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바다 한 칸

비워지니, 우리만 남았다

by 서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시대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다.
— 피코 아이어, 『여행하지 않을 자유』


을지로 한복판,

우리 집은 '직주근접'이라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회사까지 도보 15분 컷.

출퇴근은 편했지만,

퇴근과 동시에 육아 복귀도 15분 컷이었다.


완벽한 효율 속에서

나는 점점 숨이 막혔다.


창밖은 스카이라인이 반짝이고,

고궁, 청계천, 미술관, 카페, 맛집이 넘쳐났다.

도심은 늘 화려했지만,

내 안은 점점 공허해졌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죄책감이 들어

먹고 보고 경험하느라 온몸이 바빴다.

아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박물관, 미술관, 전시회… 아직 어려 잘 모르는데도

나는 더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었다.


회사도 여유를 주지 않았다.

복직 후 다섯 번의 팀 이동.

공들여 쓴 보고서는 허공에 흩어지고,

적응에도 진이 빠졌다.


결국 그 화풀이를

내 스케줄표에 했다.


움직이고, 또 채우면

살아 있는 기분이 나는 줄 알고

계속 밀어 넣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정작 내 삶은 더 비좁아지고 있었다는 걸.


바다 옆 작은 집은

내겐 작은 일탈이었다.


주말마다 그 집에 가는 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삶의 리듬을 바꾸는 모험이었다.


그 집에는 ‘아무것도 안 하기 위해’

아무것도 두지 않았다.


치울 게 없으니

아이에게 더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눈을 맞추고,

같이 앉아 쉬는 시간이 늘었다.


집이 단출해지니 마음도 단출해졌다.




다시 찾은 하나개 바다

갯벌 위엔 작은 숨구멍들이 여전히 있었다.


바닷물이 멀리 물러간 자리에

줄지은 조개의 흔적이 안도감을 줬다.


겉으론 텅 빈 것 같아도

그 안은 살아 있었다.


여백이란 그런 것이었다.

겉으론 비어 보이지만,

그 속은 가득히 살아 있는 것.


파도 소리가 잦아들자,

발밑의 모래 알갱이까지 또렷해졌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한테 말을 걸 수 있었다.


주말집 부엌 창 너머로

인천대교가 보이고,

멀리 바다가 아른거린다.


언제든 나설 수 있는 바다가 보인다는 사실만으로

설거지마저 평온했다.


아무것도 없는 집.

아무것도 없어서 좋았다.


커피잔에 국을 담아 마시고,

받침에 반찬을 덜어 먹으며

세 식구가 한바탕 웃는다.


없으면 없는 대로 충분히 살았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 ‘적당한 비움’ 속에서

비로소 우리가 보였다.

서로의 얼굴, 서로의 숨,

그게 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