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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Apr 18. 2023

비행하는 아이(2)

말해보지도 못한 마음이 영원히 기회를 잃었는데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욕심과 연정으로 통증에 시달리는 사이에 가을이 왔다. 내가 그 와중인데도 바람인형 친구는 유치한 장난을 멈추지 않았고 거기다 이상한 짓을 더했다. 한 번씩 딸기 우유나 캐러멜 같은 걸 내게 휙 던져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엉거주춤 받아서는 먹어도 되나 매번 고민했다. 무슨 미끼일 수도 있었지만 어떤 메시지일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미심쩍었다.

그즈음 나는 점점 사는 게 소란하고 버겁게 느껴졌다. 사랑받고 싶었고 누구의 눈밖에도 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친구들 하나하나의 고유성에 나의 고유성을 버리고 응답했다. 그건 마치 반복되는 업무 같았다. 멋대로 구는 매력적인 아이로 보여야 하면서도 큰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 되었다. 친구들의 관심 안에 있기 위해 애쓰면서도 절박해 보여서는 안 되었다. 잠시 방심하여 혹여나 내가 가라앉아버리지 않도록, 존재를 보이게 하기 위해, 존재를 물 위에 띄우기 위해, 쉬지 않고 분투를 거듭하는 피곤한 한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강하기 떠밀어버린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했다. 누군가 학교 탈의실 벽에 끔찍한 욕을 써놓았는데 그 대상이 하필 나와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티격태격 해온,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던 남자애였다. 온갖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단어들이 뒤엉킨 낙서를 선생님의 명령으로 반 아이들이 함께 지웠다. 나는 그 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낙서만은 잔인하다고 생각하여 그 애가 딱한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은 범인을 밝히기 위해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면담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의 입에서 내가 그 애와 오랫동안 사이가 퍽 좋지 않았다는 사실이 흘러나왔고, 그것은 내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으로, 급기야 내가 그날 낙서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빨간 사인펜을 손에 쥔 것을 목격한 것 같다는 제보로 이어졌다. 일이 그렇게 되어간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던 나는 선생님이 교무실로 호출해서 절반 이상의 확신을 가지고 자백을 요구할 때에야 비로소 내가 모르는 어떤 이야기가 거의 완성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충격과 공포로 달달 떨고 있는 내게서 엉뚱하게도 결백이 아니라 죄책감을 감지한 선생님은  곧 엄마를 학교로 불러들였다.

그날 저녁 엄마가 나를 앉혀놓고 정말 니가 그랬어?라고 물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가 그랬나 생각했다. 나를 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말이 맞을 것 같았다. 모두의 주장이 틀리는 것보다 나 하나의 기억이 잘못된 것이 일어나기 쉬운 일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런 일을 벌인 기억이 없기 때문에, 생각조차 해본 적 없기 때문에, 자백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서 눈물이 났다. 나는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그게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그 일을 아는 모든 사람은 나를 범인이라고 심정적으로 결론 냈지만 사실 결정적 증거는 없었기 때문에 어떤 제재나 벌칙 없이 사건은 무마되었다. 선생님은 마지막 절차로 나를 상담실에 앉혀놓고 한 시간에 이르는 설교를 했다. 나는 체념과 실의와 슬픔이 내 몸 전체를 서서히 채우고 천천히 녹이는 것을 느끼며 그저 앉아 있었다. 나는 저지르지도 않은 일로 몹쓸 사람이 되었다. 다행히도 여전히 나를 위로하는 몇몇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내 결백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비록 그런 짓을 저질렀으나 친구의 의리로 넘어가 주겠다는 관용이었다. ‘내가 낙서를 했다’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때 그 세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억울함과 서러움의 감각을 잃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내가 그 일을 저질러놓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의 결백을 믿었던 유일한 사람인 나조차 나를 불신하게 되었을 때는,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모두가 나를 그런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그런 사람으로 살면 되었다. 끝없이 억울해하고 분노하고 미워하는 일은 너무 피곤할 뿐이었다.

시간은 모두가 사건을 잊도록 돕고 있었다. 이제 아무도 그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탈의실 벽은 깨끗해졌다. 낙서를 당한 남자애는 나를 전혀 못 보는 척하는 것으로 나름의 복수를 하고 있었다. 아직 그 일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말수가 줄었다. 좁은 교실 안에서 몇몇의 아이들을 피해 다녔다. 선생님 눈도 맞추지 못했고, 탈의실 대신 화장실에서 체육복을 갈아입었다. 나는 태어난 이래로 나쁘고 위험하고 잔인한 동시에 가장 억울하고 가장 다친 사람이었다.


나의 소소했던 비행은 그 사건 이후로 마치 충분한 동기를 얻은 것처럼 뻗어나갔다. 공부를 할 이유도 규칙을 지킬 필요도 없었다. 나는 이제 누구의 사랑과 인정도 불가능해 보였고, 어떤 노력이든 성취든 아무도 봐주는 사람 없어 딱해질 것이 뻔하므로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나았다. 애초에 내 모든 목표는 사랑받는 것이었다. 나는 지각했고 결석했고 숙제를 하지 않았고 체육시간에 빠졌다. 점심시간마다 담을 넘었으며 귀가 시간은 늦었고 담배를 배웠다. 거의 모든 날 나는 슬프고 불안했다. 이미 글렀다, 고 생각했다. 이렇게 빨리, 이렇게 어이없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분명히 무엇인가를, 시작도 못해보고 실패했다.


그때 우리는 매주 두 명씩 주번이 되어 교실 정리를 했다. 주번은 30분씩 일찍 등교해 주전자에 물도 채우고 청소함도 정리하고 칠판지우개도 털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을 때 내 차례가 되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맞는 것이 싫어서 나는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섰다. 교복 깃을 올리고 몸을 웅크린 채 아직 고요한 골목길을 걸어 학교에 갔다. 어둡고 적막한 학교 복도는 낯설었다. 오래된 나무와 시멘트 냄새가 차가운 공기 속에 섞여 떠다녔다. 내 발자국 소리가 너무 커서 나는 숨죽이듯 걸었다. 하얀색 실내화를 내려다보며,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던 두 발의 걸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교실에 도착해 뒷 문을 드르륵 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바람인형 그 애가 칠판 앞에 서 있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놀라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 순간 휑한 교실을 가로지르며 우리 사이에 어떤 바람이 지나갔다. 책걸상이 오십 개 빼곡히 들어찬 초콜릿 상자 같은 교실의 대각선 끝에 마주 서서 우리는 서로를 발견하고 굳어버렸다. 이내 그 애는 바닥에 떨어진 말을 주워 담으려는 것처럼 주섬주섬, 입을 우물거렸다. 그 애가 헤매고 있는 사이 나는 칠판에 쓰인 글자들을 보았다. 그것은 내 생애 가장 단도직입적인 여섯 글자의 고백이었다.

“뭐야..”

당혹에 무심을 가장하여 나는 뇌까렸다. 매일 지각을 일삼는 애가, 제 차례 주번도 제대로 안 해서 혼나는 애가 이 아침에 왜? 벌레다, 하면서 껌종이를 던지는 애가, 내 얼굴에 뾰루지가 나면 목젖이 다 보이게 웃고 놀리는 애가 나를 왜?

결국 어떤 말도 제대로 해낼 수 없었던 그 애는 나를 한번 바로 보지도 않고 도망가듯 앞문을 열고 휙 나가버렸다. 알록달록 쓰인 여섯 개의 글씨와 교탁 위에 던져진 배낭을 바라보며 나는 한동안 뒷문에 그대로 서 있었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칠판을 지우개로 지워내고 색색의 분필 가루를 털어내면서 나는 마음속에 평범한 종류의 설렘과 이상한 종류의 감격이 휘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구원이었다. 단지 자신의 마음을 말하기 위해 선택한 단순한 몸짓이었다고 해도, 고립되고 처참해진 나의 날들을 지켜본 그 애의 고백은 나에게는, 위로하는 일이었고 구조하는 일이었다.  한 사람에게는 오직 한 사람으로 충분한 때가 있다. 단 한 사람이 없어서 절망하는 때가 있는 것처럼.


그날 이후로 그 애는 선명해졌다. 수 십 명의 아이들 속에서도 나는 그 애를 단박에 골라낼 수 있었다. 소음들 가운데 그 목소리는 가장 또렷하게 들렸다. 나는 더 이상 반장이 다른 애를 바라보는 눈길을 안타깝게 좇지 않았다. 내게 곧장 도착하는 눈길 하나를 가늠하기도 바빴다. 헐렁한 교복바지를 입은 그 애가 더는 바람인형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애의 길쭉한 목과 얇은 손가락이 섬세해 보였다. 그 애는 계속 어린애 같은 장난을 쳤고 이따금씩 딸기 우유와 캐러멜을 내 책상 위에 놓았다. 그러다 가방 안에 넣어두었고 어느 날인가는 점심시간에 복도에서 내 손에 직접 쥐어주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는 동안 우리에게는 말이 없었다. 말이 없는 연애는 빠르게도 멀게도 가지 못했지만 그 대신 아무 데로도 날아가지 않고 한 자리에, 고였다.


그 애는 나를 잠시 멈추게 해 주었다. 날아오르는 것이 비행이라면 그때 그 애는 나에게 더 멀리 가기 전에 쉴 수 있는 장소이자 시간이 되어 주었다. 학교에 가는 것이 덜 괴로워졌다. 그 애가 교실 안에 ‘나를 좋아하며’ 앉아있었기 때문에.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주었기 때문에. 그것은 그 가을 학교에 머물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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