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지할 수 있다. 두 시에서 세 시쯤, 잠들었다고 생각하며 여전히 깨어있는 내 귓가에 윙 소리가 낮게 울린다. 천천히 누운 자리가 축축해지고 움푹 꺼지는 것을 느낀다. 사위가 밝아졌다 푸르러진 뒤 다시 어둠이 된다. 나는 지체 없이 몸을 일으켜 앉는다. 오고 있다. 깨어있어야 한다. 그러면 더는 다가오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오래전 어느 날 시작되었다.
새벽에 깬 나는 살금살금 방에서 걸어 나간다. 신발장을 지나 차가운 현관문에 바짝 귀를 댄다. 3미터쯤 떨어진 침실에서 나는 분명히 발자국 소리, 무거운 것을 신중하게 내려놓고 작은 물건을 조작하는 소리를 들었다. 흐린 소리를 듣고 나는 선명하게 깨어났다. 누군가가 지금 현관으로 다가와 석유통을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탁 탁 켜는 장면을 어둠 속에서 그려냈다. 나는 곧장 침대에서 내려섰다. 발소리가 나지 않게 그러나 너무 느리지 않게 걸어야 했다.
희미한 석유 냄새가 현관문 틈새로 스며 들어온다. 숨소리마저 삼키며 귀를 대고 있지만 현관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그 누군가가 내 기척을 듣고 되돌아갔으리라 생각한다. 조그만 구멍으로는 도저히 내다볼 용기가 없다. 월패드 화면으로 현관 밖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낸다. 화면은 센서등이 꺼진 복도를 완전한 암흑으로 비춘다. 나는 그것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악몽은 수개월 째 이어지고 있었다. 새벽 서 너 시에 잠이 들면 곧바로 시작되고 온 힘을 다해 견디어 낸다 해도 한두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일어난다. 그렇게 눈이 떠지면 다시 잘 수 없다. 아침이 될 때까지 나는 충전 중인 기계처럼 가만히 앉아 있다.
낮 시간은 엉망이 된다. 구겨진 종이 같은 얼굴 위에 낙서 같은 웃음을 그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소파에 기댄다. 거의 모든 시간이 나를 비껴 지나간다. 운이 좋다면 한두 시간 못다 한 잠을 잘 수도 있다. 운이 아주 좋으면 그동안 꿈을 꾸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밤새 나를 다녀간 것에 대해 써서 친구에게 보냈다. 날이 밝아 기억의 토막들을 잃어버리면 보낸 메시지를 찾아 경위를 확인했다.
언젠가 내가 남긴 메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키가 2미터는 되는 것 같은 사람 다섯 명이 방으로 들어왔어.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어. 나는 자는척했는데 그 사람들이 모여서 뭐를 의논하는 것 같아. 그러다가 그중 둘이 싸우고 나머지는 다가와 침대를 옮기려고 했어. 통째로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것처럼. 너무 무서워서 덜덜 떨렸어. 침대가 덜컹거렸어. 나중에 그들은 하나씩 하나씩 사라졌어. 마지막 사람은 오랫동안 방문에 서 있었는데 내가 깨어있는 걸 아는 것 같았어. 나는 끝까지 돌멩이처럼 누워있었어. 그렇게 오래 숨을 참았는데 나는 살아있어.
또 다른 날은 이런 것이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모르는 할머니가 들어와. 할머니가 재빨리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가. 나는 계속 나가기를 기다리다가 안 되겠어서 침대 밑을 들여다보기로 했어. 엎드려서 침대 끝을 잡고 조금씩 고개를 떨어뜨려. 나무 프레임 때문에 안 보여서 상체를 더 아래로 숙여. 꼭 추락하는 것 같아. 내가 뭘 보았는지 아니. 나도 모르겠어. 깨어났더니 내 몸은 여전히 침대 아래로 고꾸라져 있었어. 나는 할머니를 보았을까? 너무 무서워
유쾌하지 않은 메시지를 아침마다 읽어야 했던 친구는 마침내 심리상담을 권했다. 나는 상담과 진단을 받고 돌아와 약 봉투를 식탁에 던져두고 먹지 않았다. 의사가 수면유도제라며 처방한 세 가지 약 중에 반 알 짜리 분홍색 것의 이름을 검색하니 조현병 치료제라고 설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경악해서, 악몽 정도로 조현병이 들먹여지는 것이 황당하고 억울해서 이게 그렇게까지 큰 일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계속 할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보초를 서기로 했다. 이윽고 밤이 되었다.
나는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아이가 잠을 향해 가라앉으며 내 머리칼을 만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가 아주 먼 곳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늙은 별이 되어 지켜본다. 나는 잠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잠들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우리에게로 오지 못할 것이다.
오목한 방안에 밤이 영원할 것처럼 고인다. 방문 밖에서 수군수군 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나는 아무 소리도 듣는 못하는 사람처럼 굴기로 했다. 마침내 창 모서리에서 숨결 같은 아침 볕이 새어드는 것을 보았고 나는 그때서야 눈을 감았다.
눈을 뜨자 내 몸통은 물에 젖은 옷감처럼 침대 밑을 향해 늘어져 있었다. 침대 위에 머리칼 대신 헝클어진 다리에는 아이의 어린줄기 같은 손가락들이 감겨있다. 뒤늦게 할머니가 왔었다고 해도 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새벽 메시지가 없는 것에 오히려 걱정이 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잘 잤어? 괜찮아?
나는 야간 경비가 되었고 몸이 고꾸라진 채로 깨어난 사실을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괜찮아.
다음 날 나는 방문과 침대 사이에 자리를 깔았다. 할머니가 눈치 빠른 짐승처럼 침대 밑으로 사라진 길목이었다. 시곗바늘 소리와 아이 숨소리가 사이좋게 교차하는 것을 셈하며 거기에 누웠다.
침대 밑으로 들어가지 마세요 오지 마세요 침대 밑으로 들어가지 마세요 할머니 들어가지 마세요
누운 몸이 빈 그릇 소리를 내며 떨렸다. 나는 마주 묶은 손가락을 누름돌처럼 가슴에 올려두었다. 조그마한 빛 자국들이 어두운 바닥 위에 벌레같이 엎드려 있다. 그것을 바라보다가 나는 그날 내가 본 검은 형체를 떠올렸다. 바닥에 몸을 붙이고 침대 밑으로 사라지던 그것은 하얀 머리칼도 굽은 등허리도 주름진 살갗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가 할머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