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나 아직 살아 있어요”라고 말하던 그날

by 서해


이직 면접에 비하면

대학원 면접은 놀라울 만큼 싱겁게 끝났다.


면접관은 지원 동기 위주로 간단히 물었다.

“왜 지금인가?

“왜 이 학교인가?”

”왜 이 전공인가? “

“직장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가?”


아마 5분 정도?

이직 면접은 50분을 꽉 채웠던 거 같은데.

돈을 받는 자리와

돈을 내는 자리의 무게가

새삼 다르다는 걸 느꼈다.


두 번째 대학원 면접 전날엔 회식이 있었다.

녹초가 된 몸을 끌고

토요일 이른 아침 면접까지 마치자

이게 끝이 아닌데도

왠지 모든 과정을 완주한 것처럼 나른해졌다.

최종 결과도 안 나왔는데

혼자 뿌듯해하는 내 모습이 웃겼다.


그런데 이게 뭐라고,

최종 합격 발표를 앞두고

괜히 마음이 두근거렸다.


옆에서 남편은 재미있다는 듯 히죽거리며 말했다.

“설마 떨려? 대학원 떨어지는 사람도 있어?”

대수롭지 않은 말투였지만,

표정은 분명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합격자 발표 날,

손끝이 살짝 떨리는 걸 느끼며

이름과 수험번호를 입력했다.


그리고 모니터에 뜬 두 글자.


“합격”


‘떨어지면 할 수 없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합격하니 기분이 들떴다.

오랜만에 심장이

‘나 아직 살아 있어요’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가장 먼저 엄마와 동생이 있는 단톡방에 소식을 올렸다.

동생은 호들갑스럽게 축하를 쏟아냈다.

그런데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읽음 표시만 남기고 대답 없음.

읽씹이라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며칠 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장모님이 내 마음이랑 같으신가 보네.

마흔 넘어서 또 공부?

얼마나 심난하시면 말이 안 나오셨겠어.”


웃어넘겼지만

‘정말 그런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문득,

엄마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예전에 엄마가 가끔 말했다.

동생에게 공부를 더 시키지 않은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고.

첫째라서 뭐든 하나라도 더 앞서 챙겼던 나와 달리,

둘째는 그냥 귀여워서, 그 귀여움 하나로 키웠다고.


그래서 엄마는 종종 후회했다.

동생도 4년제 대학을 갔으면

더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했을 거라고.

그래서 이번에도,

또 그 미안함이 먼저 올라와

그 방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엄마.

나는 끝없이 무언가를 채워야만 안심되는 사람으로 자랐고,

동생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으로 자랐다는 걸.

오히려 나보다 자기 길 잘 찾았는데.

엄마는 그걸 아직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상상을 했다.


내 딸이 마흔쯤 돼서

“엄마, 나 공부 다시 해보고 싶어.”

라고 말한다면

나는 어떤 마음이 들까?


아직 자리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얼굴이 안쓰러울까?


아니면

배움에 늦음이 어디 있냐며

기꺼이 등을 밀어줄까?


혹은

‘복잡한 내 성격을 닮았구나…’

하면서 은근 속상해할까?


그래도 결국,

나는 제일 먼저 응원부터 할 것 같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얼마나 귀한 일인지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아마 엄마도,

말은 없었지만

속으로는 나를

조용히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