치 쪽을 지나갈 타이밍에 아이들은 막대기의 끝을 정확히 쇠 링 안으로 밀어 넣은 뒤 낚아채듯이 잡아당긴다. 장치 앞으로 자신의 목마가 올 때쯤 막대기를 정확한 각도로 준비해야 하니 민첩해야 하며, 적당한 힘이 있어야 고리를 장치에서 빼서 막대기에 끼울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나이가 있는 어린이들이 할 수 있다.


나는 아이들이 동네 축제에서 공짜 풍선을 받으려고 15분 넘게 줄을 설 때마다 “그걸 꼭 받고 싶어?”라고 물어보는 약간 동심이 메말라 있는 엄마다. (육아에 지친 피곤한 엄마라고 하자) 강아지나 칼 모양으로 만든 풍선을 받고선 아이들이 세상 다 가진 것처럼 좋아하면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야. 저게 그렇게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회전목마는 아이들이라 좋아할 수 있는 수준의 행복과는 달랐다. 어떻게 회전목마에 고리 넣기 게임을 함께 할 생각을 했을까? 기발하다. 그 놀이 하나로 이 회전목마는 완전히 다른 놀이기구가 되었다. 사실 회전목마는 놀이공원에 있는 기구 중에서도 시시한 편에 속한다. 재미라면 가만히 앉아서도 뱅글뱅글 돌아가니 자신의 힘을 들이지 않고서 360도의 전경을 모두 볼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말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 정도랄까. 만 4세인 둘째 아이 수준에 맞는 놀이기구이지, 초등학생 큰 딸아이에게는 재미있는 놀이기구가 아니다. 그런데 이 회전목마는 달랐다. 유아보다 차라리 초등학교 3학년 큰 딸의 수준에 맞는 회전목마였다. 이 회전목마를 타는 것이 흔한 기회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다. 나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목마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이 회전목마를 타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결심했다. 손짓을 하며 남편을 불렀다. “잠깐만 이쪽으로 와봐. 애들 이거 타기로 했어.” 아이들을 회유하여 데리고 나올 것을 기다리면서 멀찍이 서 있던 남편은 나의 결정에 ‘왜 그러는 거야, 왜 또 탄다는 거야?’라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표를 사서 차례를 기다리며 첫째 뿅뿅이는 물었다. “엄마, 그러니까 저걸 많이 끼우면 무슨 상품이 있는 거야?” “글쎄, 그런 것 같지는 않아. 너도 상품을 주는 건 못 봤잖아. 한 번 더 태워주나?” “일단 타보자!”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딸은 자기가 찜해 놓은 목마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한번 타고나더니 첫째 아이는 역시나 이 회전목마를 몇 번이나 더 타고 싶다고 졸랐다. 나도 이 재미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전목마보다 고리 넣기 게임이 재미있었던 것이다. 목마가 회전하는 속도에 맞춰 자기가 주체적으로 움직여 고리를 획득하는 것에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회전목마는 수동적으로 앉아서 전경을 바라보게 해주는 의자 역할에서 고리 넣기를 재미있게 해주는 수단으로 진화되었다.


회전목마는 프랑스어로 하면 ‘카루셀 le carrousel’이다. 영어도 철자만 약간 다르게 ‘카뤼젤 carousel’이라고 부른다. 회전목마가 어디 있는지 묻고 싶다면 “엑스큐제 무아, 우 에 르 카루셀? Excusez-moi, ou est le carrousel?”이라고 말하면 된다. (실제 발음은 '꺄루쎌' 쪽에 더 가깝다) 카루셀이라는 말이 왠지 멋있다. 어원을 찾아보니 기마술과 관련이 있단다. 원래 이 말은 이탈리아어 ‘까로셀로 carosello’에서 왔고,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기병들이 원형으로 돌며 창이나 검으로 기술을 겨루는 기마 군사훈련을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실제 전쟁이 아니라 전쟁 전의 훈련이었던 카루셀은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아서 나중에 귀족들을 위한 기마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훈련에서 기사들은 원형으로 돌며 기량을 뽐냈는데 이는 오늘날의 회전목마의 형태와 비슷했다. 그리고 오늘날 카루셀은 말들이 빙글빙글 도는 구조의 놀이기구인 회전목마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회전목마의 어원을 캐다 보니, ‘그러면 막대기에 고리를 넣는 게임이 창이나 검으로 기술을 연마하던 중세시대의 군사훈련에서 오지 않았을까?’ 머릿속이 번쩍 거린다. 이렇게 되면 회전목마에 막대기 고리 넣기 게임이 함께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막대기가 창이고 고리 넣기가 창을 쓰는 법을 연마하는 연습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이번 유럽여행을 하면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챗 GPT에게 물어본다. ‘파리에 회전목마 중에서 막대기에 고리 넣기를 하면서 타는 회전목마가 있거든. 그런 장치는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유래가 있어?’라고 물었더니 박식한 GPT는 이 놀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준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에서는 회전목마를 타면서 하는 고리 넣기 게임을 ‘쥬 드 바그jeu de bagues’, 즉 반지 게임이라고 한단다. 이는 중세-르네상스 기병 훈련에서 직접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기병들은 창이나 검을 이용해서 작은 고리를 꿰거나 표적을 찌르거나 회전하는 인형을 타격하는 훈련을 했는데 이 중 고리 꿰기가 그대로 놀이형식으로 변해 회전목마에 남은 것이라고 한다. 소름이 돋았다.


회전목마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다. 놀이기구의 역사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다. 프랑스 귀족들은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기마훈련(카루셀)을 쇼처럼 즐기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GPT도 알려준 내용이다. 역시 이런 재미는 보는 것을 넘어서 직접 해볼 때 더 즐거운 법, 이 쇼는 게임으로 발전했단다. 17세기 후반 귀족들은 평평하게 곧은 길을 골라서 기마훈련 게임장을 만들었다. 길의 끝에는 링을 매단 나무를 두었다. 말을 탄 사람이 창을 들고 달리다가 정확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창에 고리를 통과시키는 놀이였다. 이 놀이는 정말 재미있었지만 게임으로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첫째로 실제 살아있는 말은 쉽게 지쳤다. 둘째로 평평하고 긴 공간을 찾아 게임장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때 ‘실제 말 대신 나무로 된 가짜 말을 타고 게임을 즐기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 말을 타는 것보다 다루기 쉽고 경제적이었기 때문에 이 목마기구는 순식간에 프랑스에 퍼졌다. 나무 말은 동그랗게 돌아가는 구조였는데, 이 또한 공간을 절약하는 효과가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귀족 정원에서 이 놀이기구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말은 사람이 끌거나 말이 끌었다. (말이 비싼 것보다 길고 평평한 게임 부지를 구하는 것이 더 어려웠었나 보다) 이런 것을 보면 필드에 나가서 골프를 치기 어려우니 간단하게 실내 골프 연습장이 생기는 요즘의 상황과 비슷한 것 같다.


목마기구를 만들던 장인은 왜 이런 목마를 귀족 남성들만 타고 놀아야 하는 가에 생각이 미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평민과 아이들도 탈 수 있는 나무말을 만들었다. 그때까지 나무말은 진짜 말이나 일꾼들이 끌어서 움직이니 가난한 사람들이 타는 것은 꿈도 못 꿀일이었다. 그래서 나무말을 작고 가볍게 만들어서 사람 한 명으로도 쉽게 끌 수 있게 만들어 보기로 했다. 아이들용으로 조금 작게 만든 목마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19세기 초 회전목마가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로 만들어졌을 때부터, 목마를 타고 지나가면서 막대기에 고리를 끼우는 장치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프랑스식 전통 목조 회전목마에는 거의 이 기능이 함께 있었다고 한다. 증기기관이 발전하면서 증기식 회전목마가 나오고 말 장식이 화려해지면서도 고리게임은 계속 유지되었다. 회전목마 위에 탄 사람이 지붕 또는 외부에 설치된 링디스펜서에서 작은 금속 고리를 뽑아 창 모양의 막대기 안으로 끼우는 방식이었다. 당시에는 고리를 많이 모으면 무료 탑승권이나 상품을 주는 놀이가 프랑스 전체에 퍼졌다고 한다.


프랑스는 전통 보존에 대해 진심이라 파리의 오래된 회전목마들은 19세기식 기능을 남겨두고 있다. 파리에 이런 유래를 간직한 회전목마는 세 곳에 있단다. 바로 우리 가족이 갔던 룩셈부르크 공원, 몽소공원, 그리고 여름에 만 열리는 튈르리 공원 놀이동산이다. 이 중 룩셈부르크 공원에 있는 회전목마가 가장 전형적인 회전목마라고 한다. 무려 1879년에 오페라 가르니에의 건축가가 디자인한 회전목마라고 하니 전통을 체험하고 싶다면 여기로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이렇게 유서 깊은 회전목마인 줄 모르고 아이들을 태웠는데 행운이었다. 역시 아이들과 함께 다니면 생각지도 못하게 경험하고 배우는 것들이 있다. 그 회전목마는 일부러라도 가서 탔어야 하는 카루셀이었던 것이다.


회전목마가 멈춘다. 아이는 쇠링이 걸린 막대기를 자랑스럽게 들어 보이며 활짝 웃는다.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저렇게 좋을까.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직원이 막대기를 든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쇠 링의 개수를 세어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우아 많이 걸었네. 대단하다.”라는 골지의 이야기를 다양한 문장으로 해주시며 막대기를 수거하신다. 왜 눈물이 나지? 회전목마 타는 게 이렇게 아름다울 일인가? 많이 걸면 무슨 상품이 있나 궁금해했던 나는 상품으로는 값이 매겨지지 않을 그 따뜻함에 부끄러워졌다.




룩셈부르크 공원의 고리 넣기 게임이 있는 카루셀(회전목마)의 위치는 Ludo Jardin이라고 하는 유료 어린이 놀이터 앞에 있습니다. 탑승을 위해서는 현금이 필요해요. 고리 넣기 게임을 하려면 제일 바깥쪽 목마에 앉아야 합니다. 고리를 많이 획득한다고 해서 상품이나 한번 더 태워주는 식의 메리트는 없지만 보는 사람도 흥미진진합니다. 큰 아이의 말에 따르면 이 회전목마가 특이한 것은 회전목마 아래 판과 연결되어 있는 기둥이 없기 때문에 붕붕 뜨는 기분이 든다는 건데요.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이 나서 재미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파리여행하시는 분들에게 가장 추천하는 장소입니다. 꼭 가보세요.


그 밖에 관광 랜드마크에 있는 회전목마를 소개해 드리자면, 세 군데 정도를 꼽을 수 있겠는데요.

첫째, 몽마르트르 언덕 바로 아래에 있는 회전목마. 이 회전목마는 <아멜리에>라는 영화에도 나온 적이 있어요.

둘째, 에펠탑 앞 회전목마. 이 회전목마는 고정식이 아니기 때문에 때에 따라 운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야경이 특히 예뻐서 사진 찍기 좋은 스폿으로도 유명해요.

셋째, 트로카데로 정원 회전목마. 이 회전목마는 2층 구조의 복고풍 기구이며 빈티지 느낌이 강한 디자인입니다. 여기서도 에펠탑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sheng-l-b7AurY9kUf8-unsplash.jpg 사진출처 : Unsplash의Sheng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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