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수
그는 크고 검고 거칠고 야성적인 남자였다. 큰 목소리에 굵고 지저분한 수염, 두툼한 손마디를 가지고 있었다. 그 손가락에 늘 담배를 끼고 꼭 화난 사람처럼 소리치며 말했지만, 곧잘 웃기도 했다. 웃음소리도 천둥 같았다.
오래전에 그는 암에 걸렸다. 채 예순이 되기 전이었다. 그는 죽는 그날까지 자신이 죽을 줄 몰랐다. 환자에게 상태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가족들 탓도 있었지만 그는 그 정도로 자신만만한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금방 나아. 그는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나중에 몰라보게 체중이 줄고 각혈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그는 절대 겁먹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말했다. 이까짓 거 금방 나아, 금방.
그는 어느 가난한 농가의 아들 넷 중 세 번째 아들이었다. 장남과 막내는 공부를 시키고 둘째와 셋째에게는 농사를 가르치기로 계획한 아버지 때문에 그는 국민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그는 열일곱 살에 일본으로 징용되었다. 사실 그건 그의 큰 형 앞으로 나온 징용명령이었다. 집안 어른들은 장손 대신 그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는 형의 이름으로 성큼성큼 바다를 건넜다.
그리고 2년 뒤에 그는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온다. 곧 먼 동네의 작은 소녀와 혼인해 작은 오두막에서 살림을 차리고 농사를 지었다. 그는 마흔쯤부터 마을 이장을 했다. 시원시원한 일처리에 배웠다는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고 일본어도 잘했던 그를 마을 사람들은 모두 믿고 따랐다. 다부진 체격과 괄괄한 성격은 부당한 일을 당한 이웃을 대신해 관공서에 가서 싸우는 일에도, 동네에서 벌어지는 다툼을 중재하고 질서를 잡는 일에도 쓸모가 있었다.
그의 가장 큰 아들은 이제 일흔을 훌쩍 넘겼다. 납골당 영정 사진에 남겨진 그의 마지막 모습보다 더 나이 든 아들이 되었다.
'참 대단한 양반이지. 아 얼마나 매력이 있었으면 일본여자가 다 찾아왔었어. 형 대신 일본 가서 있는 동안 반했었는지 어쨌는지. 배운 것도 하나 없는데 거의 이십 년을 이장하고, 그동안 동네 이거 저거 다 발전시키고, 얼마나 멋지게 살았다고.'
아들은 자신의 딸을 앉혀 놓고 말한다. 딸은 아주 오랜만에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들은 하얗게 센 머리를 쓸어 넘기며 창밖을 내다본다. 겨울바람이 높은 나뭇가지에 겨우 남은 이파리들을 흔들고 있다.
딸은 아빠를 바라본다. 오늘 처음 들은 얘기가 마음속에 그려진다.
자신보다 더 중요한 존재로 여겨지는 형제를 대신해 전장 같은 곳으로 떠나는 열일곱 살 소년. 그 불의의 요구를 그는 어떤 눈빛으로 받아들였을까. 아마도 호기롭게 큰소리치고서는, 밤이 되면 울어버렸을 것이다. 딸은 할아버지의 부리부리하게 빛나던 검은 눈동자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아빠와 할아버지가 닮은 데가 있는지 딸은 기억을 더듬어 살핀다. 희고 왜소한 아빠는 아무래도 외탁한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아빠는 여전히 창 너머를, 먼 곳을 바라본다. 마주 앉은 마흔의 딸은 낙서하듯 문장 몇을 수첩에 적는다.
충북 보은 속리산 자락의 작은 집성촌, 논밑에 파란 지붕집 임씨네 셋째. 걸걸하고 새까만 농부 임철수.
그는 딸 하나와 아들 셋을 두었다. 열한 명의 손주가 있다. 나는 그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