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가본 곳인데 추천해도 되나요?

몽마르트르 박물관 Musee de Montmartre

by 김선경

파리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프랑스 미술에 관한 여러 가지 책을 빌려서 첫째 앞에 내밀었다. “뿅뿅아, 오늘은 이 책을 빌려왔어. 여기 앉아봐.” 아이는 ‘또... 야?’하는 눈빛이었지만 어차피 싫다고 해도 읽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체념하고 내 옆에 앉았다. 이렇게 앉아주는 것도 사실 고마운 일이다. 내가 생각해도 아이들에게 재미있을 만한 내용이 없다. 그런데 나 같이 욕심 있는 엄마들이 많은 것인지 프랑스 미술에 대해서는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여러 책이 있다. 많아도 너무 많아서 무엇을 먼저 읽어야 할지 정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한 화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도 있고, ‘인상주의’처럼 사조별로 요약한 책, 특정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을 종합적으로 묶어 해설한 책도 있다. 그중에서 아이가 흥미를 보인 책 중에 하나가 <화가의 모델>이라는 책이었다. 화가와 그 화가가 그린 모델에 대해 설명한 책이다. 혹시 프랑스 미술 외의 다른 나라 작품이 많으면 빌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다행히 거의 프랑스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을 다루고 있었다.

왼쪽 : 폴 고갱《아를의 밤의 카페》/ 오른쪽: 빈센트 반 고흐,《아를의 여인: 책을 든 지누 부인》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의 뮤즈를 발견하다

그 책엔 고흐와 고갱이 그린 아를 술집 사장님 그림이 있었는데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다르게 그려져 있었다. “이것 봐 봐. 같은 사람을 이렇게 다르게 그릴 수 있대. 고흐와 고갱 둘 다 뛰어난 화가들이잖아.” 이렇게 주의를 끌어주니, 뿅뿅이는 신기해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그러다 이번엔 내가 놀랄만한 부분을 발견했다. 드가의 <욕조>,1886와 르누아르의 <부지발의 무도회>,1883에 그려진 두 인물이 같은 인물이라는 것. 이 모델의 이름은 수잔 발라동이라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르누아르의 그림과 드가의 그림을 무수히 봤었지만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당연히 모델을 앞에 두고 그림을 그렸으리라고는 상상은 했지만, 모델의 이름까지 알려진 것은 특이한 일이다. 심지어 이 여인은 나중에 자신이 화가가 되었다고 적혀있었다. 그 책엔 자화상도 있었다. 두 화가의 그림에서와는 달리 강인해 보이는 여인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왼쪽: 르누아르가 그린 발라동 / 오른쪽: 수잔 발라동의 자화상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에 자주 등장했다면 이 사람은 모델 정도가 아니라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의 역할을 한 사람일 것이다. 뮤즈는 그리스 신화에서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여신을 부르는 말이었지만, 요즘은 샤넬이나 디올 같은 고급 브랜드에서 브랜드의 이미지, 철학, 미적 감성과 어울리는 사람을 ‘뮤즈’라고 칭한다. 수잔 발라동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었길래 무수한 화가들이 그녀를 그리고 싶어 했을까? 실제 얼굴이 궁금했다. 인상주의자들이 활동했던 시기라면 사진기가 발명되었을 때이니, 실제 얼굴을 사진으로 볼 수 있을까 해서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정말 사진이 있었고, 예상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 나왔다. 사진은 화가들이 그린 그림 속 모습과는 달랐다.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부드럽고 풍만하고 살결이 뽀얀 부끄러움이 많은 여인으로 그려졌다면 사진 속에서는 이목구비가 진한, 강단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려지던 사람에서 그리는 사람으로 :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

수잔 발라동은 열여섯 살밖에 안 되는 어린 나이에 화가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제일 처음 그녀를 작품 속에서 모델로 세운 사람은 퓌비 드 샤반 Pierre Puvis de Chavannes이다. 당시 화가는 50대 후반이었고 어린 소녀는 그의 집으로 이사한다. 모델인데 같이 살 필요까지 있나 싶지만 당시 화가의 모델이라고 하면 그의 정부나 창녀처럼 여겨지는 시대였단다. 아버지 없이 사생아로 태어난 그녀는 당시 파리에서는 소외된 외곽지역이었던 몽마르트르 뒷골목에서 살았는데 학교를 다니지 않고 서커스단에 들어가 활동했다. 그러다 곡예 중 추락하여 크게 다친 뒤 일을 할 수 없었는데 이때 화가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던 친구를 따라가 화가의 모델이 된다.


샤반의 추천으로 르누아르의 작품에까지 등장하게 된 수잔 발라동은 모델로 서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자신도 연필을 들고 그림을 그렸다. 어렸을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녀가 르누아르에게 자기가 그린 그림을 내밀었을 때, 르누아르는 그녀를 화실에서 쫓아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발라동은 그 무렵 임신을 했고, 아이를 낳아 르누아르에게 데려갔지만 그는 그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며 매몰차게 거절했다. (그 후로도 아이의 생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아이가 생겨 잠시 모델 일을 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틈틈이 그림을 계속 그렸다.


당시 몽마르트르 언덕 주변에 살았던 그녀는 자신의 집 건물 옥탑방에 살던 툴루즈 로트렉과 친구가 된다. 로트렉은 수잔의 그림을 높이 평가했다. 이름을 수잔 발라동이라고 바꾸어 준 사람도 로트렉이었다. 수잔 발라동의 원래 이름은 마리 클레망틴 Marie-Clementine 발라동이었다. 이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수잔은 자신의 첫 자화상에 새겨 넣었던 서명도 수잔 발라동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적었다. 로트렉은 자신의 친구인 발라동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신의 작업실에 놀러 온 예술가들에게 이 작품이 어떤 작가의 작품인지 맞춰보라는 문제를 내며 애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미 유명한 화가였던 에드가 드가 Edgar Degas에게 발라동을 소개해준 사람도 로트렉이다. 드가는 발라동의 작품을 보고 단번에 “너도 우리와 같은 길을 가겠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한마디가 발라동의 인생의 문장이 되어 화가 발라동의 앞길을 비추었다.


발라동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 어린 아들은 자신의 노모에게 맡기고 그림을 그리며 몽마르트르에서 화려한 삶을 살아간다.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로트렉이었던 것 같은데 그녀를 그녀 자신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로트렉이 그린 발라동의 모습을 보면 그녀의 자화상이나 그녀의 사진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르누아르나 퓌비의 그림에서 과장되거나 보정된 어여쁜 소녀와는 다르다. 그러나 로트렉은 발라동에게 애인이 되어줄 수 없다고 관계를 잘라내고, 결국 발라동은 자살소동까지 벌인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나고 그녀는 유명한 작곡가인 에릭 사티 Erik Satie와 사귀게 된다. 발라동이 매력적인 여인이긴 했나 보다. 왜 발라동을 주제로 한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의아할 정도다.

왼쪽 : 툴루즈 로트렉이 그린 수잔 발라동 / 오른쪽: 수잔 발라동의 사진

수잔이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시기는 파리 문화의 전성기였던 벨 에포크 Belle epoque였다. 정치적 격동기가 끝난 1890년대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평화로운 분위기였던 파리는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재능을 마음껏 피워내는 시기를 맞이했다. 발라동은 당시의 유명한 고갱과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기법을 독학하여 자신의 그림 세계를 만들어갔다. 1891년 살롱전에 출품을 시작으로 1894년 여성 화가 최초로 국립예술학회에 작품을 전시하며 공식적으로 그림이 인정받게 된다. 당시 발라동은 “교육은 받지 않았으나, 비범한 재능을 타고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겨우 자신의 안정된 화가의 길이 펼쳐질 무렵, 그녀의 아들이 심각한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으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인생은 산 넘어 산이다. 그녀는 아들을 구하기로 마음먹고 아들에게 그림을 가르친다. 아들의 이름은 모리스 위트릴로 Maurice Utrillo. 발라동과는 다른 성을 쓰는 이유는 스페인의 화가가 아들의 후견인이 되기로 했기 때문에 그의 성을 따랐던 것이다. 놀랍게도 그림에 재능을 보인 아들은 후에 프랑스 정부에서 인정하는 훈장까지 받는 화가가 된다.


수잔 발라동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파란만장이라는 말은 이런 사람을 위해 있구나 싶다. 그녀의 인생에 관한 책을 찾아 읽었다. 독서 후에도 한동안 그 시대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큰 걸림돌이 와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삶을 일으켜 세우는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게 궁금했다. 그녀의 그림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파리여행에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시간을 초월해 작가를 만나는 경험

나는 좋아하는 그림을 볼 때, 작품 앞에 이 그림을 그렸던 작가가 붓을 들고 서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화가가 오래 서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지금 내가 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림 앞에서 시간을 초월해 작가를 만나는 기분이 든다.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있다. 그런 작품이 많지 않은데 수잔 발라동의 작품이 그랬다. 그런데 막상 찾아보니 그녀의 자화상이나 그림은 파리에 실제로 걸려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전시 중이 아니어서 수장고에 들어가 있거나 미국에 많았다. 수잔 발라동의 작품을 보는 것은 포기하고 드가나 르누아르가 그린 수잔 발라동의 얼굴이라도 보고 오자고 생각했다. 그녀를 그린 작품들을 찾아 오르세 미술관으로 가보자. 마치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심장이 두근두근 뛸 것이다. 나만이 알고 있는 사람을 심지어 몰래 만나는 것 같은 작품 관람이 될 것이다.


모네의 <수련>을 보러 오랑주리 미술관에 갔다가, 간 김에 아래층에 있는 인상주의 작품들을 감상했다.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수잔 발라동의 흔적을 만나게 되었다. 거기에 모리스 위트릴로의 작품들이 있었던 것이다. 수잔 발라동의 아들 위트릴로의 작품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온통 하얀색으로만 채워진 몽마르트르의 골목을 그렸던 ‘백색시대’(1908-1914) 작품이다. 너무 반가워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작품을 보는 순간 수잔 발라동의 인생이 떠올랐다. 심각한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있던 아들을 이렇게까지 키워낸 엄마. 그리고 아들의 열매 같은 작품들. 수잔 발라동의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쳤을 그림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성였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만난 위트릴로의 작품들

나중에 한국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인데, 몽마르트르 언덕 근처에 수잔 발라동과 아들 위트릴로가 살았던 집이 <몽마르트르 박물관 Musee de Montmartre>으로 개방되어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수잔 발라동의 작업실과 그녀가 쓰던 팔레트, 그리고 침실까지 볼 수 있고, 당시의 작품들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전시실도 있단다. 아, 이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거기에 가봤을 것이다. 조금 더 공부하고 알아보고 갈 것을. 그 집은 예전에(1875-1877) 르누아르가 작업실로도 썼었던 곳이라 르누아르 정원 겸 카페도 겸하고 있다. 나중에 파리에 가게 되면 그곳에는 꼭 들러보고 싶다. 그들이 살았던 곳이라니. 혹시나 이 글을 읽고 파리에 가시는 분들은 꼭 가보시기를!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 거기를 가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파리에 가야 한다.

몽마르트 박물관 내부 (사진 출처: Musee de Montmartre 홈페이지)




http://museedemontmartre.fr

Musee de Montmartre

12 Rue Corot 75108 Paris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

곽선희, <화가의 모델>, 을파소, 2011

문희영, <수잔 발라동, 그림 속 모델에서 그림 밖 화가로>, 미술문화,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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