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애들이 기억도 못할 텐데 거길 왜 가?

P인 엄마가 J가 되어야 하는 유럽여행준비

by 김선경

여행을 준비하면서 일상에 무리가 왔다. 4살, 8살 아이들 둘을 챙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만 해도 벅찼다. 여행을 위해 기존에 배우고 있던 영어와 일본어에 독일어와 프랑스어라는 2가지 언어를 더 얹어 공부했다. 거기다 아이들에게 미리 읽히면 좋을 책들을 빌려다 주고, 나도 프랑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 도서관을 일주일에 3-4번씩 들락거렸다. 욕심이 많았다. 흔한 기회가 아니니 돈 아깝지 않게,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게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싶었다. 그나마 여행지의 교통편과 숙소 그리고 식당예약을 남편이 맡아주었기에 망정이지, 혼자 준비했다면 정말 머리가 터졌을지도 모른다. 비행기티켓을 끊은 날부터 아이들과 여행 갈 때 챙겨야 할 준비물과 있으면 좋을 것들을 하루 종일 생각하며 살았다. 밤에 자려고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빠트린 무언가가 생각이 나면 이불을 박차고 바로 휴대폰을 들고 검색했다.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안 날까 봐 불안했기 때문이다. 내가 입을 옷과 아이들에게 입힐 옷, 신발, 가방, 식량, 예약서류, 비상약 등등... 떠나기 2-3주 전쯤에는 계속 여행지에서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리느라 가만히 있어도 진이 빠졌다.


나는 누가 나에게 “왜 이렇게 힘들어 보여?”라고 물어보기를 기다렸다. 그러면 “응, 사실 내가 이번 여름에 아이들을 데리고 3주 유럽여행을 가거든. 그거 준비하느라고 엄청 신경 쓰고 있어. 너무 힘들어.”라고 대답할 텐데. 그런데 나는 기본적으로 밝고 잘 웃는 사람이라 내가 기운이 빠져 있거나 조금 덜 웃어도 남들보다는 기운차 보인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위로받고 싶었다. 그런데 내 속으로 그런 대화를 하는 상황을 그려봐도 “뭐야, 지금 자랑하는 거야? 가족 유럽 여행? 너무 부럽다.”라는 상대방의 대답이 곧바로 떠올랐다. 제대로 위로받고 싶은데, 그건 나의 욕심인 건가.


그렇다고 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끙끙거리면 병이 날 것 같아서 나는 누가 물어보기도 전에 이번 여름 방학에 아이들과 3주 동안 유럽으로 여행을 간다고 말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혹시나 내가 말하다가 스스로 정리가 될 수도 있고, 나랑 비슷한 경험을 한 이를 만날 수도 있으니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의외로 힘든 나의 처지를 위로해 주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밑져야 본전이다.’ 생각했다. 사실 비행기티켓을 끊어두고 나서부터 우연히 누군가와 대화하는 상황이 생기면 나는 여행 준비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었다. 정말 다른 할 말이 없었다. 관심도 없었다. 오직 여행에만 포커스가 맞춰진 몇 달이었다.


유럽으로 가족들과 여행을 간다고 말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크게 3가지였다.

첫째, 그저 부러워하는 유형. 약간의 질투가 섞인 반응

“유럽 가족 여행이라고? 좋겠다. 부러워”

둘째, 여행 중 생길 나의 노고를 걱정해 주고, 다녀온 뒤의 뿌듯함을 그려주는 유형.

“네가 고생이겠지만, 가족 모두에게 큰 추억이 될 거야.”

셋째, 너무 힘든 일이 될 거라며 걱정해 주고 다른 방식을 제안을 해주는 유형.

“애들이 기억도 못할 텐데, 왜 거기까지 가서 고생이야. 그냥 가까운 데로 가. 애들 어릴 땐 한국 여행해.”


나는 그나마 나에게 위로의 마음을 주는 두 번째 반응이 고마웠다. 나도 저런 내용을 마음에 새겨야 그나마 울지 않고 여행을 준비할 수 있었으니까. 세 번째 반응을 들었을 땐, ‘이미 비행기표도 끊어놓았기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당신 말씀이 옳습니다.’라는 식의 요지로 대답을 했다. 아이들이 기억 못 할 것도 당연하고, 그렇게 큰돈을 들여 일부러 고생할 일이 못된다는 분들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약간 다른 생각을 했다.


목적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니 아이들이 기억을 못 해도 괜찮다고. 나와 남편이 유럽에 여행을 가고 싶은데 이제 아이들이 생겼으니 아이들을 같이 데리고 가는 것뿐이라고. 물론 많은 경비가 부담이 되었지만 이런 기회나 ‘으쌰으쌰 가보자!’하는 의욕은 평생 흔하게 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컸다.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부모가 가고 싶은 곳을 모두 가 볼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위한 코스만을 짜서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었다. 절충형이라고 해야 하나? 가족이니까. ‘가족 구성원 넷의 기호와 의견이 반영된 여행을 계획한다.’ 이 정도의 생각이었다.


사실 세 번째 반응을 듣고서야 유럽여행을 같이 가는 내 아이들은 뭐가 좋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역시 나는 조금 이기적인 엄마인가 보다. (일단 나는 내가 좋은 것을 먼저 생각한다.) 고심 끝에 나온 장점은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좋은 기분을 함께 느낄 수 있다!’였다. (고작 이 정도 인가?) 엄마 아빠가 좋아서 가는 곳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한국에서와는 다른 부모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볼 수 있고,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로워지는 엄마 아빠의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 아마 아이들도 좋을걸? 하하하


나는 ‘아이들이 기억하는 것은 유럽의 어떤 장소나 대단한 작품이 아니라, 엄마아빠의 기분과 표정이다.’라는 멋진 문장을 만들어냈다. 표어와 같은 그 문장을 잊지 않으려고 일기장 제일 앞 장에 적어서 갔다. 그래서 그런가 아이들이 멋진 건물이나 훌륭한 예술작품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도 자세히 보라고 다그치거나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 줄 아냐고 소리치지 않았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혼을 낸 적이 없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남편은 음...) 지금 생각해 보아도 역시 그런 태도로 다닌 것이 잘한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 세 번째 반응을 보여준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그분들께 제일 큰 위로를 받았다. 처음엔 두 번째 위로가 좋았다. 세 번째 반응에는 약간 마음속에 반항심이 먼저 일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저렇게까지 말해주는 사람이 진짜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애들은 나중에 하나도 기억 못 해. " 이런 말은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멘트였다. 그래서 오히려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래, 나는 지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힘들지. 저분들은 알고 있지. 이런 준비와 여행이 얼마나 (개) 고생인지. ‘관둬라 그거 하지 마라. 너무 힘들다.’라고 말해주는 저 사람들이야 말로 나의 진정한 피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고생의 느낌을 알고 말리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속 마음을 조금 각색해 보기로 했다.


"아이들과 긴 여행 나서면서 엄마가 준비할 게 좀 많아, 대단하다. 그걸 하고 있다니. 챙겨도 챙겨도 끝이 없을 텐데. 네가 고생이 많다. 준비만 고생이야? 나가면 더 힘들지. 아이고, 한국에서도 애 둘 보기 힘든데. 너니까 할 수 있는 거다. 너네 애들과 남편은 좋겠어. 복 받은 거야."


그들의 말 덕분에,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찾아냈다. 역시 감사하다.


뒤돌아보니 차라리 여행지에서가 편했다. 한국에서 여행을 준비할 때가 더 힘들었다. 여행을 시작하니 더 이상 여행 중 일어날 일을 하루 종일 끝없이 시뮬레이션하며 준비할 것을 혹시 빠트리지 않았나 계속 자기 검열을 해야 할 일이 없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출국날 공항에 도착해서까지 내가 준비하지 못한 것 때문에 괴로워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사소한 것이었는데 그건 유모차 가방 걸이 고리를 챙겨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없으면 유모차에 짐을 걸어서 다니기가 얼마나 불편한지 엄마들은 알 것이다. ‘출국장 아이들 용품 코너에서 분명히 유모차 고리를 팔 거야. 깜빡하고 안 챙겨 온 부모가 나 말고도 많을 텐데.’하면서 미친 사람처럼 급하게 나는 그 물건만 찾아다녔다. 옆에서 첫째의 “엄마, 진정해.”라는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결국 유모차 고리는 공항에서 살 수 없었다.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 파리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까지 Chat GPT로 검색하고 나서야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래도 나에 대한 실망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여태 5개월 넘게 무슨 생각으로 살아온 것인가? 나를 다그쳤다. 평소에 쓰던 유모차가 아니라 경량 유모차를 여행용으로 새로 구입하면서 여행 오기 전까지 한 번도 새 유모차를 써보지 않아서 생긴 문제였다. 파리에 가서 심지어 며칠을 유모차를 끌고 다니다 알게 된 사실인데, 경량 유모차는 집에서 쓰던 유모차와는 달리 손잡이가 철봉처럼 일자로 된 것이 아니라 양쪽으로 C자 모양의 손잡이가 분리되어 있었다. 그 손잡이가 고리 역할을 하니 고리는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고리 없이도 이미 유모차에 이 가방 저가방을 걸어두고 자~알 다니고 있었다. 아, 괴로워했던 나의 시간이여.


MBTI로 성격의 유형을 테스트하는 것이 유행이다. 준비성의 유형에 따라 J냐 P냐로 나뉘는데, J형(Judging)은 계획을 미리 세우고 그대로 실행하려는 성향의 사람들이다. P형(Perceiving)은 반대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행동하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나는 (확실한 대문자)P형인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J형이 된 것 같다. 즉흥적인 행동은 혼자 있을 때나 혹은 남편과 둘이 있을 때 정도 가능하지,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이미 아이들 자체가 돌발상황이기 때문에 계획(A안)에 계획(A 안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의 A´안)에 계획(A´도 실패했을 경우의 A˝안)을 세워야 한다. 안 그래도 계획 세우는 것에 피로를 느끼는 나인데, 3주 동안의 유럽여행이라니 모든 일정에 차선책을 생각해 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준비의 피로는 비행기를 타는 순간에야 사라졌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고, 숨이 쉬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유럽여행의 준비는 이렇게 비행기 탑승과 함께 끝났다. 교실에서 선생님이 나누어주시는 시험지를 받게 되면서 시험준비가 끝나는 것과 비슷했다. 이젠 어쩔 수 없다. 무엇을 빠트렸어도 잘 임기응변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사소한 어떤 물건이 굉장히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크게 불편을 끼치지는 않더라는게 다녀오고 나니 드는 생각이다. 자책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과거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다시 여행준비를 하라면 나는 또 준비의 굴레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것 같긴 하다.


이런 고된 준비가 아깝지 않을 만큼 파리여행이 좋았는가 하면 그렇다. 그러니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굳이 거기까지 가야만 했었나라고 물으면 역시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건 모든 사람이 꼭 먼 곳으로, 해외로 여행을 가야 한다는 것과는 다른 말이다. 유럽에 가든 한국의 다른 도시를 돌아보든 거기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들, 분위기, 볼 것들, 걷는 풍경들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만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것을 보는 것이 좋다. 또 둘째에게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첫째는 다른 나라 언어를 듣고, 다른 문화 속에서 한국과는 다른 미묘한 작은 차이들을 자연스럽게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은연중에 '세상은 넓다.'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구와 함께든 떠나자. 생각보다 훨씬 좋을 것이다.




이 글이 마지막 연재 글이다. 첫째에게 매주 수요일 연재하기 전 날 밤 잠자리에서 내가 쓴 글을 읽어준다. 마지막 문단을 읽었다.


나: "이런 고된 준비가 아깝지 않을 만큼 파리여행이 좋았는가 하면..."

딸: "그렇다."

나: "ㅋㅋㅋㅋ 맞아. 그렇다. 그러니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굳이 거기까지 가야만 했었나라고 물으면..."

딸: "그렇다."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나서 잠깐 멈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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