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은 생명의 영향력
9주부터, 말로만 듣고 글로만 보던 입덧이
내게도 찾아왔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다.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막달까지 사과 한쪽도 먹지 못했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내 증상은 새발의 피였지만
막상 겪어보니 —
이 작은 불편이 얼마나 '큰 일'이던지.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 안다.
9주에서 12주,
그 시기가 내 입덧의 계절이었다.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저녁만 되면 메슥거리고 울렁거렸다.
밥 냄새, 향수 냄새,
심지어 집안의 공기까지 모두가 적이었다.
그래서 퇴근 후엔 늘 창문에 코를 박고 살았다.
밤공기에 속이 잠시 진정되었다.
자연스레 남편과 저녁 산책을 자주 했다.
"걷기라도 해야 속이 풀릴 것 같아."
그 말에 남편은 웃으며 신발끈을 조였다.
그렇게 나선 산책길에서
우리는 다시 포켓몬고 앱을 깔았다.
그냥 걷기엔 심심했으니까.
한 손엔 휴대폰, 다른 손엔 생수병을 들고
옆 단지까지 돌았다.
잡히는 포켓몬마다
“얘 또 나왔네.”하며 웃었다.
그 시간만큼은 속이 아닌 마음이 편했다.
입덧보다 웃음이 앞섰다.
하지만 몸은 점점 낯설어졌다.
가려움이 시작됐다.
알레르기라곤 모르던 내게 '소양증'은 생소했다.
밤마다 온몸이 뒤집히듯 가려워
불을 끄고도 잠들 수 없었다.
의사는 말했다.
"호르몬 때문이에요."
입덧도, 가려움도, 잠 못 드는 밤도—
그 한마디로 모든 게 설명됐다.
그 시기 나는 완전히
호르몬의 노예였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내 몸이 이렇게 반응하는 건
누군가 내 안에 있다는 신호였고,
그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증거였다.
입덧은 고통이었지만,
그 고통이 사라지면 또 불안했다.
그러니까,
그건 나를 살게 하는 고통이었다.
[아이에게]
너의 존재감은 1cm부터 대단했어.
그 작은 몸으로도
엄마를 잘도 들었다 놨다 했지.
넌 마치 그 자리가
원래부터 네 자리였던 것처럼
태연하게 자리를 잡더라.
엄마가 불편하거나 말거나,
참 뻔뻔했지.
그런데 그 뻔뻔함이 좋았어.
그건 살아 있어 가능한 거니까.
그 뻔뻔함을 잃지 마.
넌 그게 제일 멋있어.
* 그림—김창열 작가 물방울 작품 중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