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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Oct 30. 2020

너의 어떤 기억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곱 살 아이의 인라인 스케이트 참관 수업이 있었다.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걸음마부터 느렸던 아이는 출발 한 후 다음 팀이  한 바퀴를 돌아 추월 할 때까지 도착 지점에 들어오지 못했다. 느린 스케이트 속도는 조금 걱정스럽긴 했어도 그리 놀랍지 않았다.     

다만 내가 당황했던 것은, 다들 일 년을 함께 보낸 친근함과 익숙함이 넘쳐 보이는데 마치 어제 전학 온 것처럼 혼자 섞이지 못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 이었다. 아이의 눈에는 아직도 낯섦이 짙게 묻어 있었고 행동은 자연스럽지 않고 쭈뼛댔다. 흥분과 활기로 터질 듯한 일곱 살 아이들의 체육시간의 어떤 순간에도 내 아이는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수업 시간 내내 나를 아프게 했다. 목구멍으로 뜨거운 덩어리들이 울컥 울컥 밀려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뜨거운 것은 목구멍을 지나 가슴속으로 흘러내렸다. 구석구석 뜨겁게 짓물러 갔다.     

너무 아픈 것은 오히려 말 할 수가 없다. 나는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크게 웃고 손을 흔들며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아이는 나를 바라볼 때 만은 편안하게 웃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오랫동안 회피해온 바보 같은 질문을 떠올리고 말았다.

내가 저 아이의 아빠와 계속 함께 살았더라면 무엇인가 달랐을까.     

그 날 밤에 우리는 서로를 향해 모로 누웠다,      

그 애의 이마에 부드럽게 흘러내린 곱슬 머리를 쓸어 넘긴다. 매일 밤 마주 안은 채 잠이 들 때 까지를 아이는 ‘우리 둘만의 시간’ 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눈을 가까이 맞추고 말이 없다. 스케이트 수업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나를 아이는 알고 있다. 어둠과 온기가 우리를 완전히 덮어 줄 때 쯤 아이는 느릿느릿 눈꺼풀을 어쩌지 못하다 잠이 든다. 아이의 깊어진 숨소리가 고요한 방안을 채운다.     

울음처럼 한번 터져버린 생각은 쉽게 거둬지지 않는다.

아이의 등에 지운 상실의 무게가 아이를 얼마나 움츠려 들게 하고 있는 걸까.

갑자기 모든 것을 가늠하고 싶다. 가늠한 것을 모조리 내 등에 싣고 싶다.     

나의 결정이 아이의 약점까지는 되지 않기를 바랐다. 스스로 약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닌 것이 되고, 아이도 닮아 줄 것 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가끔 아이의 뒷모습에서 내가 지운 부재의 그늘을 본다. 볼 때마다 아프다는 것으로 그것은 여전하고 분명한 약점이다.     

그것은 숨겨진 송곳처럼 어디에서든 튀어 나오고, 숨기고 있는 동안에도 번번이 나를 찌른다. 그 송곳을 대하는 특별한 태도에도, 무심한 태도에도 상처를 받는다.

송곳의 끝이 아이를 향해 솟은 것을 목격하게 될 때, 나는 눈을 파랗게 뜨고 까만 밤이 하얗게 녹아내리는 것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 그 밤을 아이는 그저 깊은 잠으로 좋은 꿈으로 무사히 건너고 있기를 바랐다.     

주말을 기다렸다가 아이와 인라인 스케이트장에 갔다. 며칠 사이 가을이 깊어져 트랙 위에 노란 은행잎들이 색종이 조각처럼 무수히 펼쳐져 있었다. 주춤 대며 스케이트를 미는 아이 옆을 천천히 걸었다. 아이의 스케이트가 미끄러질 때마다 은행잎들이 일렁였다.      

너의 어떤 기억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령 그 날의 어색함과 긴장과 부끄러움 같은 것들. 가끔 너의 작은 가슴을 텅 비게 하거나 너를 가만히 슬픔으로 이끄는 것들을 말이다. 내가 지금과 같이 너의 볼을 부비고, 가을 빛이 너의 속눈썹 끝에서 부서질 때 더욱 그렇게 되었으면 했다.     

아이는 내게 보란 듯이 지난 수업 시간보다 훨씬 힘차게 스케이트를 밀었다. 

나의 어떤 기억도 없어졌으면 좋겟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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