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으로 시작된 여정이 운명이 되는 순간
오랫동안 기다리던 아이의 존재가
이제는 매일 실감으로 다가왔다.
30주 들어서면서 배는 빠르게 커져
잠드는 일도 점점 어려워졌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새벽이 되어야 겨우 잠들곤 했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일어나 심호흡을 하고 책을 읽었다.
너무 피곤한 날엔
뭉친 배를 안은 채 잠들었다.
찰떡이는 31주, 34주 검사에서도
여전히 역아였다.
꼿꼿하게 앉은 채 다리와 몸을 폴더처럼 접고,
발과 손을 얼굴 앞에 모으고 노는 모습이
한결같았다.
“자세를 바꾸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내 질문에 주치의는 웃으며 말했다.
“아이가 너무 평화로워서 그런 거예요.”
그 말에 안도하면서도
이내 다른 걱정이 이어졌다.
아기의 머리 직경이 큰 편이고
내 골반은 좁아
자연분만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35주가 되어 다시 검사를 하니
머리 직경이 9.01cm.
출산까지 10cm를 넘기면
자연분만은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 제왕절개라니.
생각해본 적 없었다.
흉터도, 수술 후 통증도,
그 모든 과정이 두려웠다.
자연분만의 고통도 무섭긴 마찬가지었지만
회복이 빠르다는 이유로
차라리 그쪽을 택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의 의견은 달랐다.
“자연분만 시도하다 고통은 고통대로 다 겪고
수술한 사람 많아.”
“요즘은 제왕이 절반이야, 훨씬 안전하지.”
시부모님도 “괜히 무리하지 말라”고 하셨다.
35주 3일,
찰떡이는 여전히 거꾸로 있었다.
결국 수술 날짜를 잡았다.
3월 16일 오후 1시.
찰떡이의 탄생일이 예정됐다.
수정에서 배아이식, 그리고 출산까지 —
모든 과정이 계획된 듯 보였지만,
그 안에는 내가 아닌 어떤 힘이 있었다.
찰떡이는 태어날 ‘운명’이었다.
수정될 확률, 착상될 확률,
무사히 자랄 확률 —
그 모든 가능성을 뚫고
찰떡이는 나에게 왔다.
나는 제왕절개 후기를 찾아 읽었다.
“흉터는 흐려진다”는 말에 안심하다가도
친구들의 생생한 경험담에 겁이 났다.
하지만 모두의 결론은 늘 같았다.
“출산은 결국 추억이야.
그 고통도 다 지나가.
육아가 백 배는 더 힘들어.
지금 남은 자유를 즐겨.”
39주 2일에
드디어 찰떡이를 만난다.
남은 자유 시간은 이제 4주.
나는 그 시간을
조용히, 꼬박꼬박 아껴두기로 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조금씩 ‘엄마’로 자라가고 있었다.
[아이에게]
기다림이 사랑이 되던 날
너를 만나기 전,
엄마는 너를 기다리며 많은 밤을 뒤척였단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큰 건
너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이었어.
수술 날짜가 정해지며
너의 탄생이 ‘예정된 하루’로 정해졌을 때
엄마는 처음으로 운명이라는 단어를 믿었어.
너는 내딸로 태어날 운명.
엄마는 널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는 법도 배웠어.
삶도, 사랑도, 그리고 너의 성장도.
이제 너를 바라보면
그 기다림의 시간들이 모두
하나의 선물이었다는 걸 알게 돼.
너는 내게 가장 기적처럼 온 선물이야