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바다는 어떤 얼굴일까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 김기림, 『바다와 나비』
구름 낀 바다, 바람 거센 바다,
비 오는 바다, 물이 가득 찬 바다, 빠진 바다,
그리고 햇살 가득한 바다.
바다는 매번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어느 날, 마음먹고 찾은 바다엔 폭우가 쏟아졌다.
연휴라 주차장은 이미 만석이었다.
우린 갓길에 차를 세우고 장대비를 뚫고 걸었다.
우산은 소용없었다.
빗줄기는 옆에서 날아들어 속옷까지 적셨고,
아이는 눈을 뜰 수 없다며
작은 손으로 나를 꼭 붙잡았다.
짧게 바다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차가 진흙에 빠져 있었다.
액셀을 밟을수록 더 깊이 잠기고,
결국 레커차를 불러야 했다.
난감하고 귀찮은 와중에도
바다는 태연했다.
빛 잃은 수평선, 흙탕빛으로 뒤섞인 물결,
바람에 부서져 흩날리는 빗줄기.
거칠어도, 낯설어도, 바다는 여전히 바다였다.
나는 괜스레 투덜거렸다.
“왜 하필 오늘? 왜 우리 차만?“
좋다며 달려왔던 건 언제고,
다시는 안 오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다 레커차에 가볍게 들어 올려지는 차를 보며
헛웃음이 터졌다.
‘내가 지금 뭘 기대하고 있는 거지?’
발버둥 치는 건 바다가 아니라, 결국 나였다.
조금씩 다른 기분의 나와
매번 다른 얼굴의 바다,
늘 새로운 조합으로 마주한다.
바다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앞에 선 내 표정을 살핀다.
오늘은 편안해 보여 다행이라고,
바다가 대답하지 않아도
나는 다시 웃는다.
혹시 내가 바다를 찾는 발걸음이 뜸해진다면
그건 바다가 아니라
내 마음이 다른 데 묶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큰 파도가 가라앉고
마음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또다시 바다를 찾을 것이다.
그때의 바다는 지금과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변화마저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때 또 마주하자.
웃으면서.
어떤 날이든,
가는 날이 바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