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둘째를 데리고 가는 파리여행에서 걱정한 것은 먹을 것이었다. 둘째는 가리는 음식이 없지만 그래도 후불호는 있다. 네 살 어린아이인데도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초콜릿은 입에도 대지 못한다. 그리고 빵보다는 밥을 좋아한다. 프랑스는 빵이 유명하고, 밥은 한식당이나 일식당이나 쌀국숫집등 아시아음식을 파는 곳에 가야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부터 전기밥솥을 챙겨 오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일단 잘 먹어야 짜증도 덜 내고 아프지도 않고 신나게 하루를 보낸다. 엄마들이 아이들 식사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아이를 잘 먹여서 건강하고 튼튼하게 키우는 것은 그다음 문제다.
밥순이인 둘째 콩콩이를 위해 여행 중 아침, 저녁은 숙소에서 밥으로 식사를 하자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점점 아침에만 밥을 먹게 되었다. 막상 파리에 와보니 언제 여길 다시 와 볼까라는 생각에 먹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하루 일정을 보내고 숙소로 들어가서 다시 밥을 차릴 기운도 없었다. 밥을 차리려면 장을 봐야 하고 음식을 해야 하고 ‘먹여야’ 하고 설거지까지 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힘이 빠졌다.
우리는 파리에서의 7일 동안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기 위해 엄선하여 식당을 고르고 예약했다. 그중에 가장 고급식당을 가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아이들에게 입기 싫다는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느라 고생을 했다. 편안한 티셔츠에 고무줄 바지가 아니라 카라가 있는 셔츠에 벨트를 하는 리넨 바지를 입히고, 신발도 매일 크록스만 신고 다니다가 버클이 있는 샌들을 신으라고 하니 아이들은 불편하다고 난리였다. 이 식당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남편은 파리의 식당에서는 옷차림도 예의라면서 이 식당을 위해 3주 내내 입을 것 같지 않은 옷을 캐리어에 한벌씩 넣어가게 했다. 나도 정장 바지에 블라우스를 입고 굽이 있는 샌들을 신었다. 이 코디와 맞추기 위해 작고 가벼운 가죽가방도 구입해 왔고, 그걸 맸다.
예약한 시간에 맞춰 호텔 1층의 식당으로 들어간 우리는 자리를 안내받았다. 아직 점심시간이 되기 전이라 그런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긴장할 필요까지는 없었던 식당 같았다. 식당은 고급스러웠지만 우리를 반겨준 매니저 같은 분은 정장이 아닌 편한 카라티에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여태 우리가 가봤던 식당과 다른 점을 찾으라면 의자였다. 주로 우리가 가본 식당의 의자들이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었다면 이곳의 의자는 벨벳천으로 씌워진 소파였다. 매니저는 자신감 있는 몸짓으로 우리를 짙은 녹색의 소파가 있는 안쪽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무엇을 시켜야 할지, 일단 가격대가 있는 식당이라고 하니 긴장이 되었다. 메뉴판을 보기도 전에 메뉴판이 안 읽혀질 것 같았다. 파리에 왔으니 이런 곳에서도 먹어보자고 한 사람이 남편이고 메뉴도 보고 식당을 골랐을 터이니 알아서 시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남편은 그렇게 떠넘기는 태도를 싫어하기 때문에 나도 같이 메뉴판을 읽는 척했다. 나는 할머니나 교수님과 같은 기분이 되었다. 나이가 어린 학생이 한번 운을 띄우고 메뉴에 대해 읊어주어야 뇌 속에 시동이 걸릴 것 같았다. 나에게서 학생이 된 남편은 “여기에 이런 메뉴가 있네.” 라면서 삼겹살을 구워 소스를 뿌린 요리가 있다고 이야기해 주고 여기에서 달팽이 요리도 먹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메뉴판을 읽는 척을 하며 눈빛만 음식 이름 위로 던지고 있던 나는 그러면 그것을 시키자고 말했다. 아이들용 메뉴도 따로 있었는데, 남편은 무난하게 같은 것을 두 개 시키자고 했다. 나는 아이들 메뉴를 두 개나 시킬 필요가 있나, 그것도 같은 것으로 시킨다니... 평소 같았으면 그러지 말자고 했겠지만 여기는 나에게 일단 부담스러운 곳이기에 남편에게 맡기기로 했다.
메뉴를 주문하기 위해 두리번두리번 웨이터를 찾았다. 아까 문 앞에서 우리를 맞아준 그 남자분이 오시려나 하고 있는데, 다른 쪽 방향에서 동양인 웨이트리스가 다가왔다. 익숙한 무드가 형성되었다. 코드 인식이 된 것처럼, ‘혹시...’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쪽에서 먼저, “혹시 한국에서 오셨어요?”라고 묻는다. 나는 할머니 교수님에서 갑자기 한국인 학생이 되었다. 해맑게 웃으며 목소리가 커졌다. “네~! 어떻게 아셨어요? 어머, 한국분이세요?” “네, 여기 옆에 한국어로 된 아이 책이 있어서 알았어요. 여행 오신 건가요?” 둘째의 외출 필수품 <캐치 티니핑 스티커 북>이 식탁에 놓여있었다.
나는 (우리 가족 여행 기준) 최고급 식당에 들어오기 전부터 기운이 빠지고 뭘 먹어도 감동은 받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기대를 한껏 낮추고 있었는데, (나는 왜 이러는 걸까?) 이 식당에서 한국어로 마음껏 물어보며 주문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곧 들떴다. 여기는 파리인가 한국인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가 생각하며 순식간에 즐겁고 편안해졌다. 뭐를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심지어 맛이 없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신난 나와는 달리 남편은 그때까지도 신중하게 메뉴판을 보고 있었다. 나 혼자였으면 분명 한국인 웨이트리스에게 ‘여기에서 뭐가 맛있어요? 오늘 특별히 맛있는 게 뭐예요? 어떻게 시키면 좋을까요?’ 이렇게 물어봤겠지만 남편은 한국인이든 아니든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조용히 메뉴를 보고 주문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니 여기가 한국 시장 골목의 식당도 아니고, 내가 맛있는 것을 추천해 달라고 했어도 아마 이 식당에서는 모든 게 맛있다는 답이 올 것 같았다.
드디어 식사가 나왔는데 웨이트리스가 한국말을 하는 것이 신기했던지 둘째는 웨이트리스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말하는 것도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어린이 메뉴는 쇠고기를 다져서 만든 스테이크였는데 고기가 담겨있는 접시를 콩콩이 앞에 내려놓자, 한국인 직원분을 보며 콩콩이가 작게 말했다.
“밥 주세요.”
“응? 뭐라고?”
“밥 주세요.” 거의 울 것 같은 작은 목소리가 두 번 울렸다.
콩콩이가 그런 말을 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모두들 서로의 눈을 보며 “밥? 지금 밥이라고 한 건가?” 하며 한참을 웃었다. 콩콩이가 여행 중 우리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 말을 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한국인 웨이트리스리는 웃으면서, “맞아, 고기엔 밥이지. 그런데 여기 식당엔 밥이 없어. 미안해.”라고 말했다. 콩콩이는 ‘어떻게 식당에 밥이 없을 수 있지?’라는듯 전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아, 콩콩이가 밥이 먹고 싶었구나. 엄마가 집에 가서 밥 해줄게. 여기에서는 감자튀김을 먹자.” 아이를 달래며 식사를 마쳤다.
이 순간이 파리여행에서 둘째가 존재감을 드러낸 몇 안 되는 드문 순간이었다. 둘째 콩콩이는 인사성이 밝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사를 잘한다. 길을 걷다가 마주친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반응이 없으면 ‘왜 저 사람은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지?’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옆에서 누가 재채기라도 하면 꼭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심성이 고운 아이다. 자기 몸도 잘 못 가누면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내가 도와줄게.”이다. 이런 남을 배려하는 둘째의 또 다른 특징은 동전의 양면 같지만 오지랖이 넓다는 것이다. 자기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전혀 모르는 남이어도 자기의 주변이나 관심의 사정권 안에 그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려 하거나 말을 건다. 이런 아이가 아무 말도 안 들리는 나라에 왔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전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이의 입장이 생생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콸콸 물병에서 쏟아져 나오듯 흘러넘쳤다. 아이는 ‘한국말을 하는 웨이트리스’와 앞에 놓인 ‘스테이크’의 조합이 생기자, 힘겹게 입을 열어 밥을 요청했다. 그 순간은 약간 과장을 섞어 말하면 새싹이 흙을 밀어 올리는, 또는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는 순간 같은 것이었다. 밥은 나오지 않았기에 콩콩이는 이 식당에서도 유튜브 영상을 보며 허기를 채우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 모습이, 희망의 빛을 보았다가 꺼지는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
생각해 보면 콩콩이는 파리가 어느 나라의 도시인지, 디즈니랜드 같은 큰 놀이공원인지 뭔지도 모르고 엄마, 아빠를 따라와 갖은 고생을 하고 있었다. 식사 때마다 매번 높이가 맞지 않는 의자에 앉아야 했다. 자신의 식기가 아닌 매번 다른 큰 포크와 숟가락을 들고 앉아(왜 매번 아침에 나설 때마다 아이 식기를 챙기는 것을 잊는 것인가?), 입에도 맞지 않는 빵과 파스타, 스테이크나 달팽이 요리 같은 것을 먹어야 했다. 게다가 음식을 갖다 주는 사람 모두 자신이 못 알아듣는 말을 쓰고, 자기에게는 엄마 아빠 언니 이외의 사람들은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이 아이가 여행 내내 세상을 어떻게 느끼고 있었을까에 대해서 나는 그 당시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파리여행을 시작한 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때쯤엔 남이 해주는 한국음식을 먹어줘야 할 것 같았다. 파리여행이 끝나면 2주 동안 독일에 머물 텐데 우리가 가는 독일도시에는 맛있는 한식당에 없었기 때문이다. 숙소 근처의 평이 좋은 한식당을 골라 남편이 한국에서부터 예약해 놓았다. 파리식 PARISIK이라는 작은 식당이었다.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 계속 남편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는데 같은 번호였다. ‘이 번호는 누구지? 우리는 파리에 아는 사람이 없는데.’라고 생각하며 부재중 전화로 확인만하다가 전화를 우연히 받았는데 PARISIK 한식당의 예약확인 연락이었다.
우리 가족이 예약시간에 맞춰 오후 7시쯤 식당에 들어섰다. 들어갈 때는 아무도 없었는데, 곧 모든 자리가 꽉 찼다. 여기가 현지인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라 예약확인이 중요했나 보다. 우리는 미리 예약한다고 한 달 전에 예약을 했는데, 이 식당 입장에서는 우리가 정말 오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것 같다. 4인용 테이블은 딱 하나였으며 나머지 식탁은 모두 2인용이거나 바테이블이었는데 간이의자를 놓고 3인 4인이 둘러앉았다. 우리 가족의 자리가 가장 좋은 자리였다. 한식당이니 한국인 직원이 우리를 맞이했고, 메뉴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둘째는 이번에도 한국말이 들리니 조금 놀라더니, 주의 깊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실패의 경험 때문이었는지 ‘밥 주세요.’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콩콩아, 밥 시켜줄게. 여기는 밥이 있대.”라고 말해주었다. 믿지 않는 눈치였다. 아이답게 포크를 떨어트리고 숟가락을 떨어트릴 때마다 한국인 웨이터는 다가와서 식기를 주워주며, “괜찮아. 괜찮아.”라고 토닥이듯 말해주었다. 그 말에 둘째는 깊은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갑자기 느껴졌다. 고개를 드니 그 식당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우리 식탁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순간 민망하여 얼른 고개를 숙였다. 우리가 제일 먼저 주문을 했기 때문에 제일 먼저 음식이 나온 것이 시선을 끌었을 수 있을 테지만 우리가 그 식당의 유일한 한국인 손님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너무 대 놓고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므로) 힐끔거리며 우리 메뉴를 살펴보는 프랑스 사람들이 우리 테이블 옆 거울로 비췄다. 여러 음식이 테이블에 그림처럼 올려지고 있었다. 버섯떡볶이, 떡갈비, 비빔밥, 새우파스타, 갈비찜이 나왔다. 모두들 숨을 멈춘 듯 조용한 가운데 네 살 아이의 탄성이 들렸다. “우아아~ 밥이다!”
둘째는 게눈 감추듯 밥을 떠먹었다. 저렇게 숟가락을 잘 쓰는 아이였나 새삼 놀라웠다. 혼자서 밥 두 공기를 먹었다. 밥순이 콩콩이는 아주 만족했다는 듯 식당을 나오며 말했다. “엄마, 진짜 맛있었지? 밥, 진짜 맛있었다.” 숙소에서 아침에 항상 해주는 밥인데 역시 남이 해주는 밥은 달랐나 보다. 게다가 말이 통하는 편안한 분위기에서의 식사라니. 파리에 와서 한식당에 감동한 둘째.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그 식당을 다녀온 이후로 콩콩이는 식탁에서 식기를 떨어트릴 때마다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