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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Apr 23. 2020

별거 아닌 별거 이야기

2

나는 여전히 어려운 질문을 받는다.     

'헤어진 이유가 뭐야.'     

답을 하려고 기억을 헤맬 때마다 사람들을 쉽게 납득시킬 수 있는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내밀하고, 은근히 반복되는 작은 것들이 아주 거대한 것을 파괴할 수 있음을 나는 알게 되었지만,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이상하게 아침부터 머리가 아파’          ‘나는 허리가 아프네’     

‘이거 한번 해볼까 봐’                            ‘아.. 못할 거 같은데..’      

‘저걸 해볼까?’                                       ‘저것도 못할걸’     

‘나 오늘 너무 기분 나빴어’                    ‘그래? 나는 아까 점심을 먹었는데..’     

‘오늘 어땠어?’                                       ‘어떠긴 뭘 어때’     


처음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와 나의 ‘대화’였다. 건네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상하고 일상적인 대화였다.      

그즈음 나는 매일 세 뼘만 한 갓난아기와 하루를 보냈다. 그것은 몹시 행복한 일이었고 말할 수 없이 지치는 일이었다. 나는 가끔 스스로를 땀에 절은 화초처럼 느꼈다. 차갑고 맑은 물이 간절했다. 유일한 상대였던 그에게 달고 시원한 물을 얻고 싶은 마음으로 말을 건넬 때마다 그는 뜨끈한 물을 붓는 것처럼 대꾸했다. 고작 한마디의 말이 처음에는 서운하게 했고 다음에는 시들게 했고 나중에는 거기에 잠겨 익사할 것만 같았다.     


우리에게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내가 그의 대답을 모두 예상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어느 날 나는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 그의 대답을 듣지 않아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뜨끈하고 불쾌한 물을 피하기 위해 나는 갈수록 더 많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았다. 안 할 수 있는 만큼 안 하려고 애썼다.     


가늘고 미세하지만 이미 시작되어 멈출 수 없는 균열은, 시간을 잡아먹으며 빠르게 번져나갔다. 그동안 그는 일에, 나는 육아에 각자 힘겨웠지만 대화가 사라지자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할 방법도 잃었다. 두 사람은 가까워지는 것처럼 멀어지는 것 또한 지연스러웠다. 말하고 듣는 것조차 하지 않으며 서로에게 애정과 의미를 남겨두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진 하나만 찍어줘     

-뭘 찍어 여기서     

-좀 찍어줘     

오랜만에 좋은 식당에 갔던 날이었다. 안 입던 블라우스도 입었고 멋진 샹들리에 아래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가 귀찮은 듯 몇 장 찍어 내민 핸드폰에는 몰랐던 내가 있었다. 너무 뚱뚱한 몸과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초점이 맞지 않거나 발목이 잘렸다. 그것이 그의 눈에 보이는 나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성의도 관심도 사라진 그의 마음을 사진 몇 장으로 통보받은 기분이었다. 짐작한 것을 확인한 것처럼 담담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슬프고 아팠다. 얼굴과 눈이 뜨끈해졌다. 침을 꼴깍 삼켜도 날카로운 것이 목구멍을 쑤셨다.      

-에이 이게 뭐야     

나는 입 꼬리의 경련을 숨기며 웃었다. 마주 앉아 비싼 밥을 먹었다. 조금 먹었는데도 많이 체했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시간이 지나면 좋아진다고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말했지만, 그때에 나는 우리의 마지막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것마저도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헤어짐을 막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절망적이면서도 설레는 일이었다.     

이제 균열은 굵은 줄기가 되어 더 빠른 속도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나는 사실 그것이 멈추길 바라면서도, 정말 죽을 때까지 그와 살아야 할까 봐 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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