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보라를 바라보는 자리

피천득 - 수상 스키,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by 서해

피천득 선생은 젊음을 향한 아련한 그리움을

바다에 투영한다.


“내가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장고를 메고 ‘놀량’을 한번 불러 보겠다.
왈츠를 밤새워 추어 보겠다.
그러나 어떤 호강보다도 우선 여름 바다에서
수상스키를 타 보겠다.”
- 피천득, 수상스키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이 문장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생의 가장 빛나던 순간을 향한 조용한 회한처럼 읽힌다.


드넓은 바다 위, 모터보트 속력에 팔을 곧게 뻗어

로프를 잡고 파도를 달리는 젊은 스키어가 있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튀어 오르는 그 모습은

바다의 생기 그 자체다.

손에 잡힐 듯 선명한, 다시 오지 않을 찰나의 시간.


선생은 그러나 자신이 이미 파도를 타기에는

늦었음을 안다. 이제 그에게 허락된 것은 타는 일이 아니라, 보는 일이다.

하지만 그 담담한 인정 속에서도

바다를 향한 마음은 멈추지 않는다.


“여름이면 바다로 가고 싶다.
나 자신 파도를 타기에는 이미 늦었으나,
바다에는 파도를 타는 젊은이가 있을 것 같다.... 물보라, 물보라가 보고 싶다.
수상 스키를 못 보더라도 바다에 가고 싶다.”
- 피천득, 수상스키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이 문장이 오래 남는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바다는 여전히 그를 부른다.


젊은이에게 바다는 전속력의 공간이지만,

노년에게 바다는 흘러간 시간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젊은 스키어가 일으키는 물보라를 바라보며,

선생의 눈앞에는 자신이 지나온 수많은 여름들이

조용히 겹쳐졌을 것이다.


이제 바다는 더 이상 성취의 무대가 아니다.

곁에 머물며, 한때의 물보라를 떠올리는 장소.

직접 만들 수는 없어도,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자리.


피천득 선생은 바다에서 젊음을 그리워했지만,

그 그리움마저 내려놓을 수 있는 평온을 함께 발견한다.

타지 못한 파도 앞에서도

바다는 여전히,

가고 싶은 곳으로 남아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