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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Oct 30. 2020

무구한 얼굴이 밤새 깜박였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나의 이야기였다.

상실을 맞닥뜨린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부터 느닷없이 아빠를 볼 수 없는 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 일을 그 애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네 살의 아이에게 어디까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다. 아빠는 어디갔냐는 몇 번의 질문에 얼버무렸고, 일하느라 멀리 갔다는 뻔한 이야기로 둘러댔다.그 다음은 아이가 더 말하지 않았다. 

가족 사진을 올려다볼 때, 다른 아빠와 아이의 다정한 장면을 멀찍이서 볼 때, 그 애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눈이었다. 다시 고개 돌려 나를 바라 볼때는 금세 아무것도 모르는 눈이 되고는 했다. 아이는 두 계절이 넘도록 아빠를 입에 담지 않았다. 부자연스러울 만큼 철저한 아이의 모른 척을 나 또한 모른 척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발작하는 것처럼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가리키며 울부짖었다. 엄마 저것 좀 치워! 떼버려! 얼른 치워! 소리쳤다. 끔찍한 비명이었다. 나는 새파랗게 얼어 요동치는 몸을 꽉 껴안았다. 윙 하고 세상이 멀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일 년 뒤에 영유아 검진이 있었다. 의사는 키와 몸무게가 거의 늘지 않았다고 의아해 했다. 나는 궁지에 몰리는 것처럼 당황했다. 요즘 스트레스가 있을 수도 있다고 간신히 대답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성장이 조금 더 진행되면 문제가 된다고 했다. 신경 써서 먹이고 지켜보며 자주 체크하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겨울 한 낮의 볕은 눈 부시게 반짝였지만 몸이 시렸다. 아이는 까불고 나는 웃었다.  ‘잘 먹었는데.. 잠도 잘 자고.. 유치원에서도 별 말이 없었는데.. 괜찮을건데.. 괜찮을건데..’ 나는 부정과 핑계의 말들을 찾아내 끊임없이 중얼대었다.

그 날은 잠들지 못했다. 아이 옆에 누워 눈을 감았다 뜨기만 했다. 무구한 얼굴이 밤새 깜박였다. 


평범하게 자란 내가 잃어본 적 없는 것을 아이는 잃었다. 그것을 견디는 방식도 아파할 과정도 나는 여전히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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