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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Oct 30. 2020

정말로 미안하다는 것은

둘이서 지내게 된 후 주말에 마트에 가면 언제나 놀랐다. 세상의 모든 가족은 엄마와 아빠가 반드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매번 우리처럼 둘 뿐인 가족을 찾아 두리번거리곤 했다. 찾기가 어려워지면 숨 죽이고 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상실의 실감 앞에서 나는 늘 아이보다 먼저 우는 얼굴이 되었다.      

틈틈이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작은 어깨가 오므라드는 것을 못 보았을 리 없으면서도 나는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몸의 피가 모두 천천히 빠져나갔다.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뜨거운 것은 미안함이었다. 정말로 미안하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저녁에 나란히 서서 양치를 하다가     

-엄마는 어떻게 팔꿈치가 예쁜 사람이 됐어?  라고 아이가 묻는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검고 초롱한 눈으로 아이는 다시 말했다.     

-엄마는 팔꿈치도 참 예쁘더라.     

분홍의 입술과 혀로 발음하는 팔꿈치라는 단어가 너무 생소하고도 사랑스러워 나는 실소를 했다. 그리고는 난데없이 울었다.     

그 애를 그렇게나 사랑한다고 한 것은 나였다.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떠든 것도 나였다. 그러나 실은 내 팔꿈치까지 찾아내 사랑하는 아이가 진짜고, 그 애를 위해서 아무것도 견디지 못한 나는 가짜였다. 

그애를 핑계로 더 참아내지 못해서, 봉합하지 못해서, 해답을 얻지 못해서, 온몸을 채웠던 못한 것들의 미안함은 울음이 되어 욕실 바닥으로 흘렀다.     


아마도 아이는 모든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한 편을 지키던 아빠가 없으므로 집안의 한 구석도 허물어졌고 엄마는 기우뚱하게 반쪽을 잃은 사람처럼 걸으며 봄이 깊었지만 우리는 계속 춥고 어둡다는 것을.      

때때로 슬픔이 언저리로 다가설 때 나는 아이를 낚아채 가슴에 숨겼다. 아이의 발 앞에 놓인 외로움과 그리움의 조각들을 부지런히 쓸어 내었다. 매일 밤 그 애를 끌어안고 솜털이 부드러운 귓가에 가장 예쁘고 좋은 이야기만을 들려주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것들 뿐이었다.

나는 끝내 미안함을 견디었다. 아이를 위해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또 한 번의 이기심으로, 되돌리기보다는 나아가는 쪽을 선택했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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