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보석이 되어볼래?

거대한 보석함 속으로 생트 샤펠

by 김선경

여행을 떠나기 전 비행기표를 발권한 이후로 우리 부부는 매일 저녁 아이들을 재우고 식탁에 앉았다.

“보석이 되어보고 싶니?”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뭐라고?”

“내가 파리에 가서 보석이 되게 해 줄게.”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파리에 거대한 보석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파리 여행의 시작은 시테섬이었다. 역사의 의미를 따라 시테섬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시테섬은 파리가 시작된 곳이니까. 이 섬부터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일정을 짰다. ‘아이들과 파리여행하는데 무슨 역사가 중요해?’라는 말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도 들렸다. 그런데 파리 여행 계획을 짜본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어떤 기준도 세워놓지 않는다면 파리는 가볼 곳이 너무 많아 계획의 시작조차 어렵다는 것을. 시테섬은 ‘파리’라는 지명의 기원이 된 ‘파리지 Parisii’족이 기원전 3세기 중엽 정착한 곳이라고 한다. 파리의 중심부를 흐르는 센느강, 그 센느강의 가운데에 있는 시테섬. 그곳으로 가자.


여름인데 쌀쌀하다. 한국에서 찌는듯한 더위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들에게는 놀라운 날씨였다. 잠바를 챙겨서 나선다. 숙소에서부터 시테섬까지 가는 길이 애매하다. 어제저녁에 파리에 도착해서 아직 교통카드도 사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택시를 타고 움직였다. “봉쥬르, 생트 샤펠, 씰 부 쁠레Bonjour, Sainte-Chapelle, s‘il vous plait.”라고 기사님께 목적지를 말했다. 첫인상이 중요하니 시테섬에 있는 예쁘고도 아담한 생트 샤펠 Sainte-Chapelle을 첫 방문지로 정했다. 날이 많이 흐려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생트 샤펠 소성당은 이전에도 가 본 적이 있는 곳이다. 15년 전이긴 하다. 기대를 안 했는데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내가 거대한 보석함 속에 들어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시테섬에는 생트 샤펠보다 더 유명한 ‘노트르담 성당 Cathedrale Notre-Dame de Paris’이 있지만 거기보다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생트 샤펠이 더 프라이빗하고 아담하고 감동적이었다. 아이들도 이곳을 훨씬 좋아할 것 같아서 예약을 해두었다. 우리는 파리 뮤지엄 패스를 구입했기 때문에 시간만 예약하면 끝이었다. 입구에서 파리 뮤지엄 패스와 예약시간이 적힌 이메일을 보여주면 들어갈 수 있다. 예약시간이 다가오자 하늘에서는 갑자기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성당 앞에 줄을 서 있던 우리는 우산을 쓸 수도 안 쓸 수도 없어서 잠바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버텼다. 차례가 되면 소지품 검사하는 곳으로 줄이 이어진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면 어떤 안뜰로 들어서게 된다. 본격적으로 건물을 구경하기 전에 이 성당에 대한 역사를 알아보자.


생트 샤펠 소성당은 왕실사람들이 쓰던 성당으로 그리스도의 수난 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1248년 지어졌다. (보석함과 비슷하군) 완공된 연도로만 따지만 노트르담 성당보다 먼저 지어진 셈이다. 그리스도의 수난 유물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십자가? 못? 아니면 가시관? 그렇다. 정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쓰고 있었던 가시관을 보관하기 위해 특별히 지어진 소성당이다. 어떻게 해서 가시관이 프랑스까지 오게 되었나 하니, 신심이 남달랐던 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십자군 전쟁 때 십자군이 재정적으로 어려웠을 때 십자군은 돈을 빌리기 위해 자신들이 정복한 비잔틴 제국의 국보인 예수의 가시관을 베네치아 은행에 담보로 내놓았다. 그 소식을 들은 프랑스의 왕 루이가 은행에 13만 5,000 리브르를 지불하고 가시관을 가져온다. 1239년이었다. 왕은 그 가시관을 보관하기 위해 작은 성당을 짓기로 하는데 이것이 생트 샤펠이다. 1242년 착공식을 하고 6년 만에 완성된 성당은 중세 건축치고는 굉장히 빨리 만들어졌다.


생트 샤펠을 지은 루이 9세(1214-1270)는 프랑스 국왕 중에 신앙심이 깊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엄청난 돈을 주고 가시관도 가져오고 가시관을 보관하기 위해 건물을 지었을 것이다. 그에게 깊은 신앙심이 심어준 사람은 어머니였는데 아들에게 어릴 적부터 사방에서 악마가 위협하고 있으니 늘 대비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효자 아들은 참회용 속옷을 입고(어떤 속옷일지 궁금) 매일 밤 침대 머리맡에서 50번씩 무릎 꿇고 기도했으며 자주 금식을 해서 허약했다고 한다. 또 헛되어 웃고 즐기거나 쾌락에 빠지는 것도 금기시했다. 어머니는 밤에 불시에 찾아와서 아들 내외를 감시할 만큼 엄격했다고 한다. 오 마이 갓. 이런 광적인 신심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이런 성당을 볼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생트 샤펠은 2층으로 된 건물이다. 1층은 왕실 사람들이 기도하기 위한 소성당이고, 2층에 성물을 보관했다. 가시관은 은으로 만든 케이스에 넣고, 또 다른 수난유물들, 십자가 조각,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창, 해면 같은 것들을 모아서 함께 보관했다고 한다. (대단하다) 더불어 철학과 신학책들 그리고 국가문서들을 보존했으니 여기가 프랑스 최초의 공식 문서보관소였단다. 그런데 그 가시관은 지금까지 남아있을까? 놀랍게도 노트르담 대성당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2019년 노트르담 대성당에 큰 불이 났을 때 소방관들은 매뉴얼에 따라 이 성물부터 가지고 나왔다고 하니 그 유물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지금도 매월 첫 번째 금요일 오후에 이 가시관으로 특별 미사를 올린다고 한다.


안뜰을 지나 생트 샤펠 소성당으로 들어갔다. 맨 먼저 천장이 낮은 1층에 도착하는데 짙은 파란색 위에 금박 별 무늬가 멋지다. 자세히 보니 이것은 별이 아니라 프랑스왕실을 대표하는 백합문양(Fleur-de-lis)이다. 그리고 기둥에는 작은 성처럼 보이는 금색 문양이 있는데, 이것은 왕의 어머니의 가문이었던 카스티야 가문의 상징이란다. 이곳은 앞서 설명했듯이 왕실전용 성당이기에 이런 문양을 그려놓은 것 같다. 여기 1층은 왕비 및 시종, 평신도들을 위해 사용되었던 층인데 좁고 별 것이 없어 보인다. 여기에서 실망하기엔 이르다.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지 말고 위층으로 올라가자. 어두운 계단을 따라 오르면 2층에 도착한다. 아이들과 함께 오르니 계단이 이렇게 가파르고 좁고 높았었나 생각이 든다. 역시 옆에 누가 있는가가 세상을 다르게 보게 만든다. 나는 위층에 있는 하이라이트 공간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작은 곳으로 드나들도록 좁게 계단을 만들다니 새삼 놀랍다고 생각했다.


위층에 도착해서 고개를 드는 순간. 그렇게 좁았던 계단이 연출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황홀한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좁고 어두웠던 곳에서 갑자기 넓고 눈부신 곳으로 가니 극적인 효과가 난다. 우리는 사방이 스테인드 글라스로 반짝거리는 보석함으로 빨려 들어갔다. 건물 밖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던 모습의 높은 층고에 색유리가 사방으로 펼쳐지는데 실제인지 꿈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날이 흐리고 아침시간이었는데도 이 정도로 영롱하게 반짝거리다니. 첫째 아이는 내 핸드폰을 자기가 아예 가져가서 사진을 찍고 다녔다. 아이들의 눈빛과 남편의 얼굴을 살핀다. 다들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입이 벌어져있다. 바로 이 기분이 우리가 보석이 되는 체험이다. 거대한 보석함 안에 들어와 있는 우리는 모두 보석.


아이들은 이 화려한 유리에 넋을 잃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구약성서부터 신약성서의 마지막까지 모두 1,100가지 장면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쏟아진다. 색색의 유리창 어딘가에 이 성당을 지은 루이 9세가 가시관을 들고 파리로 오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생트 샤펠에 가기 전, 옛이야기를 알지 못했던 나는 실제로 왕이 가시관을 들고 오는 장면을 찾아볼 생각도 못했다. 그 부분이 아쉽다. 제단을 바라보고 오른쪽에 있는 창문에서 왕관을 쓴 사람을 찾으면 된다고 하니 이 글을 읽고 생트 샤펠에 가시는 분들은 찾아보시길. 왕이 예의를 지키기 위해 맨발로 성물을 들고 오는 장면이니 맨발+왕관의 조합이 보이면 바로 그 창문이다.


생트 샤펠은 예약을 하거나 표를 구매해서 들어올 수 있으니 입장객의 수가 제한되는 것 같았다. (성수기에는 19유로이고 비성수기에는 13유로에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18세 이하는 무료다.) 그래서 그런가 사람들로 엄청 붐비지는 않았다. 자리가 넓으므로 셀카봉을 이용해서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둘째는 칭얼거려 남편이 계속 안고 다녔지만 여행의 첫날이니 그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애써 웃었다. 그 증거가 사진에 남아있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기념품 샵을 구경랬다. 아까 들어왔던 1층으로 내려가면 한쪽이 모두 기념품 코너다. 관광객들이 여기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구경하기도 어려운 좁은 기념품 매대에 예쁜 유리 공예품들과 엽서, 책들이 쌓여있다.


여기에서 첫째 딸은 가죽 수첩을 고른다. ‘엥? 왜? 왜, 그걸 들었니 아가...?’ 전혀 특색이 없는, 생트 샤펠 소성당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 같은 수첩. 가격도 비쌌다. 남편은 앞으로 가볼 곳이 얼마나 많은데 처음부터 기념품을 사느냐고 시작해서 집에 얼마나 수첩이 많은데 또 사냐고 끝내 짜증을 냈다. 아이와 남편은 비좁은 기념품 샵 사람들 틈에서 싸우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 스테인드 글라스 제품은 생뜨 샤펠을 떠올리게 하지. 이건 사가면 어떨까?”라고 나에게 묻는다. “남편아, 사진으로 간직하자. 내가 예쁘게 많이 찍어줄게.”라고 말하고 나는 아이가 골라든 수첩만 들고 계산대 앞에 섰다. 그런데 그 이후 많은 박물관을 관람했음에도 그렇게 예쁜 기념품은 보지 못했다. 남편에게 미안해진다. 여러분 생트 샤펠에 가면 스테인드 글라스 기념품 꼭 사세요. 두 개 사세요.


시테섬을 잘 걸어보려고 지도에 산책 동선까지 표시해 왔건만. 돗자리도 챙겨 왔는데... 성당 밖으로 나오니 눈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내린다. 걸을 수도 없다. 생트 샤펠에서 나와 갈 곳을 잃었다. 남편에게 “콩시에르 주리로 들어갈까?”라고 말해보았다. “거기가 어딘데?” 남편이 묻는다. “응,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형당하기 전에 있었던 감옥이야.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뮤지엄 패스로 공짜로 들어갈 수도 있고, 인기도 별로 없어서 한산하대. 생트 샤펠 바로 옆 건물이라고 했는데...” 어디에 있나 둘러보니 생트 샤펠만큼이나 줄을 서 있는 인파가 보이는 건물이 있다. ‘저기는 아니겠지.’ 지도를 확인해 보니 그곳이 맞다. 감옥에 들어가려고 저 비를 다 맞으면서 줄을 서 있어야 하나? 이건 아니다 싶어서 바로 앞에 보이는 카페로 뛰었다.


카페에서 비가 그칠 때까지 조금 기다리자. 비를 피해 예상에도 없던 코스를 추가했다. 파리에서 첫날이니 파리에서의 첫 카페이다. 이곳도 비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로 자리가 만석이다. 어찌어찌 자리를 잡아 앉았다. 길건너편에 바로 생트 샤펠이 보인다. 나중에 이 카페는 다시 가서도 알아볼 수 있겠다. 아이들을 데리고 앉으니 웨이터는 테이블에 여러 동물과 인형 도안이 그려진 종이 뭉치를 잔뜩 갖다주고, 색연필도 주었다. 나를 위해서는 카페 누아제뜨와 크루아상, 남편을 위해서는 에스프레소 아이들은 버터 토스트와 딸기잼 그리고 물을 시켜주었다. 비가 그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고 했는데 노트르담 성당까지도 못 걸어갈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카페에 앉아 비오는 바깥을 바라보니 기분이 좋았다. 차라리 비가 조금 더 오래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커피를 마시며 생트 샤펠에서 느꼈던 감동을 정리할 수 있었다. 좋은 공간에서 느꼈던 감동은 꽤 오랫동안 생생했다.




생트 샤펠에서 ‘샤펠Chapelle' 이라는 말은 4세기 성인인 성 마르탱(Sancti Martini)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마르탱은 걸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예수에게 입고 있던 군복 외투의 절반을 잘라서 주었는데, 남은 외투 반쪽이 보관되어 아주 중요한 성 유물이 되었다. 이 기억의 외투를 간수하는 사제를 'capellanu'라고 부르는 데에서 '샤플렝chapelain(일반적으로 사제를 뜻하지만 특히 군 사제를 가르킨다)'이라는 말이 나왔고, 성 유물을 보관하는 소성당을 뜻하는 샤펠chapelle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참고서적 : 주경철, <도시여행자를 위한 파리x역사>, pp.90-97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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