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선 캠퍼스, 잠깐 설레어도 되나요

마음이 기울다

by 서해


대학원은 내가 오랫동안 미뤄온 카드였다.


학부 졸업 후에도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더 쓰는 건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새벽부터 일하는 엄마를 보고 자라서인지

나는 엄마에게 돈 달라는 말을 그때도, 지금도 잘 못 한다.


그래서 나는 늘 현실이라는 이유로

연봉이 높은 직업과 전공, 자격증을 찾아다녔다.

첫 직장이 증권사였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홀로 딸 둘을 키운 엄마는

누구보다 돈의 소중함을 잘 아는 사람이었고,

내가 번 돈도 귀하게 여겨주셨다.


나는 엄마에게서 저축하는 법,

‘차곡차곡의 힘’을 배웠다.


초년생 시절의 치열한 직장 생활도

나는 돈 모으는 재미로 버틸 만큼 현실적이었다.

결혼 후에는 둘이 버니 재미도 두 배가 됐다.


작은 빌라 전세에서 아파트 전세로,

그리고 마침내 내 집으로.


성실한 차곡차곡은

다행히도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사회 초년에는 경력을 쌓는 데 시간을 다 썼고,

삼십 대 중반엔 출산이 우선순위를 밀어냈고,

복직 후에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떠밀렸다.


대학원은 늘 나에게

‘지금은 아닌 것’이었다.


그리고 마흔이 되자

마음의 방황 끝에서 꺼내본 나의 조각들 속에서

회사 안의 나는 점점 작아지고,

회사 밖의 내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회사 안의 나는 늘 이렇게 말했다.

“대학원? 지금 하는 일과 관련 있는 전공을 고르는 게 맞지 않아?”

그러면서 하는 일에 따라 전공이 바뀌곤 했다.


그런데 회사 밖의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차곡차곡 쌓아온 현실 위에

이번엔 나를 위한 용기 하나 얹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대학원은

자연스레 우선순위로 올라왔다.



입학 전형에 필요한 서류를 하나씩 챙겼다.

취준생 시절과 달리

지금의 나는 ‘경력’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이직 면접에서는 부족함처럼 느껴졌던 부분도

대학원 지원서에서는

“그래서 이 부분을 학문적으로 채우고 싶습니다”

라는 말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학업계획서를 쓰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신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무형의 가치를 정량 모델에 녹여 넣고,

실무에서 늘 아쉽던 지점을

내 손으로 직접 연구해보고 싶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나는 늘 이런 걸 하고 싶어 했구나.


서류를 준비하는 며칠 동안

나는 내 인생을 동시에 들여다보고 있었다.


졸업증명서를 떼며

오래된 학번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내 손끝이

기특하기도 하고, 조금은 뭉클했다.



원서를 제출하고,

각종 증빙 서류를 우편으로 보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우편이라니…

그 아날로그적인 절차가 ‘학교’의 정체성 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


단지 원서를 냈을 뿐인데

나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간 느낌이었다.


두 곳에 지원했는데

두 곳 모두 서류 합격 통보가 왔다.


‘합격’이라는 두 글자는

오랜만에 내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면접 당일,

이른 오전의 캠퍼스는

고요하고 평온했다.


가을빛이 스며든 교정을 걸어

면접장으로 향하는 길은

그 자체로 작은 여행 같았다.


바다에서든, 교정에서든

혼자 있는 고요한 시간은

늘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 길 위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 지금…

잠깐 설레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