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지드 - 지상의 양식
우리는 인생이라는 배의 뱃머리에 서서
습관처럼 먼 수평선을 바라본다.
곧 도착할 섬, 그곳에서 시작될 미지의 모험들.
하지만 앙드레 지드는
그 기대를 단호하게 되돌려 놓는다.
“그대의 이미지는 거짓이다.
우리는 미래를 보지는 못한다. 오직 현재밖에는.”
뱃머리에 서 본 사람만이 안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것은
선명한 목적지가 아니라
끝을 알 수 없는 광대한 공허라는 사실을.
그러나 지드는 이 공허를
결핍이나 절망으로 읽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가능성이 채워주는 공허라고 부른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기에
무엇이든 그려질 수 있는 상태.
바다의 공허함은
우리가 아직 선택하지 않은 삶의 다른 이름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 내게 무엇을 가져오고,
동시에 무엇을 앗아 가는지를
외면하지 않는 일이다.
“내가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것을 생각해 본다.”
지금 스쳐 가는 파도의 포말,
지금 뺨을 스치는 바람은
우주에서 단 한 번뿐인 장면이다.
우리는 내일의 섬을 걱정하느라
오늘만 허락된 이 풍경들을
너무 쉽게 흘려보낸다.
지드는 말한다.
과거는 현재보다 덜 중요하고,
지금의 상태 또한
앞으로 존재할 가능성보다 덜 중요하다고.
삶의 무게중심은
이미 결정된 것에 있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것들 쪽으로
기울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만약 눈앞이
공허로 가득 차 보인다면,
그것은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앞선 자리,
뱃머리에 서 있다는 증거에 가깝다.
텅 빈 바다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가능성으로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미래라는 섬을 미리 그리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뱃머리를 적시는
이 파도의 선명함을 느끼며,
공허가 데려올 다음 순간을
잠시 믿어보는 일.
어쩌면 항해란
그 정도의 용기로도 충분한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