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아이가 부르는 두 집의 이름
네 살 아이는 두 집을 오가는 생활을 어떻게 기억할까.
지금 이 순간을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아이는 층수로 집을 불렀다.
서울 집은 24층집, 인천 집은 9층집.
그리고 늘 말했다.
자기는 9층집이 더 좋다고.
왜 좋냐고 물으면 대답은 단순했다.
집이 더 넓고,
야외 놀이터가 있고,
욕조가 있어서.
하지만 9층집에서 계속 살까 물으면
아이는 잠시 망설였다.
어린이집 친구들을
9층집에서는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아이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서하집 놀러 와.
서하집, 9층집에 놀러 와."
친구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대답한다.
"그래! 갈래!"
"9층집은 빠방이 타고 가야 해. 놀러 와."
단지 내 어린이집이라
선생님은 그 대목부터 고개를 갸웃하신다.
서하는
9층집 놀이터에서
반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고 싶은 모양이다.
그 마음을
나만 알아챈다.
아이 말의 뜻을
아무도 알 리 없으니
내가 말이라도 거든다.
"놀러 와~ 서하집 9층집에 놀러 와."
사실 아이에게는
집이 어디인지보다
누가 함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엄마 아빠가 자기와 놀아주기만 하면
24층집이든 9층집이든
크게 상관없다.
외동아이라
집에서 놀 친구는
엄마 아빠뿐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엄마 놀자."
"심심해."
이 말을 반복한다.
사실 9층집에 가는 것이 내가 편했다.
치울 것이 적으니 에너지 소모가 적었고
놀이터에 나가면 눈을 잠시 떼어도 되고,
바다에 나가면 아이는 혼자 모래를 파며 오래 논다.
내가 편하면
엄마는 조금 더 친절해진다.
아이는 그걸 안다.
그래서
9층집이 더 좋다.
이 생활이 일 년쯤 지났을 때였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여기서 살면 어떨 것 같아?"
내가 아이에게 가끔 묻던 질문이었다.
"좋지."
"왜?"
"집이 넓고, 갈 곳도 많잖아.
서하랑 매일 놀러 다니면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아."
말을 하면서
내 마음이 점점 또렷해졌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서하는 여기서 계속 살고 싶어?"
"응."
"친구들 못 만나도 괜찮아?
새로운 친구 사귈 수 있어?"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새로운 친구 사귈 수 있을 거 같아."
아이의 마음도 확고해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