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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Oct 30. 2020

나는 4년 째 별거 중이다.

나는 9년 전에 결혼했고 4년 째 별거 중이다. 아이는 올해 8살이 되었다.     

4년 전 아이 아빠는 집을 떠나  1년이 훌쩍 넘게 연락이 없다가 아이의 생일날 분홍색 작은 피아노를 보내왔다. 아빠의 선물 앞에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아이의 얼굴에 분명한 그리움이 비쳤을 때, 주저 없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아이를 만나러 집으로 온다.  


손가락으로 수를 헤아려가며 이력을 적고 나니 새삼스럽고 낯설다. 더욱 남의 일 같다. 지나온 시간은 가만히 적힌 숫자 속에 묻혀있다. 어떤 때는 봄 날의 소풍처럼 웃었고 어떤 때는 억울한 형벌을 받는 사람처럼 울었다. 단지 그랬다는 것만 남았다. 많이 잊었다.


얼마 전 일요일에 셋 이서 점심을 만들어 먹고 나는 거실 소파에 길게 누웠다. 오랜만에 아빠와 노닥거리는 아이를 바라보다 깜박 잠이 들었다. 한참 있다 놀라 잠에서 깬 뒤 무언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며칠 뒤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그와 사는 동안 한 번도 내 집 소파에서 잠든 일이 없었다.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내 자리는 언제나 거실 끝이었다. 생각해보니 매일 저녁 할 일도 남지 않은 싱크대 앞을 서성이다 식탁 의자에 비스듬히 앉았다. 거기서 아이와 아빠를 바라보곤 했다. 그는 늘 같은 방향으로 소파에 기울어져 있었다. 아이는 아직 어려 손이 자주 필요했지만 아빠는 더 가까이에 있어도 아무것도 못 보는 사람 같았다. 내가 늘 지켜보며 아이를 챙겼다. 우리는 언제나 세 사람이었지만 둘 인 것 같았고 때때로 나 혼자인 듯했다.     

그 날의 첫 낮잠은 그와 내가 더 이상 같이 살지 않게 된 많은 이유 중 하나를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편안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잊은 줄 알았던 기억들이, 고리에 고리로 끌려 올라온다.

만삭의 몸에 급체를 해 밤새 노란 물을 토하면서도 자는 그를 깨우지 못했다. 잠든그의 옆에서 몇번을 망설이다 아침이 되어서야 아프다고 했다.병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물 마신 컵을 식탁 위에 놓은 채 우유 마신 컵을 또 옆 자리에 놓고 콜라 마신 컵을 또 보태도 짜증을 참으며 말 없이 정리했다. 

관심 없는 그의 이야기가 너무 지루해서 듣지 않으면서도 듣는 척하느라 거의 모든 날 애썼다. 무거운 것을 옮기거나 부탁할 집안일이 생겨도 몇 번은 주저한 끝에 말을 꺼냈다.     

단지 그의 찡그린 얼굴과 푸념, 핑계를 필사적으로 피하고 싶었다. 그는 기억도 못할 순간들이, 내 마음을 매번 너무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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