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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Apr 23. 2020

별거 아닌 별거 이야기

4

‘일요일에는 뭐할까?’ ‘날 좋은데 밖으로 놀러 갈까?’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미술학원 다니고 싶다고 하네’ ‘그래? 근처 괜찮은데 있나?’ ‘응, 수요일에 같이 가보자.’     


식탁에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에 조심스럽고 다정한 말들이 물음표를 달고 오간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대화는 둘을 연결하는 물길처럼 이어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똑같이 빚을 진 사람들처럼 군다. 나는 그를 내쫓은 것 같고 그는 우리를 버려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느 쪽도 사실이 아니지만 또 전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어서 서로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은 언제나 식탁 아래에 고여 있다.     


요즘 그는 아이와 부쩍 가까워졌다. 함께 보내는 시간은 적어도 아이에게 집중하려는 노력으로 꽉 차있다. 전에는 한두 시간도 곤혹스러워하더니 이제는 곧잘 둘이서도 잘 지낸다. 아이가 몇 살만 더 먹어도 기회가 없을 거라고 겁을 줘서 얼마 전엔 둘이서만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가 돌아온 뒤 나는 그렇게도 원하던 편안을 느낀다. 시끄러운 마음과 잡초처럼 우거진 걱정들이 잠잠해졌다. 그가 주는 넉넉한 양육비로 가장 큰 걱정을 덜어냈고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불안과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가 있으니 더 이상 생일이나 유치원 발표회처럼 아빠의 빈자리가 훤히 보이는 날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도 있었다. 다른 것보다 그건 아이와 둘이서 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마트에서도 나는 이제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그는 아이의 머리를 단발로 해줄까 그냥 둘까, 원피스를 노랑으로 살까 보라로 살까 묻는 말들에 나만큼 진지하게 고민하고, 피아노 치는 아이 동영상에 나보다 더 감격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아무래도 똑똑한 아이야 , 예쁜 아이야, 남들에게 못할 소리도 그에게만은 참지 않고 해도 된다.      

비워두었던 자리들을 그가 돌아와 채운다. 함께 살지 않아도 그는 아이의 옆에, 집 안의 한쪽에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상실의 모든 경험이 너그러운 만족을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이제 부부라는 말이 어색한, 마치 길게 반복되는 프로젝트를 함께 맡게 된 동료와 같다.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하며 때로 내 일까지 덜어주는 동료인 그에게 나도 유능하고 배려심 있는 파트너가 되려고 애쓴다. 일로 만나는 사람에게 깊숙한 비밀들은 털어놓지 않듯이 우리는 서로의 많은 부분들은 알지 못하고, 어느 날 사표를 던지고 떠나는 것처럼 언제라도 책임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사적인 부분은 침범하지 않은 채 오직 각자의 역할에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감사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몇 년의 시간은 우리에게 적당한 거리를 주었다. 멀어진 그의 모습은 바짝 붙어있을 때보다 밉지 않다. 일에 쏟는 열정과 노력에도 섭섭할 이유가 없다. 설령 미운 일이 있다 해도 우리는 멀어서 서로를 할퀼 수 없다. 거리는 두 사람을 안전하게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때때로 내가 단 하나뿐인 패를 잃은 사람 같을 때가 있다. 주변의 걱정과 질타, 호기심 어린 시선, 덮어놓고 괜찮다는 위로까지 모두 ‘너는 중요한 무엇인가를 잃었다.’ 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럴 때마다 후드득 용기가, 나뭇잎처럼 떨어진다. 끝까지 혼자서 잘 지낼 수 있다는 용기, 아이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 믿는 용기, 아무것도 실패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들을 잃을 때 조금 힘을 내본다. 나에게는 단지 지금 꺼내지 않았을 뿐인 여전히 대단한 패가 있다고 생각해본다.


오늘은 봄 냄새를 담은 바람이 불어오는 일요일이다. 겨울의 바람은 거칠고 사나운데 봄의 그것은 부드럽고 다정하다. 어느 사이 바람의 결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는 셋이서 햇살이 먼저 자리 잡은 식탁에 둘러앉아 갓 지은 밥을 먹는다. 부쩍 말대꾸를 하는 아이와 내가 티격태격하자 그는 큰 소리로 웃는다. 언제나 무조건 아이 편을 드는 그에게 나는 가끔 눈을 흘긴다. 여전히 나는 식탁에서 가장 분주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뿐인 이 시간이 좋아 즐겁게 수고한다.      

아이와 아빠가 자전거를 타러 나간 사이 나는 설거지를 마치고 글을 쓴다. 따뜻한 기운에 졸음이 밀려와 곧 소파에서 잠이 들 것 같다.

저녁과 밤사이에 그는 현관에서 손을 흔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도 아이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잘 자, 하고 또 한 번 인사한다. 아이와 나는 함께 샤워를 하고 마치 한 몸인 것처럼 꼭 껴안은 채 오래 수다를 떨다가 깊게 잠이 든다.      


아마도 우리에게 똑같은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이 올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목요일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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