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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Apr 23. 2020

별거 아닌 별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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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9년 전에 결혼했고 4년째 별거 중이다. 아이는 올해 8살이 되었다.     

집을 떠난 아이의 아빠와는 연락 없이 지냈다. 2년째 되던 해 아이의 생일날 그가 선물을 보내와서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1주에 2회 아이를 만나러 집으로 온다.  


막상 나열해보니 너무 간략해서 정말 별거 아닌 일처럼 보인다. 그저 남의 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피해왔던 것을 맞닥뜨려야 할 때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나는 조금 어깨가 움츠러든다.     


얼마 전 일요일에 셋이서 점심을 만들어 먹고 나는 거실 소파에 길게 누웠다. 오랜만에 만난 아빠와 함께 노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한참 뒤 놀라 잠에서 깬 나는 무언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며칠 뒤에 문득 알게 되었다. 지금껏 한 번도 나는 내 집 소파에서 잠든 일이 없었다. 그와 함께 살 때 내 자리는 언제나 거실 끝이었다. 그건 누가 시킨 일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매일 저녁 할 일도 남지 않은 싱크대 앞을 서성이다 식탁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거기서 아이와 아빠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는 늘 같은 방향으로 소파에 기울어져 있었다. 아이는 아직 어려 손이 자주 필요했는데 아빠는 더 가까이에 있어도 아무것도 못 보는 사람 같았기 때문에 나는 매번 다급하게 일어나 아이를 챙겼다. 우리는 언제나 세 사람이었지만 둘인 것 같았고 때때로 나 혼자인 듯했다.     

그 날의 첫 낮잠은 우리가 더 이상 같이 살지 않게 된 많은 이유 중 하나를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편안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기억들이, 고리에 고리가 걸리듯 끌려 나온다.

만삭의 몸에 급체를 해 밤새 토하면서도 나는 잠든 그를 깨우지 못했다. 그가 물 마신 컵을 식탁 위에 놓은 채 다른 컵을 쓰고 또 그 자리에 놓아 그 컵이 쌓이면 나는 말없이 정리했다. 관심 없는 그의 이야기가 너무 길고 지루해서 듣지 않으면서도 듣는 척하느라 애썼고, 무거운 것을 옮기거나 부탁할 집안일이 생기면 몇 번은 망설인 끝에 얘기할 수 있었다.     

나는 단지 그의 찡그린 얼굴이나 푸념과 핑계를 필사적으로 피하고 싶었다. 그것은 내 마음을 너무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억의 고리들은 이미 길게 늘어져 있지만, 더 아래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있음을 기억해 낸다. 그것은 좀 더 오래되고 낯선 것들이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를 순수하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추운 날 차를 세워둔 채 밖에 서서 낡은 코트를 입고 나를 기다리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는 매번 잊지 않고 차 문을 열고 닫아주고, 조심하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던 사람이었다. 생선 가시를 발라 늘 가장 큰 조각을 내 밥에 얹어주었고, 단 한 번도 야, 너라는 말로 나를 부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손톱 끝에서 풍기던 비누냄새와 팔꿈치에 조각을 덧댄 오래된 스웨터를 나는 좋아했었다. 그의 식당 종업원들을 대하는 예의 바른 태도와 조곤조곤한 말투, 낮은 목소리도 좋았다.     


좋았으므로 결혼을 선택했다. 때로는 모든 것이 선택의 방향으로 흘러가 주는 시기가 있다. 너무 빠른 그 흐름에 신중함을 잃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제와 의지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그것을 분명하게 해두고 싶다. 마치 점점 나의 결혼이 어쩔 수 없었던 것처럼 말하고 싶어 하는 내가 비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빠른 선택을 한 것도, 먼저 후회한 것도 모두 나였다.     


결혼을 하고 흐름의 방향이 바뀐 것은 정확히 언제부터였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할 수가 없다. 그 이야기의 고리는 빠져있다.     

어느 날 수많은 돌덩어리들이 쌓여 만들어진 담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무너졌다. 그 날은 똑같은 월요일 똑같은 화요일, 수요일이 흐른 뒤의 완전히 다른 목요일이었을 것이다. 그 날부터 나는 그를 선택한 이유를 모두 등지고 헤어지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모든 것이 다시 한번 내 선택의 방향으로 흘러주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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