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사회의 '공기(公器)'이다

마케터가 바라본 경험공간 이야기 '일본 파나소닉 뮤즈엄'

by 물병자리

신오사카역에서 40분, 도심의 번쩍임이 잦아들 즈음 유리 파사드의 “Panasonic”과 낮고 단정한 벽돌관이 나란히 선다. 한쪽은 어제로 이어진 시간, 다른 한쪽은 오늘의 기업이다.

파나소닉 창업 100주년을 기념해 다음 100년도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오픈한 기업 박물관 Source from osaka-info.jp


첫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간 고 노스케 마츠시타 기념관에서 나를 맞이한 것은 예상했던 화려한 디스플레이가 아니었다. 어둔 배경 위에 소나무와 조약돌로 만든 작은 정원이 있었고, 분재와 비석이 놓인 낮은 산책로가 조용히 이어져 있었다. 번쩍이는 금속으로 산업의 성취를 과시하는 대신, 이곳은 정적 속에서 한 문장을 건네고 있었다. "회사는 사회의 공기(公器)다." 창업주 마츠시타 고노스케가 평생에 걸쳐 되뇌던 그 문장이, 전시의 시작부터 개인의 영웅담이 아닌 사회적 책무를 전면에 세우고 있었다.



7개의 챕터로 나뉜 전시는 두꺼운 설명판 대신 얇은 캡션과 가벼운 일러스트가 있었고, 당시의 영수증과 계약서 같은 생활의 종이들이 타임라인을 따라 펼쳐져 있어 그 시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었다.



젊은 마츠시타는 천재적인 발명으로 하루아침에 성공한 사람이 아니었다. 개선형 콘센트, 지금으로 치면 어댑터 플러그 같은 소소한 아이템으로 시작해서 품질로 천천히 신뢰를 쌓아갔고, 이어서 자전거용 램프로 시장을 조금씩 넓혀갔다. 돈이 모자라면 자신부터 허리띠를 졸랐고, 공장을 옮길 때는 직원들과 함께 직접 짐을 날랐다는 기록들이 담담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먼저 만든다. 그러고 나서 제품을 만든다." 이 문장이 지금도 기념관의 공기를 규정하고 있었고, 유물들을 보는 내내 '제품=성능'이라는 단선적 해석을 넘어서 '제품=사람의 태도'라는 정의가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별동의 창의적 제조 전시관으로 넘어가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거대한 벽면에 다양한 서브 브랜드 로고들이 부조로 새겨져 시야를 장악하고 있었고, 이 방의 주제는 더 이상 조용한 감상이 아니라 제조의 자존감이었다. 'Storage' 구역은 실제 수장고 통로를 그대로 모사해서 초기 라디오와 TV를 빽빽하게 세워두었는데, 박물관이 종종 '선별한 보석'만 스폿 조명으로 비추는 관습을 완전히 뒤집어서, 양(量)이 주는 물리적인 무게감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옆의 'Design' 코너는 바우하우스를 연상시키는 백색 케이스 속에 산업디자인의 실험들을 정갈하게 배치해서 기술과 형태의 대화를 들려주고 있었다.

기념관의 흑·목·석이 만들어낸 엄숙한 분위기와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이곳은 화이트 팔레트를 전면에 깔아서 아카이빙의 밝고 경쾌한 톤으로 바꾸어놓았다. 원형 동선을 따라 카테고리별 대표작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제품군마다 연출 밀도와 시선 거리를 달리해서 기술의 문장을 또렷하게 읽히도록 했다.


특히 옆의 장방형 타임라인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광고 영상들은 속도감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있었는데, 화면 속 시간과 하단에 진열된 실물 증거들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면서 "기술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왔는가"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서 마츠시타의 또 다른 철학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수도(水道) 철학—좋은 제품을 수도물처럼 싸고 넓게, 모두가 쓸 수 있게 하라." 수장고형 전개와 마스터피스의 평범한 높이, 그리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광고 아카이빙은 바로 이 철학을 공간의 언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기술의 성취를 기념비처럼 높은 곳에 올려 세우지 않고 생활의 눈높이로 낮춘 것, 그래서 이곳의 물건들은 단순한 '추억 아이템'이 아니라 '일상의 증거물'로 읽히고 있었다.


전시를 보며 걷다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이 있었다. 시마 과장, 그가 몸담고 있던 하쓰시바 전기는 파나소닉, 즉 옛 마츠시타 전기를 모델로 한 것이다. 만화 속 조직 드라마와 실제 기업의 헤리티지, 그리고 지금 내 앞에 놓인 실물 제품들이 한 좌표에서 포개지면서 묘한 현실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브랜드는 때로 픽션을 먹고 자라기도 한다는 걸, 그리고 그 픽션이 사실에 근거할 때 더 쉽게 그 브랜드를 이해하게 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기념관 후반부에 현대적인 인터페이스,예를 들어 창업주의 원문을 직접 스캔해서 넘겨 읽으면서 동시대 제품 변화와 연결하는 인터랙션 같은 장치가 보강된다면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가는 스위치가 더 매끈해질 것 같았다. 다만 이 차분하고 조용한 톤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여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퇴장로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로고 벽 앞에 멈춰 섰다. NATIONAL, Technics, Panasonic... 시대를 따라 바뀐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었지만, 그 뒤에 일관되게 흐르는 메시지는 하나였다. "경영의 본질은 사람이고 우리는 그 사람을 키우는 회사입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가전제품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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