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알을 깨고 나오다
내 안의 생명이 내게 꼭 붙어있으라는 뜻으로
태명을 '찰떡'이라 지었다.
찰떡같이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길 바랐다.
작은 이름 하나에도 마음이 단단해졌다.
그런데 병원을 다녀온 지 사흘 만에
다시 선홍색 피가 비쳐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가는 멀쩡합니다."
그 한마디에 온몸이 풀렸다.
나는 여전히 임신을 유지하기 위해,
조기유산을 막기 위해
약과 질정으로 무장 중이었다.
“질정을 너무 끝까지 넣지 마세요.”
의사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6주 2일
배아크기 4.1mm, 심장박동 122 bpm
출퇴근을 하면 피가 더 비쳤다.
결국 출근을 줄이기로 했다.
코로나로 반재택 상황이었지만
“재택근무일을 늘리겠다”고 말하는 게
왠지 부담스러웠다.
온 세상이 멈춰 있던 시기였다.
밖은 조용했고, 내 몸은 더 조용히 신호를 보냈다.
마침 팀 상황은 어수선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외부 투자자가 붙으며
업무는 급물살을 탔다.
구체적인 사업 기획안을 재촉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고민이 많아졌다.
'이 파도에 다시 뛰어들어야 할까,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할까.'
팀장이 물었다.
“프로젝트, 계속할 생각이에요?”
“육아휴직이 걸리네요.”
나는 그렇게 말끝을 흐렸다.
며칠 뒤, 내 업무가 다른 사람에게 분배되었다.
배려일까, 손절일까.
당황스러웠지만, 마음은 덤덤했다.
재택근무일은 조금 더 늘었다.
7주 6일
배아크기 1.54cm, 심장박동 163 bpm
찰떡이는 단숨에 1cm 넘게 컸다.
심장 소리를 듣는 순간,
모든 고민이 잊히고 찰떡이만 생각났다.
“9주쯤 보고 졸업합시다”
주치의 말에 마음이 울컥했다.
‘졸업’이라는 단어가 낯설고도 감격스러웠다.
혼자 주사 맞던 시간들,
대기실의 긴 의자,
그 위에 앉아 있던 불안과 기다림이 스쳐갔다.
9주 1일
태아크기 2.4cm, 심장박동 176 bpm
찰떡이의 팔과 다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동글동글 젤리 곰 같았다.
"이제 산부인과로 전원 하세요."
새 병원에 제출할 서류를 챙기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래, 여기까지 잘 왔어.'
회사 상황은 여전히 답답했다.
팀장은 전화를 걸어왔다.
“옮길 자리가 마땅치 않다더군요”
임신한 내 존재가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운했지만 마음은 평온하게 두려 했다.
산부인과로 전원 하는 날,
남편이 동행했다.
난임병원은 일정도 뒤죽박죽이고
돌발 상황이 많아 늘 혼자 다녔다.
그날따라 남편과 함께 가는 길이 유난히 든든했다.
10주 1일
태아크기 3.3cm, 심장박동 168 bpm
찰떡이가 화면 속에서 팔다리를 흔들었다.
입덧과 가려움, 냄새 민감증…
불편은 많았지만
아기가 잘 자라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모든 걸 버틸 수 있었다.
'졸업이라니.'
마치 하나의 알을 깨고 나온 기분이었다.
앞으로 또 다른 산들이 있겠지만,
이제는 조금 덜어내며 걸어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찰떡이를 마음에 품었으니,
나머지는 흘려보내도 괜찮았다.
내 안의 생명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이에게]
어느덧 10주,
너와 함께한 꿈같은 시간,
그리고 더욱 기대되는 앞날.
제법 형태가 잡힌 팔, 다리로
꼬물꼬물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눈을 뗄 수가 없었어.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는 어떤 모습일지,
어떤 성격일지,
무엇을 좋아할지
수없이 상상했어.
그리고 내가 엄마가 되는 모습,
낯설었지만 그 모습도 함께 그려봤어.
너와 함께라면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다짐하며.
그림- 김미경 작가 “ 따뜻한 말 한송이”
(세종문화회관 한글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