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렁, 스르륵, 툭, 휙, 꾸루룩, 꾸물꾸물
12주 이후 6kg이 늘었다.
주치의는 그래도 주수에 비해 아기가 작으니
고기를 많이 먹으라 당부했다.
이제 나는 태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진료 사이,
‘아기는 잘 크고 있겠지?’
입덧이 그치자 아이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아
괜히 불안했다.
16주 무렵, 배가 볼록해졌다.
초음파 화면 속 작은 팔, 다리, 장기들을 볼 때마다 놀라움과 아련함이 번갈아 밀려왔다.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지만,
태동의 기다림은 여전히 길었다.
19주 무렵, 뱃속에서 미세하게 꾹꾹—
작은 손길이 느껴졌다.
태동이었다.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오직 몸으로만 아는 신비였다.
나는 감격했고,
남편은 내 기쁨을 어색하게 바라보았다.
“나만 교감에서 빠진 것 같다”
그의 투정에 웃음이 났다.
임신이라는 여정은 결국,
엄마의 몸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는 일이니까.
찰떡이가 내 안에서 움직인다.
여전히 꿈인지 생시인지, 신기하고 감동스럽다.
쉬고 있을 때 태동이 느껴지면
배를 쓰다듬는다.
그러면 찰떡이는
내가 누른 데를 다시 톡 건드리거나,
다른 쪽에서 반응을 보낸다.
“우리 교감하고 있는 거 맞지?”
혼잣말처럼 속삭이며 웃음이 난다.
회사에서 일하다 태동이 느껴지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는다.
엄마의 진지함은 아랑곳없이
천진하게 놀고 있는 찰떡이를 떠올리면
그저 귀엽다.
이 공간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임신하고 제일 좋은 건 태동이다.
작은 생명이 내 안에 있다는 것.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가장 동물적이면서도 감격스러운 감각이다.
태동의 강도는 주마다 달라졌다.
아이의 성장 속도만큼,
그 몸짓도 폭풍처럼 커졌다.
19주 처음 느낀 태동은
고양이가 뱃속에서 꾹꾹이를 하는 듯했다.
점차 배에 닿는 면적이 넓어지고,
손을 흔드는 듯 빠르게 휙 지나가기도 했다.
25주쯤에는 속방귀처럼 꾸룩꾸룩,
27주에는 방광을 건드려
방금 소변을 보고 나와도 또 마렵게 했다.
자려고 누웠을 때가 가장 선명했다.
고요한 방 안에서 찰떡이가 가장 활발했다.
내 심박일 텐데도
아기의 심장이 뛰는 듯했다.
아가를 느끼며 잠들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여전히 움직이고 있으면 참 좋았다.
꾹꾹, 꾸물꾸물—
그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나를 지탱했다.
[아이에게]
너의 첫 언어는 말이 아니라 움직임이었어.
작은 손끝으로, 발끝으로
엄마의 하루를 건드려 주던 시간들.
그건 사랑보다 먼저 도착한 언어였고,
그때부터 우리는 서로를 배우기 시작했단다.
태동은 멈췄지만,
너의 말은 여전히 내 안에서 자라나고 있어.
너의 작은 신호들,
말들은 언제나 소중해.
앞으로도 엄마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