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일지도, 시작일지도 모르는 두 개의 생명
난자 채취 일정은 4월 23일.
그 전날 밤, 정확히 12시간 전에
난포를 터트리는 오비드렐 주사를 맞아야 했다.
간호사는 안내문에 빨간 동그라미를 치며
내 어깨를 꼭 붙잡았다.
“이건 반드시 지켜야 해요. 놓치면 큰일 납니다.”
알람이 울리자, 나는 떨리는 손으로 주사를 놓았다.
작은 주사 한 방에
그동안의 기다림이 모두 걸려 있었다.
수면 마취로 채취가 진행됐다.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몇 개나 나왔을까?’
결과는 10개.
그리고 5일 뒤, 4월 28일에 배아 이식이 예정됐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아빠 기일이었다..
‘아빠가 지켜봐 주시겠지.’
그날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몸은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복수가 차서 배는 터질 듯 불룩했고, 통증도 심했다.
심지어 참지 못하고 먹은 짭짤한 음식이 증상을 더 악화시켰다.
이식 당일, 대기실에서 기쁜 소식을 들었다.
10개 중 9개가 수정에 성공했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우리 얼라가 아홉이나 있네.”
그러나 초음파 결과는 달랐다.
복수가 심해 당일 이식은 불가하다고 했다.
“이 상태로는 임신이 돼도 산모가 위험할 수 있어요. 수정된 배아들은 냉동으로 돌리시죠.”
순간 허탈했다.
그토록 기다려온 날이었는데,
하루 만에 희망이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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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제사 음식을 준비했다.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굽는 동안
허한 마음을 부지런히 움직임으로 채웠다.
아빠 앞에서 조용히 기도했다.
“건강한 아가 꼭 만나게 해 주세요.”
그리고 다시 기다림이 시작됐다.
5월을 넘기고, 6월쯤에야 몸이 회복될 거라고 했다.
며칠 뒤, 문자 한 통이 왔다.
아홉 개 배아 중 단 두 개만 냉동에 성공했다는 결과였다.
단 두 번의 기회.
실패한다면 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반복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결론은 단순했다.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어.
그 끝이 어디든, 나는 가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