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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Apr 23. 2020

별거 아닌 별거 이야기

3


멀리 떠나온 지금 바라보면 모조리 깜깜한 것 같아도, 반짝이는 시간들이 분명 거기에 별처럼 박혀 있다.


일이 잘 되지 않는 절망과 두려움에 아이처럼 엉엉 우는 그를 가슴에 꼭 안고 같은 소리로 울었던 밤과 그가 출근하며 건넨 좋아하는 작가의 새 소설을 받고서 너무 기뻤던 아침이 있었다.     

나의 부모님께 아들도 아니면서 아들보다 살갑게 굴면 뿌듯하게 바라보았던 나의 얼굴과 가끔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뜬금없는 말로 차곡히 모은 불만과 미움을 단번에 쓸어냈던 그의 얼굴이 있었다.     

아이와 셋이서 밤 바닷가의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우주처럼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던 날과 아이의 첫 그림을 벽에 걸며 세상 제일의 것을 가진 사람들처럼 행복했던 날이 있었다.     

나는 그가 안쓰럽고 그는 나를 아끼던, 그런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어느 봄날, 별로 크지 않은 싸움 끝에 그는 집을 떠났다. 빛나던 별과 같은 시간들도 어둠의 뒤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가 없는데 가장 이상했던 것은 빠져나간 그의 자리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람 하나를 나의 가장 깊숙한 곳에 넣었다가 빼내었는데도 죽을 것 같이 아프지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아프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이야기였다. 상실을 맞닥뜨린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자고 일어난 어떤 아침부터 아빠를 볼 수 없는 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 일을 그 애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평범하게 자란 내가 잃어본 적 없는 것들을 아이는 잃었다. 그렇게 만든 것은 나였다.     


둘이서 지내게 된 후 아이와 마트에 가면 언제나 놀랐다. 세상의 모든 가족은 엄마와 아빠가 반드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매번 우리처럼 둘 뿐인 가족을 찾느라 두리번거리곤 했다. 찾기가 어려워지면 숨 죽이고 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상실의 실감 앞에서 나는 늘 아이보다 먼저 우는 얼굴이 되었다.      

틈틈이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작은 어깨가 오므라드는 것을 내가 못 보았을 리 없다. 나는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굴었지만, 그때마다 내 몸의 피가 모두 천천히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채우는 뜨거운 것은 미안함이라는 걸 알았다. 정말로 미안하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어느 날 저녁, 나란히 양치를 하다가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어떻게 팔꿈치가 예쁜 사람이 됐어?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 그 애를 쳐다보았다. 검고 초롱한 눈으로 아이는 다시 말했다.     

-엄마는 팔꿈치도 참 예쁘더라.     

그 애가 발음하는 팔꿈치라는 단어가 너무 생소하고도 사랑스러워 나는 실소를 했다. 그리고 난데없이 울어 버렸다.     

그 애를 그렇게나 사랑한다고 한 것은 나였는데,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떠든 것은 나였다. 그러나 실은 내 팔꿈치까지 찾아내 사랑해주는 아이가 진짜고, 그 애를 위해서 아무것도 견디지 못한 나는 가짜였다. 온몸을 채웠던 미안함은 울음이 되어 욕실 바닥으로 흘렀다.     


그가 없는 것이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모든 것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가 없는 집에서 나이기도 하고 남이기도 한 목소리들을 들었다. 모든 목소리는 나를 비난했다. 불면증과 악몽이 이어졌다. 밤을 엉망으로 보내면 낮 동안은 내내 휘청거렸다.      

아마도 아이는 모든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 애의 한 편을 지키던 아빠가 없으므로 집안의 한 구석도 허물어졌다는 것을. 엄마는 기우뚱하게 반쪽을 잃은 사람처럼 걷는다는 것을. 봄이 깊었지만 우리는 계속 춥고 어둡다는 것을.      

때때로 슬픔이 아이의 언저리로 다가설 때 나는 그 애를 낚아채 가슴에 숨겼다. 아이의 발 앞에 놓인 외로움과 그리움의 조각들을 나는 부지런히 쓸어 내었다. 매일 밤 그 애를 끌어안고 솜털이 부드러운 귓가에 가장 예쁘고 좋은 이야기만을 들려주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것들 뿐이었다.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괴로웠지만 견디었다. 또 한 번의 이기심으로, 되돌리기보다는 나아가는 쪽을 선택했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갔다.     


아이의 여섯 번째 생일날, 그는 분홍색의 작은 피아노를 보내왔다. 갑작스러운 아빠라는 존재의 등장에 아이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망설이는 얼굴이었다. 내가 먼저 활짝 웃으며 신나 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를 만나러 와 달라고 말했다.      


실이 엉키면 끝까지 풀어내려는 사람이 있고, 엉망이 된 실 덩어리를 미련 없이 툭 잘라내는 사람이 있다. 나는 엉킨 실뭉치를 잘라내고도 그걸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가지런한 새 실로 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이제 일주일에 두 번, 수요일과 일요일에 집으로 온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헤어진 것처럼 아무 말도 없이 다시 만났고 지금도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지내고 있다.      

딱 한 번 새벽에 술에 취한 그가 전화를 걸었다.     

미안해, 그동안 힘들었지, 후회가 많이 된다. 고 했다.     

그렇구나, 알겠어.라고 나는 답했다.     

그는 내가 이미 걸어온 길을 이제야 지나고 있었다. 나는 그 길 끝에서 이별을 마쳤고 그는 아직 이별하는 중이었다. 그의 이별이 부디 오래 걸리지 않기를 바랐다.      

말에는, 특히 중요한 어떤 말에는 해야만 하는 때가 있다. 우리는 그 많은 때를 모두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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