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생명에게서 배우는 단단함
산부인과로 전원을 하고부터는 일정이 느슨해졌다.
‘일반 산모들은 이렇게 병원을 자주 안 가는구나.’
“2주 후에 봅시다.”
“4주 후에 오세요.”
어쩔 땐 6주 뒤에 오라는 말도 들었다.
이 스케줄, 산모의 정신 건강에 과연 적절한 걸까.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히 늘며
회사도 자연스레 재택으로 전환됐다.
업무도, 병원 일정도 느슨해지자
팽팽하게 당겨 있던 줄이 한꺼번에 풀렸다.
그 틈을 무력감과 우울이 노렸다.
“임신 기간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스스로에게 자꾸 물었다.
그즈음 팀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다른 팀으로 옮길 수 있을 거 같아요. “
육아휴직을 앞둔 상황에서
어디든 자리를 차지하는 일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이 회사는 ‘일’보다 ‘자리’가 더 중요한 조직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다
내 조직장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내 일도, 내 존재도 바뀌었다.
자리는 곧 권력이었고, 존재의 증명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 마저 흔들리고 있었다.
내 일과 더 멀어지기 전에 이직을 준비하던 그때,
예기치 않게 유산을 겪었다.
몸이 회복되자
이번에는 ‘빨리 출산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직도 출산 뒤로 미루었다.
하지만 임신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도저도 아닌 상황은 사람을 지치게 했다.
결국 기다리던 아이가 내 안에 자리 잡자
긴장된 마음이 풀리고,
오래 눌러두었던 피로가 스며 나왔다.
기다렸다기보다 버텼던 시간이었다.
육아휴직만을 기다리며,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 다짐하며.
하나의 숙제가 풀리는 듯했지만
또 다른 막막함이 남아 있었다.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도
‘자리가 없다’는 말에 흔들렸다.
팀장은 “육아휴직 보내기 좋은 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 말은 배려였지만, 나는 씁쓸했다.
‘휴직을 보내기 좋은 자리’라니 —
돌아온다 해도 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닌 것 같았다.
뱃속에 아이를 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결국 나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일단은 아이가 우선이니까. “
그렇게 나는 미루었다.
회사도, 관계도, 내 마음도.
며칠 뒤, 오랜만에 차를 몰고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까지 직접 운전해 간 건 처음이었다.
무료한 나날 속 작은 이벤트 같았다.
미우나 고우나, 회사도 내 삶의 일부였다.
12주 1일, 첫 기형아 검사
찰떡이는 어느새 5.5cm가 되어 있었다.
심장박동은 분당 158회, 목투명대 1.5mm,
코뼈도 이상 없었다.
작고 단단한 존재가
주수에 맞게 성실히 자라고 있었다.
나는 그만큼 성실하게 살고 있었을까.
문득 되묻게 되었다.
검진을 마치고 가족들에게 임신 소식을 알렸다.
목소리에 기쁨이 묻어났다.
찰떡이 덕분에 하루가 사랑으로 가득 찼다.
[아이에게]
사실 엄마는 임신이 편하지만은 않았어.
입덧에 지치고, 잠도 잘 못 잤고,
분만은 생각만 해도 무서웠단다.
출산 후의 삶, 복직,
엄마의 경력까지 걱정이 꼬리를 물었어.
그런데 네가 엄마 뱃속에서
기적처럼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비하면
그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더라.
엄마는 의연하게 이 시간을 보내기로
두려워하지 않기로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담담히 사랑하기로 했어
너를 만나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