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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방아저씨 Feb 26. 2023

(사우디) 와하비즘부터 이크완까지 국가수립의 역사

-  사우디 근대 역사와 현재 (2/3)

지난번 사우디 밀수출에 이어서,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해드리려 합니다. 

현재의 중동정세 및 국가 간 역학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사우디가 어떤 이념과 배경으로 건국되었고, 이 때문에 향후 성장에 있어서 어떠한 국가적 한계를 가지는지를 예상해 보는 것도 흥미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년 말에 사우디 왕세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줄여서 MBS)이 한국을 방문하며,  사우디에서 추진 중인 "Vision 2030"에 대한 한국기업들의 협력을 요청했습니다. 

사우디 "Vision2030" Project

"Vision 2030"은 사우디의 MBS에 의해 2017년 발표된 정부주도 Project입니다.  사우디의 원유의존도를 낮추고, 경제 다변화 및 민간부문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고, 홍해연안의 네옴 NEOM 신도시를 포함해서, 170km의 "The Line"  및 해양부유도시인 "Oxagon" 등이 많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정신 나간 Project라는 평가도 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고갈이 예상되는 원유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국가의 생존이 걸린 문제일 정도로 사우디에게는 중요합니다.      

사우디 네옴시티 위치(좌), The line (중앙), 옥사곤 (우) Project

그러나 "Vision 2030"은 하기 관점에서 많은 문제가 예상됩니다.   

 1) 주변국가인 UAE 등의 성공 모델을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주변국들과 높은 갈등의 소지 

 2) 관광 및 투자유치를 위한 국가 개방에 있어서 이슬람 및 사우디 건국이념과 배치 


이를 이해하는 데 있어, 근대 사우디 국가의 건국과정을 알아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서, 오늘은 이에 대해 아래의 순서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아라비아 반도의 역사 

 2. 사우드 가문과 와하비즘  (사우디 제1~3 왕국) 

 3. 사우디아라비아 건국 

 4. 마무리하면서... 




1. 아라비아 반도의 역사 


아라비아 반도는 아랍족의 발상지입니다.  지난번에 설명드린 대로 아브라함의 첫째 아들인 이스마일이 쫓겨나면서 이쪽으로 왔고, 향후 이슬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 아랍족은 BC 5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아라비아 반도로 이주해 왔습니다. 

- AD5세기경, 비잔틴과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이 300년 이상 전쟁을 하면서 실크로드가 막히면서 홍해연안 무역로를 따라 여러 도시들이 생겨납니다. 이때 메카, 메디나도 생겨났고 아랍족은 무역로를 따라 부족단위로 생활하게 됩니다.  


6세기초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아라비아 반도 내 사우디아라비아

2. 사우드가문과 와하비즘 


오늘날 사우디 왕가의 시작은, 1744년 아라비아 반도에 세워진 디리야 토우국에서 시작됩니다.  


18세기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는 3대 가문이 있었습니다.  네즈드 지방의 사우드 가문, 서쪽 헤자즈 지방의 하심가문 그리고 북부 라시드 가문입니다. 이 3대 가문과 역학관계를 이해하셔야 1차 세계대전 이후 영토 분할을 아시는데 도움이 됩니다 18세기 이후의 역사는 이 3대 가문 간의 전투로 볼 수 있습니다.   (지도 이해를 돕기 위해, "역사패왕"님 유튜브 지도를 참조했습니다.) 


18세기초 아라비아 반도의 3대 가문

01:

18세기, 중동 및 북부 아프리카 영토를 장악하던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유럽의 기독교 세력에게 연전연패를 하면서 이슬람 세력에 위기감이 돌게 됩니다.  그러자 이슬람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전쟁 패배의 원인을 꾸란의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주장이 일게 되었는데, 오스만 제국이 타락과 부패로 인해 기독교 세력에게 지고 있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이 주장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종교학자 무하마드 이븐 압달 와하브 (Wahhab 1703~1792)에 의해 와하비즘 (Wahhabism) 또는 와하브 운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와하비즘은 비이슬람적 풍습들을 모두 제거함으로써 사회를 재편성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와하브 세력은 이슬람의 성지 메카와 메디나가 오스만제국에 의해 비이슬람화 되었다고 비난했고, 타락한 메카와 메디나를 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와하비즘은 초기에 힘이 없었지만, 디리아 토후국의 사우드 가문과 결혼동맹으로 손을 잡으면서 향후 오스만제국을 위험에 빠뜨릴 정도로 큰 세력이 됩니다.  이 사우드 가문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조상이며, 초기 리야드 근처 다리야 (Diriyah)에서 1744년 토후국을 건설했으나 이때는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하나를 통치하는 부족국가에 불과했습니다. 


사우디제1왕국 (1744~1818), 와하비즘을 확장시키고 싶은 와하비와, 부족들을 통일할 강력한 교리를 원하는 사우드가문이 의기투합하면서, 디리야 토후국은 종교를 앞세워 무력으로 영토를 확장했고, 메카와 메디나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1803) 

이는 오스만제국의 분노를 사게 되고, 오스만은 속주인 이집트군을 보내 디리야 왕국을 정벌했고, 디리야의 왕은 콘스탄티노플로 보내져 처형당하게 됩니다.  이를 사우디 제1왕국이라 합니다.   

사우디 제1왕국


사우디제2왕국 (1824~1891), 오스만제국의 탄압에서 살아남은 사우드왕족들은 1818년 왕국을 재건하고, 1924년 리야드를 점령해 새 수도로 삼습니다. 이를 사우디 제2왕국이라 하는데, 오스만제국과 이집트의 방해로 번성하지 못하고 북쪽의 라쉬드 가문과 싸움에서 져서  1891년 막을 내리고, 쿠웨이트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라쉬드 가문은 오스만제국과 협력을 하여 영국/프랑스등 외세를 몰아내려 했고, 사우드 가문도 쫓아내게 됩니다. 

사우디 제2왕국 


사우디제3왕국 (1902~), 1차 왕국의 건국자 무함마드 빈 사우드의 5대손인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는 망명국인 쿠웨이트에서 병력과 군수물자를 지원받아 왕국 재건을 시작합니다. 

당시 쿠웨이트가 라쉬드 가문과 적대관계라 병력지원을 해주지만, 이때 알둘아지즈가 확보한 병력은 40명에 불과했습니다. 


압둘아지즈는 1902년 1월 직접 소수의 부하를 이끌고 하룻밤 사이에 라쉬드 가문이 점령하던 리야드성을 점령하고 왕국을 수립하게 됩니다.   리야드 시내 사우디 역사박물관에서 당시 전투에 대한 영화와 40명 한 명 한 명에 대한 이름과 위패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1902년 당시 리야드 도시 및 성곽 (사우디 리야드 역사박물관) 

아라비아 반도의 역사 

1902년 리야드성 탈환하는 40명의 병사 (사우디 리야드 역사박물관) 


40명 병사들의 위패 (사우디 리야드 역사박물관)
1939년 사우디 건국행사 시 참가한 압둘아지즈 국왕

압둘아지즈는 리야드에 사우디제3왕국을 건국했고 (1902), 이후 아라비아 반도는 위에 설명드린 리야드의 사우드가문,  헤자즈 지역의 하심가문 및 북쪽의 라시드 및 하심가문 간의 30년 전쟁을 하게 됩니다. 

사우디 제3왕국 (1902~) 


3. 사우드아라비아의 건국(1932)


압둘아지즈가 리야드를 탈환한 이후 3개 가문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하게 됩니다. 

전쟁의 양상은, 영국의 편을 들은 사우드와 하심가문, 그리고 오스만제국의 편을 들은 라시드 가문 간의 싸움이 되고, 전쟁에서 승리를 해도 아라비아의 통일을 원치 않는 영국에 의해 휴전을 계속함으로써 이 전쟁은 30년간 지속됩니다. 


제1차 사우드 vs 라시드 전쟁 (1903~1907)에서 사우드가문이 승리하면서 끝났는데, 영국이 개입하면서 휴전으로 종결되게 됩니다.  영국의 입장에서는 아라비아 반도가 통일되는 것보다는 분열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1차 세계전쟁이 발발하고,  영국은 오스만 제국과 싸우기 위해 사우드 가문을 끌어들였고, 동맹을 맺게 됩니다.(라시드 가문은 오스만제국 동맹이라 설명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설명 안 드린 하심가문이 있는데,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핏줄을 가진 가문입니다. 

이들은 메카, 메디나를 통치했고 아라비아 반도 통일을 원했기 때문에,  사우드 가문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제1차 네지드(사우드) vs 헤자즈(하심) 전쟁이 (1918~1919)년 발발했고 사우드 가문이 승리하지만 또다시 영국의 휴전요청으로 헤자즈 합병이 무산됩니다.  


이후 사우드 가문은 리야드를 네지드술탄국으로 개병하고, 1921년 라쉬드를 함락시킵니다. 

이것이 제2차 사우드 vs 라시드 전쟁이고, 이때는 영국도 개입할 수 없을 정도로 사우드 가문의 힘이 커졌습니다.   1924년 제2차 네지드(사우드) vs 헤자즈전쟁(하심)에서 사우드 가문이 승리하게 되어 하심가문의 헤자즈는 멸망하고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 메디나가 사우드 가문의 손에 들어오게 됩니다.


사우드가문의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으니, 이는 이크완이라는 베두인들로 이루어진 용병들이었습니다.  압둘아지즈는 영토점령을 하면서 당시 사막내부에 있던 베두인들의 힘이 필요했고, 이들을 종교로 현혹시켜 이크완을 만들게 됩니다. 와하비즘은 이크완들에게는 충격적인 교리였고, 평범한 사막 유목민이 한순간에 열성적인 전사가 되어 압둘아지즈의 정복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사막에서만큼은 유목민 출신인 이크완에게 적수가 없었고, 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아라비아 반도 내부를 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이크완 전사들(좌), 압둘아지즈와 이크완(우)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이크완들은 세력이 점점 늘어났고, 와하비즘을 이슬람 세계로 전파하자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 아라비아 반도 밖은 하기 지도와 같이 영국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압둘아지즈는 영토확장 중단을 요청했고, 이크완은 그가 종교적 초심을 잃었다고 판단하면서 두 세력은 갈등을 겪게 됩니다.  

02:

마침내 이크완은 압둘아지즈를 무시하고 영국이 지배하는 북쪽 이라크와 요르단까지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영국은 부하 관리를 못하는 압둘아지즈의 사우드 가문을 맹비난하게 됩니다. 

그도 그럴게,  하심가문과도 "후세인 맥마흔 서신"으로 동맹을 맺고 있는 관계였으나,  사우드 가문이 하심가문을 아라비아에서 몰아냈고,  그의 용병인 이크완이 영국 영토인 이라크와 요르단을 공격했기 때문입니다.  


  ※ 영국은 하심가문에 대한 미안함으로 후세인의 두 아들에게 요르단과 이라크를 넘겨주게 됩니다.  이라크는 곧이어 공화정 혁명으로 왕정이 쫓겨나게 되었고,  요르단은 현재까지 하심가문이 이끄는 왕정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압둘아지즈는 영국과의 동맹을 위해 이크완을 토사구팽처럼 1930년에 제거하게 됩니다. 

라시드와 하심 가문을 멸망시키고,  문제가 되던 이크완까지 진압하면서 드디어 사우드 가문은 아라비아를 통일하게 되었고, 현재의 사우디 국경이 완성 되면서 1932년 사우디아라비아 건국이 선포되게 됩니다.


4. 마무리하면서... 


장황하게 사우디 역사를 와하비즘, 세 가문 간의 전쟁으로 설명드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우디의 건국이념이 와하비즘이라는 것입니다.  세속적이고 부패한 오스만제국과  성지를 관리하던 하심가문을 비방하면서 건국한 국가가 사우디입니다. 


사우디의 왕은 "두 성지의 수호자(The Custodian of Two Holy Mosques)" 라는 칭호가 붙습니다. 즉 부패한 하심가문을 몰아내고 메카와 메디나를 정화하고 수호한다는 것이 국가 건국의 이념입니다. 


그러나 사우디는 현재 

  - 왕실의 안위를 위해 이교도인 미군을 성지에 주둔시기고 있고, 

 - 형제 이슬람국인 팔레스타인이 고통받는 줄 알면서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 중입니다. 

 - "Vision2030"을 추진하면서 관광특구 조성 및 그 안에서 음주, 비키니까지 허용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우디는 주변 무슬림 국가로 부터 더 이상 큰 형님 국가로서의 권위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해마다 무슬림들의 메카 순례로 인해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사우디가 성지 수호자의 역할에서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아브라함 협정에서 UAE,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수교할 때,  사우디는 간접적으로 관계정상화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사우디 왕족 이야기"와  "Vision 2030"에 따른 주변 국가의 정세에 대해 준비를 해보겠습니다.   







사우드가문과 와하비즘  (사우디 제1~3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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